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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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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와 초밥 요리사](3) 진화하는 존재들, ‘도덕적인 감정’에 주목하다

작성자
조재영
작성일
2024-10-07 15:46
조회
159

진화하는 존재들, ‘도덕적인 감정에 주목하다

 

 

약육강식흔히 인간 경쟁 사회의 냉정한 힘의 논리를 동물 사회에 빗대어 표현할 때 쓰는 표현이다. 동물은 먹이’, ‘생존등 본능 중심으로 사는 존재들로 약육강식이 작동 중에는 감정이 없는 존재들로 여긴다. 인간이성을 세계의 중심에 놓고 나면 본능’, ‘자연’, ‘미개등의 이름으로 동물은 인간보다 덜 진화한 상태이다. 우리에게 진화는 늘 앞으로 나아가는 진보와 성장 모델이다. 이익이 되고 도움이 되는 것은 살아남고, 불필요한 것은 도태되어 사라진다는 것이 우리가 아는 약육강식, 진화의 익숙한 정의이다.

 

이기적인 유전자 vs 친절과 관용

프란스 드 발은 태국의 롭 부리동물원 어미 개의 예를 들며 이 같은 우리의 진화 패러다임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호랑이에게 당장 잡혀먹고도 남을 두 마리의 개가 세 마리의 호랑이와 같은 우리에서 살고 있으며, 개 두 마리 중 한 마리, 어미 개가 자신의 새끼 개와 함께 이 호랑이 세 마리를 자신의 젖을 먹이며 함께 키웠다는 것이다. 자신보다 몇 십 배나 몸집이 이 큰 이 호랑이들이 실은 자신의 자식이었던 셈이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이 어미 개가 자신의 동족도 아니고, 그렇다고 호랑이들에게서 어떤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닌데 왜 이들을 키웠냐는 것. 이유 없이, 보답 없이 친절과 관용이 나올 수 있지 않는가.

유전자 자체가 동물이거나 인간일 수 있을까? 프란스 드 발은 우리가 유전자에게 이기적이라는 은유를 붙인 것에 대해 함께 질문을 던진다. ‘이기적’, 흔히 생각하듯,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것만을 위하는 구체적은 의도아래, 그 의도를 달성하기 위해 타인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 태도 정도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타인을 위해(危害) 했다 하더라도 그런 의도를 가지지 않았다면 그 또한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프란스는 현실에는 목적은 분명하게 파악할 수 없는 행동들이 많다“(359)며 모든 일들에 의도가 있을까 또 우리가 어떻게 그 모든 의도들을 알 수 있겠냐 반문한다. 이 점은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행위와 그 결과에 늘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동기, 의도와 목적이 행동들 외부에서 행동들 보다 먼저 선행되고 행동이 그것을 따른다는 발상, 목적과 의도가 분명할 것이고, 심지어 그것이 자신과 집단의 생존 및 이익을 위해서일 것이라는 믿음, 즉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는 믿음 또한 진보적 진화론을 뒷받침하려는 우리의 망상에 불과하다. ‘이기적 유전자론에 빗대어 롭 부리 동물원의 어미 개를 보면 이 개는 진화의 과정에서 도태된 것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생명 진화에 발전과 도태, 이 두 가지 모습만 있는지 질문하게 된다. 이기적이지 않게, 외부의 다른 의도와 목적 없이, 그저 다른 생명에게 친절과 관용을 베풀도록 진화된 것 또한 생명 진화가 가진 여러 모습 중 하나이다.

 

인간도 반드시 결과를 염두에 두고 행동하지는 않는다. 아이와 임산부가 보이는 왕성한 식욕은 아이 자신과 태아를 성장시키는데 기여한다. 그러나 아이와 임산부가 성장이라는 욕구 때문에 많이 먹는 것은 아니다. 배고픔이 술수를 부리기 때문이다. 동기는 그 자체의 규칙을 따르고 있고, 그 자체의 목표를 충족시킨다. 따라서 동기를 설명하는 이유도 그 자체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된다.(원숭이와 초밥 요리사, 359)

 

동물도, 인간도 어떤 행동들 자체의 동기가 있고, 그 행동의 규칙을 잘 수행해냄으로써 그 동기, 혹은 그 동기의 목적도 동시에 달성이 된다. 각 종이 가지는 행동들은 따로 분리되어 진화되지 않고 총체적으로 연결되어 진화되어 간다. 이때 유전자도 이 총체적인 요소들 중 하나가 될 수 있겠지만, 동물이 이기적인 특성을 가진 유전자, 그 기계에 의해 제어되는 존재라고만 보는 것은 단편적 해석이다.

 

도덕 vs 도덕적인 감정

프란스 드 발은 도덕도덕적인 감정을 구분한다. 토머스 홉스, 토머스 헨리 헉슬리 등의 생물학자는 인간의 본성과 도덕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고, 도덕을 후천적으로 훈련되는 무엇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도덕이 본성을 제어해야 한다고 여긴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한가, 악한가? 그에 대해 명확한 답을 할 수는 없겠지만 이들에게 인간은 적어도 선천적으로 본능에 충실한 존재, 해서 도덕이라는 제어 장치가 필요한 존재라는 인식은 분명해 보인다.

프란스 드 발은 이들과 상반된 주장을 하는 웨스터 마크에 주목하고, 공자, 맹자 등 중국 철학자들을 예로 들어, 도덕심은 동물, 인간에게 본래적으로 있는 감정, 충동과 같은 것으로 여긴다. 후천적 노력이나 의지에 의해 제어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스스럼없이 즉시적으로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웨스터 마크가 도덕적인 감정을 단순히 생래적인 직감이 아니라 사심 없음(disinterestedness)’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한 것에 주목한다. 사심 없음은 자기중심적 태도를 벗어나 선악을 판단하는 것, ‘누구나그렇게 대해야 한다는 일반적 판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이 도덕적인 감정의 핵심이다. 그렇게 보면 프란스 드 발이 말한 도덕적인 감정’, 웨스터 마크의 사심 없음이 우리에게 익숙한 호혜주의’, ‘황금률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사심 없음, 호혜주의, 황금률이 인간 그리고 동물에게 본성으로 해서 태어날 때부터 있는 것인지, 유전자에 그렇게 각인되어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동물과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약육강식만이 생존의 절대 진리 여겨오던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트리기에는 충분하다. 생존하려면 이기적이 되어야 하고 약자를 치고 강해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생존하려면 타자에게 친절과 관용을 베풀고, 타자의 행복을 위해 행동하고 타자에게 공감하는 온화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우리 인류가 진화되어 왔다는 사실이 새롭다.

앞서 자연도태를 얘기할 때(360) 프란스는 자연도태가 각 종의 행동이 분리되어 진화되지 않고 그 종의 모든 행동의 래퍼토리를 잘 편성케 하는 심리상태를 만들어 왔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심 없음’, ‘호혜주의를 관통하는 것이 심리감정이라는 것도 더 생각해 볼 거리이다. 프란스는 각 종의 행동 동기는 그 자체의 규칙을 따르고 있고, 그 자체의 목표를 충족시킨다. 따라서 동기를 설명하는 이유도 그 자체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된다.’(359)고 말했다. 각 종의 어떤 행동동기는 감정 특히 사심 없는 도덕적인 감정에서 기인된다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같은 감정 발달은 동물과 인간이 자신들의 생존에도 유리하다는 것을 오래 시간을 겪으며 깨닫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기적으로 사는 것보다 타인에게 친절과 관용을 베풀며 공존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이 모든 배움과 판단이 감정이라는 총체적 지혜로 인간과 동물에게 새겨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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