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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탐구생활》 편집실

답사 가고 글을 쓰고!

 

[인류학을 나눌레오] 누가 집을 짓는가

작성자
기헌
작성일
2024-10-07 23:00
조회
64

누가 집을 짓는가

2024.10.07. 이기헌

주제문 : 정체성이 집을 바꾼다

글의 취지와 의의 : 인류학 공부를 위해 나눌레오 홈페이지를 만들고, 우리는 이제 어떤 비전을 가져갈 것인가 

 

실현된 상상

초등학생 아이들과 아파트에 살 때 아래층 집에서는 아무말 안했지만 괜히 엘리베이터에서 아랫층 주인들을 만나면 눈치가 보여 쫄아 버리곤 했다. 집은 편히 쉬고, 가족들과 하고 싶은 일들을 복닥거리며 할 수 있는 곳이 아닌가. 동일한 공간에 동일한 물건을 두고 복사 붙여넣기 한 것 같은 일관되고 심심한 인테리어, 마음 편히 걸어 다니기 어려운 아파트. 나는 종종 위치가 좋은 공터를 발견할 때마다 그 자리에 내 집을 짓고 싶은 충동을 느꼈었다. 자기 공간을 만든다는 건 위치, 형태, 인테리어 등을 고려해서 나의 필요에 맞게 지어야 한다. 내 필요와 조건에 따라 만든다고 생각하면 왠지 한 번 지어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사는 집을 짓는 사람은 돈 많은 사람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어떤 조건에 놓여있고, 무엇을 원하는지 가장 잘 아는 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살다보니 내가 내 공간을 만드는 건축가가 된다는 상상이 이루어지는 날이 왔다. 인문세가 새로운 집, 홈페이지를 만들게 된 것이다. 요즘은 홈페이지로 소통하는 경우가 많지만 온라인 세미나가 주로 이루어지는 인문세에게 홈페이지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인문세의 짧고도 긴 역사를 돌아보면 처음 우리는 집도 없었다. 동네 카페에서 세 명이 책을 읽으며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더 많은 인원이 초등학교 앞, 가죽 공방 공간을 빌려 쓰게 되었고 사람들이 더 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네이버 카페에 온라인 공간을 마련했다. 네이버 카페를 만들 때는 그때그때 카테고리를 바로 만들었다.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유명한 철학자를 공부하면서 방이 없으면 방을 만들고, 손님이 오면 급히 마루를 만들고 대문을 만드는 식이었다. 한창 네이버 카페에 정착하게 되니 안정적인 관계를 원하게 되었고, 시간 맞추어 올리는 숙제가 약속이 되었다. 이때 우리의 정체성은 글을 쓰고 올리는데 집중되어 있었다. 이렇게 열심히 쓴 글은 네이버 카페 목록에서 금방금방 묻혔다. 아무래도 매일같이 올라오는 숙제들의 양이 계속 이전 글을 밀어냈기 때문이다. 좀 더 자랑하고 싶은데 조금만 더 기다려줬으면 하는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사라지는 글들이 몹시 안타까웠다. 우리는 조금씩 홈페이지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인문세 홈페이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가 나온 건 1, 2년 즈음 되었지만 올해 본격적으로 인류학 공부를 위한 집짓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빨리 사라지는 글들을 붙잡고 싶었고, 인류학 공부에 필요한 방대한 자료와 정보들을 우리의 필요에 맞게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이제 아무 공부가 아니라 인류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공부를 나누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는 주변에 문의하여 집을 지어줄 전문가를 섭외했다. 어떤 홈페이지를 만들지 전문가와 상의하려는데 아뿔사! 전문가에게 어떤 집을 어떻게 지어달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이럴 땐 이렇게 바뀌고 저럴 땐 저렇게 바뀌어야 하는데 내가 원하는 걸 어떻게 설명하지? 문득 전문가에게 맡길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일단 우리가 만들어보자. 우리가 원하는 스타일의 집을 지어야 한다면 어설퍼도 일단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무얼 아는지, 모르는지도 모르는데 어떤 집을 지어달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 어쩌면 무모할지도 모를 우리의 집짓기 프로젝트는 일단 시작되었다. 인류학 세미나에서 읽은 버나드 루도프스키의 건축가 없는 건축은 자연의 변덕과 지형의 도전을 받아들이는 세계의 낡은 토속 건축물들에서 공동체성을 본다. 그가 소개하는 모든 건축들은 세상 유일무이한 모양과 기능을 가진다. 사용하는 사람들에 맞추어 깎고 다듬은 예술품처럼 그들만의 색깔을 느낄 수 있다. 그가 공동체적 건축에 대해 인용한 말이 인상적이다. ‘소수의 지식인이나 전문가가 일으킨 것이 아니라, 공통된 체험을 바탕으로 공통된 문화유산을 가진 모든 구성원의 자연발생적이고 계속적인 활동에 의해서 생산된 공동체적 예술’(버나드 루도프스키, 김미선 옮김, 건축가 없는 건축(스페이스타임), 15).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의 필요와 정체성이 드러나는 공간을 만들려면 인문세를 잘 모르는 전문가의 손길에 의존하기보다 서투른 기술이라도 우리 스스로 고민하는 건 좋은 선택이었다.

 

올릴레오에서 찾은 길

우리는 처음부터 네이버 카페를 만들겠다거나 홈페이지를 만들겠다거나 인류학을 하자거나 하는 목표는 없었다. 오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인문세 초창기에 카페 멤버에 나는 아직 참여하기 전이었는데, 어느 봄에 도서관에서 문학 독후감을 쓰다가 오선민 선생님의 권유로 인문세에 합류하게 되었다. 화요일에 어디로 오라는 말에 갔더니 가죽 공방을 공간을 빌려서 사용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왜 이런 곳에서 공부를 하는 건지,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지 그런건 생각하지 못했다. 숙제를 네이버 카페에 올리라는데 책이 도통 어려워서 읽기도 바쁜데 숙제까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화요일만 빌리는 비좁은 공간이지만 책 보고 세미나 하고 어느 날은 한의학으로 우리 신체에 대한 공부를 했다. 아득한 옛일이라 가물가물하다. 선생님께서는 내 눈을 까집고는 빈혈기가 있다고 하셨다. 손바닥에 침을 맞고 등도 두드려 주셨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이반 일리치의 저작을 읽으며 이런저런 공부를 하던 중 우리는 드디어 세종시에 공간을 갖게 되었다. 한여름 공간을 청소하러 가자는 어느 선생님을 따라 연구실에 방문했을 때 인문세의 실체가 그제야 조금 느껴지는 것 같았다. 오선민 선생님은 그림 동화를 주제로 책을 쓰고 있던 시기인데 가을이 되어 책이 출간되었다. 숙제를 올리는 온라인 네이버 카페는 1주년을 맞이했다. 계절이 변화하듯 조금씩 인문세는 공간이 변화했고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도 달라졌다.

사람들이 모일 공간이 생기자 네이버 카페는 조금 더 힘이 받는 것 같았다. 세미나가 조금 더 다양해졌고 숙제를 시간 맞춰 카페에 글을 올리는 건 공식적인 원칙이 되었다. 어떤 학인은 숙제를 제때 안내면 사람 취급도 못받는다고 말할 정도로 숙제는 우리의 관계를 만들어주었다. 매일매일 올라오는 글들은 다음 날이면 곧 리스트에서 사라졌다. 오늘의 숙제가 있지만 어제 올린 글을 좀 더 자랑하고 싶은데 야속하게 시스템은 그 글들을 잡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숙제를 모아서 시작도 끝도 없는 숙제의 길 (1) 라는 모음집을 만들게 되었다. 화요일마다 연구실에 모이는 네 명은 회의를 거쳐 글들을 모아 오타와 비문을 검토하고 표지 디자인까지 스스로 해냈다. 우리가 우리 손으로 엮은 첫 번째 모음집을 보면서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생각해보면 이날까지 이런 과정이 지금의 인문세를 색깔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정체성은 만든다기보다 하루하루 벽돌을 쌓듯이 만들어가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카페에 올렸던 글들이 하나씩 쌓이면서 사라진게 아니라 우리의 색깔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숙제 모음집 이름처럼 정말로 그때는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길을 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곧 우리의 공부를 나누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것이다.

박물관을 답사하면서 우리의 공부는 점점 인류학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 나눌레오

처음부터 인류학을 공부했던 건 아니지만 우리는 인류학에 닿아있었다. 이제 인류학을 나누어야겠다.

– 인류학을 하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가진 새로운 홈페이지가 필요했고 스스로 만들었다. 만드는 과정(메뉴)

– 문제가 발생했다. 철학과 자연학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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