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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안데르센 동화전집] 작은 것들의 행로

작성자
오켜니
작성일
2024-10-09 17:54
조회
67

동화인류학/안데르센 동화전집3/24.10.10/최옥현

 

작은 것들의 행로

 

작은 것들이 자기를 주장하고, 작은 것들의 눈높이에서 더 높은 위치를 볼 수 없는 한계를 보여주는 내용이 많았다. 작은 것들의 관계성에 대한 내용보다는 남과 비교하면서 자기를 주장하는 내용이다. 아마가 불에 타서 재가 된 후 노래는 끝나지 않았고 아름다운 일이 생길 것이라는 부분은 불멸을 이야기하는 듯 보였다. 사과나무 가지와 민들레는 모두 해님의 은혜를 동등하게 받고 있다는 면에서 평등함을 말하고 있다. 허세가 강한 옷깃은 넝마가 되는데 옷깃처럼 살아서는 안된다는 권선징악적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옷깃이든 아마포든 넝마가 되어 이야기가 적히는 종이가 되는데 무슨 의미가 있는 내용일까 궁금하다


어렸을 때 눈 앞에 있는 사물의 미래에 대한 상상을 종종 해보았다. 이 볼펜 삶에 영광의 순간은 언제일까? 이 볼펜은 무엇으로 변형될 수 있을까? 이 볼펜의 종말은 어디일까? 죽을 때까지 쓰레기에 묻혀 있게 될까? 어린아이들은 어른보다 사물의 영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존재들이어서 누구나 한번 즈음 해보는 상상이다. 볼펜 삶의 영광을 물었던 것은 내 삶에 대한 물음이었고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인간은 풀 한포기 같은 존재라는데 내가 풀 한포기처럼 작은 의미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작으면 의미가 없을까? 인간은 풀 한포기보다 더 의미 있는 존재일까?


안데르센 동화에는 작은 것들이 잡다하게 많이 들어 있다(완두콩, 물방울, 옷깃, 아마, 장난감 병정, 메밀, 사과나무 가지, 넝마 조각, 양치류 등). 동물들도 크지 않은 작은 동물들이 출현한다(오리, 황새, 나이팅게일, 수탉과 암탉, 백조, 딱정벌레, 벼룩, 물뱀, 두꺼비 등). 특히 새 종류가 많다. 작고 잡다한 것들은 자기애가 강하고 자기 세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자기 자리를 이동한 사물은 조금 더 다른 세계를 보기도 한다.


감침 바늘은 언제나 자기가 최고이다. 감침 바늘에 달린 긴 실은 자신의 시녀이며 요리사의 손가락은 자신을 떨어뜨리지 않게 꼭 붙들고 있어야 한다. 그러던 중 감침 바늘은 더러운 슬리퍼를 꿰메는 일을 거부하다가 부러지고 만다. 부러진 감침 바늘은 요리사에 의해 브로치로 만들어졌다. 자신이 존경을 받고 대접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수구에 떨어져도 감침 바늘의 정신 승리는 계속 된다. 스스로를 값비싼 것이라 생각하는 감침 바늘은 하수구에서 만난 나무토막, 지푸라기, 신문 조각을 비웃는다. 감침 바늘은 아이들에 의해 달걀 껍질에 꽂히기도 했지만 결국은 짐마차가 지나다니는 길바닥에 누워 있는 장면으로 동화는 끝이 난다. 감침 바늘은 너무 작아 길을 청소하는 사람들에게 눈에 띄기도 쉽지 않을 것이고 결국은 흙 속에 묻히거나 강한 비바람에 하수구나 강으로 떨어질 것이다.


여기 또 자기 세계에 갇혀 있는 달팽이 가족이 있다. 궁전에 살던 귀족들이 우엉 숲을 조성하여 식용 달팽이를 키웠는데 이제는 궁전이 없어지면서 우엉 숲과 달팽이들만 남았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달팽이들은 자신들이 고귀한 가문이기 때문에 이런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눈높이에서는 궁전과 관련된 일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늙은 달팽이는 자신들이 낯선 나라 출신이라는 것, 예전 그곳에 달팽이들이 많이 살았다는 것, 그때는 달팽이가 데쳐져 은접시에 올려졌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자신들이 데쳐져 은접시에 올라가는 일이 죽음이라는 것을 모르는지, 은접시에 올라가는 일을 영광스럽다고 생각한다. 늙은 달팽이 부부는 우엉 숲을 자식 달팽이 부부에게 물려주고 죽는다. 우엉잎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그들을 위해 쳐주는 북소리이며 해님은 우엉 숲을 화려하게 물들인다.

백작 부인의 화병에 꽂히게 되어 우쭐한 사과나무 가지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민들레나 사과나무 가지에게 똑같이 햇살을 보내주던 해님은 사과나무 가지에게 자신만 잘났다는 편견을 벗어나라고 조언해준다. 사과나무는 해님의 의견을 수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사과나무 가지는 잡초라고 무시하던 민들레를 아이들과 할머니와 백작 부인이 어떻게 다루는지 직접 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사과나무 가지가 이동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숲의 사과나무에서 백작 부인의 화병으로 이동했기에 민들레가 얼마나 사랑받는지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민들레를 꺾어 목걸이와 왕관으로 만들어 쓰고 민들레의 하얀 깃털 같은 씨앗을 후하고 불어주었다. 아이들의 할머니들은 꽃씨를 멀리 날려 보내주면 새 옷이 생긴다는 전설을 만들어 민들레의 생식을 도와주었다. 동네 할머니들은 민들레를 말려 약초를 만든다. 백작 부인은 민들레의 솜털 씨앗이 흩어지지 않게 곱게 싸와서, 사과나무 가지가 꽂힌 화병에 넣는다.

옷깃 주인공은 허세가 심하고 거짓말쟁이이다. 가난한 주인이 가진 것이라곤 장화와 머리빗과 멋진 옷깃뿐이다. 가난한데 머리빗을 가지고 다니는 주인을 닮았는지 옷깃은 계속 구혼을 하고 다니고 잇달아 차인다. 그래도 자신이 많은 여성들에게 사랑의 상처를 주었다며 자신의 서사를 왜곡한다. 결국 옷깃은 넝마가 되었고 이 이야기가 인쇄된 하얀 종이가 되었다.

또 다른 나르시스트 아마의 행로를 따라가보자. 사람들은 예쁜 푸른 꽃을 활짝 피운 아마의 줄기가 뽑아 부러뜨리고 물에 담가 빗질을 한다. 아마는 물레와 베틀에 놓여져 아름다운 아마포가 된다. 사람들은 아마포를 가위로 자르고 바늘로 찔러대어 12개의 속옷을 만든다. 속옷은 낡고 해져 넝마가 되고 펄프가 되고 흰 종이가 되었다. 글씨가 쓰여진 흰 종이는 난로에서 태워지고 붉은 불씨로 날리고 재만 남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존재가 된 아마는 노래는 결코 끝나지 않았어. 이제 가장 아름다운 일이 생길 거야.”라고 말한다.

 

침묵하는 책오래된 묘비는 상반된 의미를 보여주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책은 썩고 돌로 된 묘비는 남는다. 갇힌 기억과 흐르는 기억의 대비 같다. 스웨덴 출신의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학생은 예전에 자신이 만든 식물 표본집을 보면서 추억에 잠긴다. 식물 표본집은 학생이 잃어버린 추억을 되살려 그 시간을 음미하게 만들지만 식물 표본집에 담긴 기억은 그곳에 갇혀서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식물 표본집은 그 학생과 함께 무덤에 묻힌다. 하지만 오래된 묘비에 관련된 노부부의 사연은 노인에 의해 손자에게 말해진다. 손자에게 그 돌은 그냥 돌이 아니고 이야기책의 중요한 한 페이지처럼 생각되었다’. 오래된 묘비의 서사는 노인에서 손자로 흘러들어가 부활하였다. 손자가 어떤 이야기를 쓸지 모른다. 하지만 묘비에는 손자의 언어로 다음 세대가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쓰여질 것이다. 갇혀서 침묵하게 된 기억이 있음을 알고 돌에 쓰인 이야기가 전부라고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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