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안데르센 동화전집] 엄격한 어른의 시대
동화 인류학_안데르센
엄격한 어른의 시대
2024. 10. 08. 정혜숙
주제문: 왜 카렌의 두 발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부족했을까?
가난한 카렌은 구두 제작공의 아내로 부터 빨간 구두를 선물 받습니다. 그 구두는 이야기 도입부에서 죽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신고 버려지지만 카렌의 마음 속에 뿌리 깊은 인상과 미련을 남깁니다. 혼자가 된 카렌을 입양한 노부인의 집에 있는 거울은 카렌의 외모를 극찬하며 그녀의 마음을 한껏 부풀려 놓습니다.
카렌은 어린 공주의 빨간 신을 보고 홀린 듯 다시 빨간 신을 사게 됩니다. ‘홀린 듯’ 카렌은 이성을 잃고 장소와 때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어 꾸지람을 듣지만 자아도취에 빠져 헤어날 줄을 모릅니다. 빨간 신을 신은 카렌은 목발을 짚은 병든 군인으로 부터 멋진 무용화라며 칭찬을 듣고 춤출때 신기를 당부받습니다. 이야기의 끝을 알고 있다면 이 병든 군인은 적어도 천사보다는 악마로 보여집니다. 이 신발의 위험과 카렌의 위기를 알고도 상황이 악화되기를 멈추기 보다는 불행이 일어나기를 부축이는 제안이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춤을 추기 시작한 빨간 신은 카렌을 놓아 주지 않습니다. 힘겹게 벚겨져 신발장에 가둬진 빨간 신과 카렌. 그렇지만 카렌의 마음은 온통 빨간 신에게 가 있어 주기도문을 외우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입니다. 욕망에 눈이 먼 카렌은 죽어가는 노부인과 빨간 신 사이에서 빨간 신을 선택합니다. 춤추는 빨간 신의 형벌을 말해 주는 천사. 잘난 체하고 거만한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하고 그 릇된 허영의 댓가로 두 발을 잃게 될 카렌. 결국 신체(발)와 욕망을 함께 분리 당하는 벌을 받는 사이에도 죽음을 두려워해 목숨만은 갈구하는 인간적인 카렌은 한동안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카렌이 어린 아이로서 빨간 신을 탐할 때는 문제가 그렇게 심각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카렌이 견신례를 받을 나이 곧 성인이 되었는데도 자기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는 어른으로서 성장했을 때 겪어야 하는 책임과 약속을 어긴 댓가는 실로 어마어마한 상실로 되돌아 옵니다.
안데르센이 살았을 시대에 신발은 특정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장식 도구였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교회나 장례식 등 경건하고 검소한 복장을 지향하는 장소에서 화려하고 반짝이는 빨간색은 예의를 벚어나 무례로 간주되었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교회 벽 초상화의 눈길까지 사로잡은 빨간 신은 시각적 효과로서는 아주 성공적이지만 카렌에게는 치명적 실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신(하느님), 교회에 대한 믿음과 권위가 인간의 욕망을 죄악으로 바라보던 시대의 갈등은 많은 다양성과 인간성의 희생을 요구했을 것입니다. 세상사의 흥망성쇠가 유일신과 교회에 달렸던 시대에 ‘나’를 발견하기 시작한 근대의 도래에 좀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려고 했겠지요. 그래서인지 안데르센의 많은 이야기가 종교적 틀안에서 교훈을 찾고 있기도 합니다.
왜 카렌은 주변 분위기나 눈치를 챙기지 못해서 그런 끔찍한 형벌을 받았을까요? 회고 없는 욕망은 주위에 피해를 주거나 스스로를 다치게 할 수 있습니다. 채워지고자 하는 마음은 끝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일련의 불행과 가난한 삶의 부족함을 빨간 신을 신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으로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을 카렌의 마음이 조금 측은 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