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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인류학 연구실에서는 이렇게 지금 여기의 삶을 완전히 긍정하는 주인공들의 세계를 탐험합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정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자신을 만들어갑니다. 주인공의 삶이 어디로 이끌릴지는 아무도 모르고 정해진 것도 없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규정 지을 수 없는 존재들이 온갖 살 궁리로 복작거리는 숲에서 깔깔 웃고 떠들며 놀다 옵니다. 그리고 돌아온 그 자리에서 지금 여기의 삶에 감사하며 한 걸음 더 낯선 길을 나서봅니다. 필요한 것은 모든 우연을 수용하고 마음껏 상상하는 것 뿐!

미야자와 겐지와 안데르센의 의인화

작성자
최수정
작성일
2024-10-11 23:12
조회
144

미야자와 겐지와 안데르센의 의인화

 

2024.10.11. 최수정

 

인문세 화요인류학 시간에 읽은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에서 프란스 드 발은 의인화를 동물 중심의 성숙한 의인화와 인간 중심 의인화로 나누고, 인간 중심 의인화를 다시 동물을 유아화하는 의인화, 특정 동물에 대해 어리석고 고집 세고 우스꽝스러운 인상을 심어주는 풍자적 의인화, 불충분한 지식이나 소망에 근거하여 인간의 감정과 사고를 동물에 중첩시키는 성숙하지 않은 의인화로 구분한다. 프란스 드 발에 의하면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동물을 의인화하는 과정은 꼭 필요하다. 어떤 존재든 세계를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자기 경험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 자신을 이 있는 존재로 생각한다면 비인간도 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고대의 신화에서는 모든 비인간이 인간과 동등한 인격으로 세계에 등장한다. 여기서 동등한 인격이란 프란스 드 발이 동물 중심 의인화라고 말했던 그 성숙한 의인화의 바탕이 된다. ‘라는 고정점이 없이 내 앞에 있는 동물의 인격이 되는 것이다.

동화는 처음 신화의 일부로 구성된 민담이나 설화를 바탕으로 구비 전승되었다. 따라서 동화에 등장하는 비인간 주인공들은 인간과 동등한 위치에서 자기 이야기를 한다. 현실에서 애니미즘 세계관이 많이 사라졌다고 해도 동화에서 수많은 비인간 존재가 인간처럼 말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일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동화는 먼 옛날 인간이 만물에 인격적 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인격적 관점을 이동하며 살던 세계의 흔적이다. 동화를 읽으며 우리는 인간이 비인간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대화하고 상호작용하던 지혜의 공간을 드나든다.

나는 그동안 동화의 세계에서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주인공들이 같은 의인화라 생각했다. 인간이 생각하는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에 따라 의인화의 형태가 다르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동화인류학 시간에 다른 작가의 동화를 읽어가면서 작가에 따라, 시대에 따라 비인간을 의인화하는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알기 위한 사고 체계로 시작된 의인화가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가 달라지면서 그 모습이 변하고 있었다.

 

미야자와 겐지(1896~1933)

수렵민이 사냥물의 움직임을 예측할 때는 동물에게 의사가 있다고 간주하여, 그들이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고 바라는지 의인화한다.”(원숭이와 초밥 요리사, 76)

에서 수렵을 하던 고대인들이 사냥을 위해서는 사냥감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사냥감이 어디를 지나고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자세히 알아야 덫을 놓거나 추격이나 매복을 결정할 수 있다. 내가 동물이 지각하는 세계나 감정의 세계와 일치되어야 사냥감을 매혹해 나에게 끌어올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미야자와 겐지 동화의 의인화는 프란스 드 발이 말했던 동물 중심 의인화라 할 수 있다.

미야자와 겐지의 대표작 나메토코 산의 곰은 나메토코 산의 곰 사냥꾼인 고주로와 곰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것은 사냥꾼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곰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냥꾼과 곰의 마음이 연결되며 두 종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동화에서 고주로와 곰은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 아기 곰과 엄마 곰의 대화를 고주로가 듣고 가슴이 뭉클해 질 때 자신과 곰의 차이를 잊는다. 인간과 곰의 거리가 한없이 가까워져 차이가 사라진다. 사냥감을 발견하고 총을 쏘려는 고주로에게 곰은 2년만 기다려주라고 한다. 그리고 2년이 되는 날 곰은 고주로에게 찾아와 자기 몸을 바친다. 나메토코 산에서 고주로는 곰의 말을 알아듣고, 곰은 고주로의 말을 알아듣는다.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은 서로 깊이 연결되어있다는 뜻이다. 서로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인간의 개인화, ‘라는 정체성이 자리 잡을 공간이 있을까.

먹고 살기 위해 곰 사냥을 하고 살 수밖에 없었던 고주로가 이제는 자신의 몸으로 곰을 먹일 때가 다가온다. 곰은 고주로를 죽일 생각이 없었지만, 고주로는 곰이 그랬듯 자기 몸을 곰에게 던지듯 바친다. 사냥꾼이 곰을 잡는 것인지, 곰이 사냥꾼을 잡는 것인지 모를 숲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는 불투명해진다. 나메토코 산의 먹고 먹히는 관계에 들어간 고주로는 그 속에서 나인지 곰인지 모를 그 사이에서 분열한다. ‘라는 고정점이 사라진다.

미야자와 겐지 동화에서 동물은 인간과 대등한 의미를 지닌다. 대등한 생명의 관계에 있다.그래서 자신을 둘러싼 사건의 출발점도 가 아니다. 언제나 외부의 상호작용에서 일어나고, 나의 위치는 외부 관계에 의해 움직인다. 내가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의 외부도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저쪽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미야자와 겐지에게 곰을 의인화한다는 일은 인간이 자기를 잊는 망아(忘我)의 단계가 되어, 곰에게 마음이 되는 것이다.

미야자와 겐지 동화에서 인간 존재는 라는 것이 영속하지 않는다. 인간의 정체성, 곰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형태적 정체성일 뿐이다. 서로를 알아보기 위한 외모의 구별이 있을 뿐이다. 형태적 조건에서 다른 형태와 관계를 겪으면서 자기 신체 능력이 올라간다. 관계의 다양성에서 서로를 배우며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진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1875)

미야자와 겐지보다 이른 시기에 활동한 작가이지만 덴마크에 살던 안데르센은 근대의 격변기에 놓여 있었다. 덴마크의 도시 코펜하겐에서 생활하며 변화하는 시대를 온몸으로 겪은 그는 근대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도시와 시골, 옳고 그른 것, 아름답고 추한 것, 외면과 내면이 분명하게 나뉘어 있다. 안데르센 동화의 배경은 주로 도시. 등장하는 동물도 주로 인간 생활 가까이 있는 동·식물이나 사물이다. 오리, 나이팅게일, 장미, 전나무, 가로등 등.

동화를 이끄는 화자는 주로 3인칭 시점을 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위치에서 보고 듣고 이야기한다. 그의 동화에는 초월적, 관념적으로 세상을 생각하는 자기가 있다. 모든 사건의 인과가 로부터 출발한다.

못생긴 새끼 오리는 아름답지 못하고 못생긴’, ‘의 외모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고 고난을 겪는다. 비인간은 인간과도 동등하지 않고, 같은 종 사이에서도 못생기고 열등한 개체가 있다. ‘의 정체성은 다른 존재의 규정으로 결정되고, ‘는 나를 규정하는 존재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분명 오리가 인간 중심 의인화되어 있다. 오리가 외모로 좌절하고 삶을 비관할 리 없다. 못생긴 새끼 오리는 백조가 될 때까지 어떤 존재와의 관계에서 성장하지 못하고 저절로 아름다운 존재로 변신한다.

미야자와 겐지 쏙독새의 별에서도 쏙독새는 정말로 못생긴새다. 그런다. 쏙독새는 자신이 못생겼다고 처지를 원망하지도 않고, 이름을 바꾸라는 협박에도 굴하지 않는다. 쏙독새는 자기보다 다른 존재에 더 가까이 있다. 자신이 우연히 삼킨 장수풍댕이 때문에 괴로워한다. 자기와 관계 맺는 이 세상의 다른 존재의 아픔을 고통스러워한다. 이는 쏙독새의 아픔이고, 미야자와 겐지의 괴로움이다.

인간 중심 의인화는 인간과 비인간의 감정이 중첩되어 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진 것처럼 보이지만, 관계의 상호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먼 거리에 있다. 안데르센 동화의 주인공들은 자기 내면의 정체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자기라는 내적 고유함이 있어 다른 존재와의 서로 다른 이해의 거리감을 좁히지 못한다. ‘의 정체성은 어떤 구체적인 것이 아니고 추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 연결의 고리가 될 수 없다.

안데르센 동화 속 주인공들의 의 내면은 나의 외부로부터 물러나 있고 세상과 대결하고 있다. 그래서 나의 내면과 구분되는 외부는 언제나 객관적 풍경으로만 보인다. 세상은 나에게 멀리 떨어져 관찰하는 대상이 되어 삶의 공간이 아닌 순수한 풍경으로 묘사한다. 따라서 그 단절의 거리에서 겪을 것이 없고, 능력이 향상되지도 못한다.

미야자와 겐지와 안데르센 동화의 의인화를 비교해보면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 변화도 볼 수 있다. 미야자와 겐지 동화에서 비인간들은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 보이지만, 안데르센 동화에서 비인간은 때에 따라 인간의 좋은 모습과 그렇지 못한 모습을 투영하는 존재다. 때로는 아이처럼 약한 존재로, 또는 우스꽝스럽고 못난 모습으로, 혹은 인간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존재로 비추어진다.

 

 

 

전체 1

  • 2024-10-13 23:33

    숲/도시, 사냥꾼과 곰 사이에서 정체성 분열/’나’라는 자아, 구체적이고 생생한 묘사/위에서 내려다 보는 3인칭 시점, 동물 중심의 의인화/우스꽝스러운 대상으로서의 의인화 등 미야자와 겐지와 안데르센의 비교가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안데르센 동화에는 포식자가 없고 도시 주변의 작은 동물들이 포진해 있는 것이군요. 나와 타인은 서로 다른 이해의 거리감을 갖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조금 덜 ‘나’를 주장할 수 있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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