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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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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사고] (1) 한계가 만들어 내는 변주들

작성자
조재영
작성일
2024-10-14 17:55
조회
146

한계가 만들어 내는 변주들

 

 

 

우주의 원초적 질서

개념의 한계 설정이란 언어마다 다르다고 레비스트로스는 말한다. 추상적 언어 사용은 지적 능력의 수준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각 집단마다의 관심사, 그 차이와 관련이 있다. 그들이 언어를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는 가를 보면 이 집단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인간은 우주와 세계에 대한 지적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세상을 면밀히 관찰하며 자신들의 언어를 통해 고도화된 지식 체계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레비 스트로스는 고도로 체계화된 지식이 꼭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은 생리적, 경제적, 실용적 목적을 넘어 지적 욕구그 자체를 충족시키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욕구에 원주민도 예외가 아니다. 이 지적 욕구는 달리 말하면 혼돈처럼 보이는 우주에 어떤 원초적 질서를 부여하고 싶어 하는 욕구이다. 각자 사용하는 언어, 또 그 언어와 함께 만든 개념은 달라도 우주에 원초적 질서를 부여하고 싶어 하는 욕구는 동일하다.

어떤 원주민은 모든 성스러운 것들은 다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62)고 말했다. 제자리에 위치해 있음이 그것을 성스럽게 만든다고 믿는다. 즉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 그 자리에 있음으로서 우주 전체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원시인의 의례와 의식은 모든 존재, 사물들 그 특징에 맞게 각자의 위치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철저히 사물을 관찰하는 것은 물론, 연관성 있는 것끼리 조직적으로 분류하는 등 우주 전체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아야 한다는 절대 명제 속에서 각자의 위치를 재배치해야 하는 이 과정은 고도의 세밀화 작업이다. 신화적, 주술적 사고에서 우주 질서와 그것을 무너뜨리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구조, 조직적 분류와 배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손재주꾼

그리고 레비 스트로스는 이 구조화에는 그 자체에 본질적인 효용성이 있을 뿐 아니라, 그 자체로 미적 가치를 갖는다고 말한다. 예컨대 야생버찌, 계피, 바닐라, 셰리주는 향기에 의해서만 한 무리로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알디히드를 포함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떤 종이 독특한 모양, , 향기 등을 가지고 있을 때 눈으로 보이는 특징만큼 독특하면서도 숨어있는 어떤 속성이 있을 것이라 여긴다. 관찰되는 특징은 어떤 속성이 겉으로 드러나 표현된 것이다. 내적 속성과 외적 특징(표현)은 분명 관련성이 있다.

뒤이어 레비 스트로스는 신화적, 주술적 사고는 일종의 지적인 손재주(브리콜라주)’라고 말한다. 광범위하고 잡다한 그러면서도 한정된 재료를 가지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이 이 사고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특히 레비 스트로스는 이 재료들의 한계성을 강조한다. 목적이 선행되고 그 목적에 맞게 계획하여 재료를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제 자체가 우연히 주어지는 것으로 그 우연에 맞춰 지금 옆에 있는 주어진 것들로 어떻게든 해내야하는 것이다. 해서 손재주꾼에게 부품, 재료는 동일한 유형에 속하는 것이라면 어떠한 조작에라도 쓸 수 있는 매체, 조작매체이다. 손재주꾼에게 던져지는 우연성은 그들은 건너편이 아니라 이편에 머물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화적 사고의 여러 요소들이 지각(percept)와 개념(concept)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각 내용은 그것이 일어난 구체적 상황에서 분리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호

이미지와 개념 사이에 매개체가 존재하는데, 그것이 기호이다. 기호는 이미지와 개념을 연결시킨다. 이미지와 개념은 기표, 기의의 역할을 한다. 기호는 구체적 존재라는 점에서 이미지와, 지시 능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개념과 비슷하다. 개념도 기호도 다른 것으로 대체 될 수 있지만 이때 개념이 무한한 반면, 기호는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신화의 언어(미리 정해진 의미), 손재주꾼의 부품이 제한적인 것도 마찬가지다.

엔지니어(과학)가 무한한 개념을 사용하는 반면, 해서 문명의 특정 상황에 의한 구속에 부딪쳤을 때 건너편에 도달하려는 데 반해 손재주꾼(신화)은 기호를 사용해서 어떻게 해서든 이편에서 해결해 내야한다. 개념과 기호 둘 다 현실을 반영한다 하더라도 기호의 경우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내용, 문화적 요소가 개입되는 것을 허용하고 또 요구하기도 한다.

이미지는 기호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관념일 수는 없다. 이미지와 기호는 관념과 공존할 수 있지만 함축성이 결여되어 있어서 개념처럼 같은 유형의 다른 요소와 무하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술과 신화

예술은 과학적 인식과 신화적 사고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예술 작품은 기본적으로 축소를 전제로 한다. 언제나 대상의 어떤 차원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축소를 통해 상사체에 대한 우리의 능력은 신기하게도 증대되고 다양해진다. 이는 그 상사체를 손으로 잡고 가늠하면서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예술의 핵심 중 하나는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인데, 대상물을 단순히 투영하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대상물에 대한 실제 경험을 구성해 낸다. 과학은 실제 크기를 다루지만 기계를 이용하여 환유적 방법을 취하는 반면 예술은 은유적이다.

화가는 내적 지식과 외적 지식, 존재하는 것과 형성되는 것을 결합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붓으로 캔버스 위에 존재하게 한다. 미적 감동은 구조적 질서와 사건의 질서 간 결합에서 생긴다. 예수은 사물과 사건의 집합에서 출발하여 하나의 공통 구조를 밝히면서 총체적 성격으로 결합되는 반면, 신화는 먼저 구조를 통해서 사건의 집합으로 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예술은 사물과 사건의 집합에서 구조를, 신화는 구조에서 사물과 사건의 집합을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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