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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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사고] 왜 구체의 과학인가
왜 구체의 과학인가
레비 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레비 스트로스 지음, 안정남 옮김, 한길사)에서 우리가 미개하고 원시적이라고 생각하는 원주민의 신화, 토템, 의례 들을 살펴봄으로써 그들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깨고자 한다. 이 책의 ‘1장 구체의 과학’과 ‘2장 토템적 분류의 논리’에서 그는 여러 원주민족들이 자연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사용하는 주술, 토템, 의례 들을 예로 들며, 그들의 사고가 합리적, 논리적이라고 하는 서양의 과학보다 얼마나 더 실용적이며 구체적이고 역사적이고 관계적인지를 설명한다. 원주민의 사회에서든 서양의 과학에서는 자연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분류’이다. 그들이 주술, 토템, 의례 등을 통해 하는 분류법이 왜 실용적이고 구체적이고 역사적이고 관계적인지 한번 살펴보자.
주변에 대한 철저한 관찰
‘니그리토족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실질적인 한 부분’이며 그들은 ‘그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을 끊임없이 연구한다’(같은 책, 54쪽). 피그미족의 한 부족 니그리토족과 그 외의 피그미족, 류큐의 원주민, 코아휠라 인디언, 피나투보족, 하누노족 등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그들이 자연 환경, 즉 동식물계에 대해 얼마나 자세하고 정확하고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들은 세밀한 관찰을 통해 한 종의 동식물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구분하고 분류하며 그 특성이나 습성, 암수의 구분까지도 잘 알고 있다. 서양의 과학은 그들의 분류나 지식이 주관적이고 즉흥적이며 일반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원주민들이 자연을 얼마나 직접적이고 세밀하게 관찰하며, 그리고 그 지식들이 대대로 물려지고 공유되는 지를 보면 달라지게 된다.
또 그들이 관찰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동식물은 자신들에게 유용한 것에만 있지 않았다. 이는 각 부족들이 갖고 있는 동식물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명칭들, 또 직접적 쓸모도 없는 박쥐나 파충류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분류하고 체계화시키는 피그미족과 인디언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주변의 모든 것들을 연구하고 체계화시키는 이유는 자신들과 환경의 밀접한 관계(57쪽)와 지적 욕구 때문(61쪽)이다. 자연에 대한 광범위하고 방대한 지식, 토템이나 신화, 동식물의 이름 짓기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관계 안에서의 자기 자리 지키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연의 모든 개체들이 연결되고 질서지어 있으며 그 법칙에서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감각적 직관
원주민의 사고는 직관적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이때 직관이란 어떤 논리적 사유나 증명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번에 대상을 파악한다는 의미에서 신뢰하기 어려운 직관이다. 비슷한 향이나 쓴 맛, 생김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한 계열로 분류되거나 비슷한 효력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등의 사고는 비과하적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화학이라는 과학에 의해 이들의 계열화나 효능 등은 많은 부분이 증명되었다. 오랜 시간의 경험과 감각의 축적을 통해 세상을 구조화하고 체계화해서 파악하고 일종의 방향과 금기를 부여하는 일이 주술과 의례이다. 레비 스트로스는 이러한 주술적 인식을 근대의 과학과 대비해서 신석기시대의 과학이라고 말한다.
신석기시대 인간이 이룬 토기, 직물, 농경, 가축화 등의 기술은 ‘몇 세기에 걸친 능동적이고 조직적인 관찰’, ‘대담한 가설을 세워 반복해서 실험하고 검증하는 수많은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66쪽). 당시의 인류는 이미 지적인 호기심을 갖고 그러한 과학적 업적을 달성하였다. 신석기시대의 과학은 근대의 과학과 같이 과학적 인식을 통해 자연에 접근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 둘이 달리하는 것은 그 경로이다. 신석기시대의 과학이 ‘지각이나 상상력의 차원에서 시선을 집중시키는’ ‘감각적 직관에 매우 가까운 길’이라면, 근대의 과학은 지각과 상상력의 차원으로부터 ‘벗어나는 데에 목적’을 두는 감각적 직관과는 ‘아주 먼 길’인 것이다.(68쪽)
레비 스트로스는 여기에서 두 사고가 인간 정신의 발달 단계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원주민의 사고가 근대의 우리보다 덜 발달되어 있다는 데에 비판적 관점을 제시한다. 그의 관점으로 본다면 신석기시대의 과학이 이전의 수 세기에 걸친 경험을 통해 직관적 앎에 이르는 길이었다면, 근대의 과학은 그러한 앎에 다른 방식으로 도달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분류
원주민들이 세계를 분류하고 체계화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부족마다 그 분류는 다르고 세상을 바라보는 각자의 위치, 관점 또한 다르다. 하지만 이 책의 ‘2장 토템적 분류의 논리’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그들이 세계를 분류하고 체계화하여 만들어 내는 여러 부족의 토템과 의례, 신화가 다분히 관계적이고 역사적이라는 점이다. ‘어느 문화에서고 불변하며 일정하게 나타나느 ㄴ것은 요소 하나하나가 아니라 그 요소들이 이루는 관계들일 뿐이다’(116쪽).그들은 세계의 유한한 재료들을 매순간 그 조합을 달리하며 다양하게 구조화시킨다. 그 바탕에는 앞서 얘기했듯이 주변에 대한 철저한 관찰과 연구, 경험의 집적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재료들이 서로 밀접하고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자연의 동식물에 대한 그들의 방대한 지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점을 레비 스트로스는 아쉬워한다.
‘모든 사회 문화가 공통으로 선택하게 되어 있는 체계는 하나도 없다’(118쪽). 요소 자체는 결코 내재적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 의미는 ‘위치’에 다라 정해진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역사와 문화적 상황에, 또 한편으로는 그들 요소가 참가하고 있는 구조적 체계에 따라 변화한다(118쪽)‘. 이는 그들의 이름 짓기와 전설의 역사를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이름과 전설은 큰 체계에서는 벗어나지 않을지라도 그 이름이 지어지고 사회가 변화되는 상황과 사건들에 의해 바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