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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스웨덴 특파원이 들려주는 슬기로운 외국살이

[일희일비(日喜日悲) 스톡홀름 Life] 노벨박물관

작성자
Yeonju
작성일
2024-10-14 23:53
조회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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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스웨덴 스톡홀름의 감라스탄 Gamla Stan (올드타운)에 위치한 노벨 박물관의 연간회원입니다. (회비만 내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답니다.) 스웨덴에 얼마나 오래 머무를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노벨상에 대해 가장 잘 아는 한국인 100명 중에 들어가고 싶어 매주 금요일 퇴근 후 박물관에 가곤합니다. 금요일 퇴근 후의 박물관은 항상 편한 복장의 관광객들로 적당히 붐비고, 그 속에서는 특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7시 즈음 박물관 직원들이 영어로 투어를 진행하는데, 20대 초반의 직원들이 각자 공부하며 투어를 준비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입구에서 노벨이 왜 노벨상에 대한 유언을 남겼는지, 그리고 스웨덴 중앙은행 설립 300주년을 기념해 제정된 노벨 경제학상(정확히는스웨덴 중앙은행 경제학상‘)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 후 투어가 시작됩니다. 작년까지는 스크린 터치로 모든 수상자의 이름을 보여주는 작은 화면들이 줄 지어 있었지만, 올해부터는 수상자들이 기부한 물품들이 주제별로 전시되고 있어 더욱 흥미로워졌습니다. 모든 물건을 보여 줄 수는 없기에, 시기에 따라 물건을 교체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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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 수상자들은 각자 의미 있는 물건을 기부하는데, 그 기부 물품 중 하나인 세제는 리차드 탈러(Richard Thaler)라는 경제학 수상자가 기부한 것입니다. 그는 2017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으며, 행동 경제학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탈러는 소비자 행동과 의사 결정 과정을 연구하며, 사람들이 어떻게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지를 탐구했습니다. 다른 연구소에서 함께 연구하던 동료와 의도치 않게 빨래방에서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 토론을 나눴다고 합니다.


  또 다른 기증품으로는 제이 마이클 비숍(J. Michael Bishop)이라는 생리학 수상자가 기증한 토템 같은 작은 깡통이 있습니다. 그는 1989년에 노벨 생리학 또는 의학상을 수상했으며, 암세포의 성장 및 발달에 관한 연구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깡통은 그의 연구팀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아 늘 숨겨두곤 했습니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고는 기분 좋게 이곳에 기증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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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와 관련하여 노벨상을 수상한 배리 마셜(Barry Marshall)로빈 워렌(Robin Warren)의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이들은 2005년에 노벨 생리학 또는 의학상을 수상하였으며,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가 위염과 위궤양의 주요 원인균임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배리 마셜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를 실험실에서 배양하고, 이를 통해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자신의 몸에 헬리코박터를 감염시키는 실험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대담한 접근은 소화기 질환 치료에 혁신을 가져온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배리 마셜은 한국에서 야쿠르트 광고에 출연하여 헬리코박터 관련 질병 예방과 장 건강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광고에 출연한 후, 2005에 노벨상을 수상하였으며, 매년 자신이 상을 받을 것이라고 믿고 매년 펍에서 전화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노벨 수상자 치고는 드물게 자신의 연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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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 카페에 놓인 의자를 뒤집어보면 수상자들의 사인을 볼 수 있는데, 뒤집는 사람 열에 아홉은 한국분들입니다. 자꾸 뒤집어서 봤더니, 이제는 박물관 내 기념품 점 입구에 아예 의자를 뒤집어서 사진처럼 둔 것을 보고 ‘대단한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아주 잠시 했었습니다. 


  스웨덴어를 할 수 있다면, 박물관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수상자에 대한 이야기, 상에 대한 이야기, 작품에 대한 이야기 등 여러 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현재 노벨 박물관에서는 “시간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습니다이 프로그램은 생물학물리학문학 등 노벨 수상의 여러 분야의 관점이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정의하는지를 탐구합니다예를 들어원자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는 10억분의 1초와 같은 미세한 단위를 측정하는 반면우주의 나이를 측정하는 과학자는 시간을 광년으로 계산합니다. 반면 시인이나 소설가들은 30년 전의 저녁을 오늘처럼 생생히 기억해 묘사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시간의 관점을 통해 제가 갖고 있는 시간의 스펙트럼도 생각해보았습니다. 1분이 지나 놓친 지하철, 30초만 더 달리면 되는 인터벌 달리기, 30시간이 되는 스톡홀름-부산 비행시간. 나노단위로, 내가 죽은 후를 생각하는 시간의 개념은 아마 여기 오지 않았다면, 절대로 고민해보지 않았을 시간의 단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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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히 Launch행사에서는 배우들이 직접 수상자들의 시나 소설에 나온 다양한 시간에 대한 관점을 보여주는 부분을 낭독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이 박물관 입구에 한국인의 이름이 1년 내내 방문객들을 맞이하게 됩니다. 제가 직접 기여한 건 아니지만, 모국어로 노벨 문학상 수상 작품을 읽을 수 있게 되어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이처럼 노벨상과 대한민국이 연결되는 모습을 보며, 제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제가 다른 나라의 문학 작품들을 만났던 것처럼 앞으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해서 한강의 소설을 통해 한국의 문학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전체 5

  • 2024-10-19 15:39

    노벨상에 대해 가장 잘 아는 한국인이 되겠다는 포부가 너무 재밌고 멋져요. 응원합니다. 연주샘.
    빨래방에서 뭘 집중 못하고 멍하니 시간만 보낸 것 같은데요. 빨래방 토론 멋져요.


  • 2024-10-20 15:16

    노벨 박물관이 있는줄도 몰랐어요. 연주샘이 연간 회원인줄도 몰랐고요^^
    한강 선생님의 수상 인터뷰도 너무 감동적이었는데요.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커피를 비롯한 카페인도 끊고..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로 시작하는, 차분하면서도 집중되는 말씀이었습니다.

    빨래방에서 나눈 이야기라 세제가 있는건가요. 그 옆은 맥주 2병인가요. 수상자들은 대개(?) 물품을 기부하고 그 사연을 적는지도 궁금하네요.
    조만간 인문세에서 열리는 한강 선생님의 <채식주의자>를 기다립니다.


  • 2024-10-20 22:46

    오호 진짜루 전혀 생각 못햇던 곳인데요, 노벨 박물관이 있었군요. 노벨상만 있는 줄 ㅎㅎ 사진과 글 감사합니다.


  • 2024-10-17 00:14

    참으로 시의적절하고 흥미로운 노벨박물관이야깁니다. 마치 스톡홀름에 계신 연주쌤께서 노벨박물관 이야기를 들려주시기 위해 한강의 소설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처럼요.^^
    노벨상 수상자들이 기부한 물품 이야기도 재밌고, ‘시간’을 주제로 열리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흥미롭네요.
    이제 금요일마다 노벨박물관 입구의 ‘한강’이라는 이름을 보고 한국인임을 뿌듯해하며, 살짝 어깨에 힘을 주고 박물관을 들어설 연주 선생님의 모습도 상상해 봅니다.
    다음 스톡홀름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홍홍홍~~


  • 2024-10-18 07:03

    노벨 박물관의 전시 물품이 노벨상을 받게 한 연구 업적과 관련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노벨상을 받기 까지 연구하신 일생 전체를 함축하는 것들이 전시되어 있군요. Tide 세제통이 인상 깊었습니다! 노벨상을 받으려면 빨래방에 가서 토론해야 하는 게 아닌지. 연주샘 덕분에 노벨 박물관도 알게 되고 생생한 지구 저 편의 삶도 상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