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인류학
두 손으로 도구를 다듬었던 인류의 지혜를 배우자
[전쟁과 농업(2)] 즉효성의 기술과 퇴비장
즉효성의 기술과 퇴비장
농가의 장점은 ‘음식물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먹는 것과 관련해서 음식이 쓰레기가 되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퇴비장이 있기 때문이다. 남거나 상한 음식을 퇴비화해서 작물 거름으로 쓸 수 있다. 대규모 음식물 순환 시스템을 건설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한 가정의 퇴비장 만드는 것은 뚝딱 가능하다.
작아질수록 비용 면에서나 시간 면에서나 오히려 효율이 높아진다. 남반구의 굶주림으로 뒷받침되는 ‘포식의 시대’로 접어든 북반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기술과 시스템의 규모를 줄여서 자기 손으로 자기 선에서 처리하는 일을 늘리는 것일 것 같다.
농가의 퇴비화는 ‘즉효성’의 기술과는 거리가 멀다. 쉬어버린 밥과 국, 애매하게 남은 반찬, 야채 껍질, 조개껍데기 같은 것들이 발효되어 퇴비로 변하는 데는 조건에 따라 수개월이 걸린다. 퇴비를 넣은 흙은 화학 비료를 투입했을 때처럼 빠르게 작물에 영향을 주진 않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서 조금씩 작물에 영양을 공급하고, 다양한 미생물들의 서식처가 된다.
즉효성의 기술은 20세기 각 분야와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농업과 전쟁은 고비용의 농업 기술들과 살상 기계들을 개발했다. 정치 영역에서 사용되는 즉효성의 기술은 다름 아닌 ‘프로파간다’이다. 단번에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말과 수사를 통해 다양한 의견들을 정리하고 미디어를 통해 전달하는 기술이 민주주의 제도를 지탱해왔다.
한나 아렌트는 『혁명에 대하여』에서 러시아 혁명을 비판하고, 평의회(소비에트와 레테) 조직과 미국독립혁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작은 단위의 상호 의견 교환이 가능하지 않으면 혁명이 전체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경고일 것이다.
의견을 교환하는 일이 결론을 내는 일보다 우선시되는 정치를 생각해야 한다. 의견이 모여 흐름을 만드는 것을 퇴비화에 비교할 수 있다면, 오래 걸린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토양을 자기 손으로 만들 수 있는 실질적이고 더 효율적인 방법이다. 21세기에 길러야 할 인간의 감각은 느긋함에 대한 감각일 것이다.
이반 일리치 『젠더』
163쪽부터 ->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을 가득 채운 조상들
165쪽부터 ->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이 고딕 양식으로 바뀌면서 추방
아주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