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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인류학

 

 

[빙하 이후] 근시안을 멈추는 고고학적 탐구법

작성자
보나
작성일
2024-07-01 17:59
조회
163

근시안을 멈추는 고고학적 탐구법

 

존 러복이 이번에 도착한 곳은 남아시아다. 러복은 서기전 20,000년 최후빙하극성기 이후 서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대륙과 오스트레일리아를 거쳐 선사시대 인류의 발자취를 따라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빙하 이후의 저자 스티븐 마이든이 이렇게 선사시대의 여행에 초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이든은 서문에 역사가 단순히 고고학자가 찾아낸 기념비적 물건이나 문자로 기록된 사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 대한 서사임을 분명히 밝힌다. 이 시대의 상식으로 통하며 생산성과 효율성의 잣대에 근거한 산업사회의 진보관을 문제 삼는다. 그렇다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길래 이름조차 낯선 서기전 20.000년부터의 세계를 여행하기를 촉구하는 것일까? AI가 인간의 손과 발이 되어 활약하고 상상력마저 예측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이 바쁜 시대에 말이다. 첨단기술의 발전 속도에 따라가지는 못하더라도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당장 코딩이라도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예측하셨다시피 이것이 바로 문제다. 인류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기술과 제도에 압도된 지금 우리는 누구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숙고할 여유가 없다. 진보관에 사로잡힌 현대인은 자신이 발 딛고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풍경과 개인의 본성을 둘러볼 여유를 갖지 못하고, 끝없는 전진만을 강요당한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거대한 자연의 흐름에 맞서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자연과 관계를 조율하며 살아온 호모 사피엔스의 지혜는 이제 각자가 축적해야 할 재산이나 무기가 되어 서로를 착취한다. 고고학적으로 인류의 조상들에게 자연은 단순히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때로는 선물로, 때로는 두려움으로 다가오며 끊임없이 배움이 창출되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이에 호모 사피엔스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지형과 조건에 맞춰 새로운 방식으로 온갖 기예(技藝)를 익히며 살아왔다.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시대의 상식과 근시안은 호모사피엔스의 무한한 상상력과 잠재력을 위축시켜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이러한 사태에 찜찜함을 느끼며 문제임을 짐작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것이 우리가 지금 이토록 낯선 빙하 이후와 이러한 텍스트에 접속한 이유일 것이다. 지난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끊임없이 자연을 탐구하며 배우고, 고난을 헤치며 몇백 km는 거뜬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살아온 현생인류의 모험심과 호기심은 우리에게도 가득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의 선함을 믿으며 지혜를 탐구하는 호모 사피엔스다. 빙하 이후의 마이든이 촉구하는 선사시대의 여행은 자신이 발 딛고 살아가는 세계를 다시 살펴볼 기회를 준다. 너무 낯선 세계로의 여행으로 내가 살아가고 있는 한 뼘의 땅떼기가 조금은 다르게 보일지 모른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자신의 잣대로 세상을 성급하게 판단하던 습관은 잠시 멈춰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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