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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안데르센] 생각과 기억의 신이 거주하는 나무

작성자
최수정
작성일
2024-10-23 17:49
조회
69

생각과 기억의 신이 거주하는 나무

 

2024.10.23. 최수정

 

안데르센이 살던 낭만주의 시대는 합리적, 이성적, 논리적, 현실적인 것들과 거리를 두고, 감성적, 비현실적인 신비로운 분위기를 담아내는 문학이 유행했다고 한다. 낭만주의는 민담을 듣고 자랐던 안데르센에게 동화를 창작하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

이번 시간 안데르센을 읽으면서 나는 민담에 등장하는 숲과 나무의 신화를 듣고 자랐던 안데르센에게 남아있던 감성이 그의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것을 본다. 안데르센에게 나무는 문명화된 인간의 잃어버린 순수성을 간직하고 있다. 동화의 주인공이 딱총나무와 버드나무와 함께 떠올리는 고향과 연결된 추억은 나무에 기대고 나무와 함께 생각한 환상을 떠올리게 한다.

 

현자의 돌에서 눈먼 여동생은 오빠들을 구하러 생각의 날개’(551)를 타고 간다. 소시지 꼬챙이로 만든 수프에서 수프를 만들어 왕비가 된 세 번째 쥐는 수프 만드는 법을 초자연적인 것에서 배운 것도 아니고, 무엇을 갉어먹어서 안 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부엉이와 얘기해서 알아낸 것도 아니에요. 곰곰이 생각해서 알아낸 것이지요.”(564)라고 말하며 생각을 강조하고 있다. ‘생각우리 곁을 떠나는 법이 없.(671) 그리고 생각은 말로 표현해야 쓸모가 있다’(478), ‘생각은 말이 되어 세상 밖으로 전해진다.’(673) 안데르센에게 생각하느님의 마음에서 나오는 빛’(686)이고, 그것이 말이되고 행동이 되어 세상에 쓸모를 가진다.

이번 시간 동화 읽기에서는 우리가 읽었던 북유럽 신화와 나무의 신화가 많이 떠올랐다. 우주목 이그다르실에 살고 있는 오딘은 두 마리 까마귀를 키운다. 새들이 이름은 생각기억이다. 까마귀들은 온 세상을 날아다니며 새로운 정보를 수집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전한다.

안데르센은 이 생각과 기억을 나무와 연결하고 있다. 동화 속 나무는 주로 고향을 떠난 주인공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고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나와 연결되어 있다. 주인공은 언제나 나무와 연결되고 싶고 나무가 있는 곳에 돌아가고 싶다. 그런 점에서 나무는 나의 고향이며 신이 거주하고 생각과 기억의 새가 날아드는 곳이다.

버드나무 아래서이야기도 그 예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주인공 쿠누트는 고향의 버드나무 아래서놀기를 좋아했다. 그곳은 하느님이 늘 지켜보고 계셨기 때문에 안전했다. 요한나가 떠나고, 요한나를 잊기 위해 버드나무를 피해 무작정 떠돌았던 이유도 그 나무가 요한나에 대한 생각과 기억을 상기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픈 몸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던 이유도 그 버드나무 아래’(477)서 과거의 추억과 함께 살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읽었던 이야기를 되새기면 안데르센과 동화전집(현대지성) 첫 작품 부싯깃 통도 나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큰 나무 꼭대기로 올라가면 구멍이 보인다. 구멍 속으로 깊숙이 내려가 보면 나무 밑바닥에 보물이 있다. 주인공이 나무 꼭대기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니, 북유럽 신화의 오딘이 거꾸로 매달려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과 겹친다. 안데르센은 인간이 나무와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온 시간을 떠올리고 있는 것일까?

 

바람의 이야기는 금을 만들기 위해 끝없이 나무를 베어 불을 지피는 거만한 왕족 출신인 발데마르 다에의 이야기다. 그에게는 이다, 요하네, 글고 안나 도로테아라는 아름다운 딸들이 있었다. 발데마르 다에는 부인이 죽자 외로움에 갇혀 금을 만드는 기술을 알아내고자 했다. 그래서 숲속에 있는 나무들을 베서 끊임없이 굴뚝에 연기가 나고 불길이 타오게 했다.

숲속에 있는 온갖 나무들과 뱃사람들의 길잡이가 되었던 나무와 새들의 둥지가 모두 베어졌다. 둥지를 빼앗긴 매들은 놀라서 멀리 달아났고 왜가리와 숲속의 다른 새들도 모두 집을 잃고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공포와 분노로 울부짖었다. 까마귀들은 조롱하듯 까악까악 울었고 그 주위에서는 나무들이 계속해서 쿵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643) 막내딸인 안나 도로테아만은 나무가 베어지는 것이 몹시 마음 아팠다. 도로테아는 검은 황새 둥지의 나무만은 베지 말라고 사정했다. 그래서 그 나무는 베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발데마르 다에가 가진 모든 것이 금을 만드는 도가니 속에서 녹아 없어져 버렸다. 그래도 금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가난해졌다. 죽음 앞에 있는 인간의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금과 같은 불멸의 연금술을 터득하고 싶었던 발데마르에게 남은 것은 초라한 삶과 죽음이었다.

이제 새 시대가 열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예전에 있던 큰길은 논밭을 계간하느라 사라졌고, 무덤이 있던 곳에는 새 도로가 생겼다. 이제 곧 철도가 놓여 기관차가 긴 꼬리를 달고 무덤 위로 달릴 것이다. 이제는 이름도 잊혀진 사람들의 무덤 위로, 모든 것은 사라진다.’(651)

안데르센에게 나무는 나무가 사라지고, 나무와 함께 전해지던 이야기가 잊힌 시대에서 동화를 통해 나무의 기억을 떠올린다. 나무는 언제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되살아나게 하고 죽기 전에 고향의 나무 아래 앉아 있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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