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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인류학 연구실에서는 이렇게 지금 여기의 삶을 완전히 긍정하는 주인공들의 세계를 탐험합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정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자신을 만들어갑니다. 주인공의 삶이 어디로 이끌릴지는 아무도 모르고 정해진 것도 없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규정 지을 수 없는 존재들이 온갖 살 궁리로 복작거리는 숲에서 깔깔 웃고 떠들며 놀다 옵니다. 그리고 돌아온 그 자리에서 지금 여기의 삶에 감사하며 한 걸음 더 낯선 길을 나서봅니다. 필요한 것은 모든 우연을 수용하고 마음껏 상상하는 것 뿐!

[뚜벅이의 동화 읽기] 독극물 낚시와 빨간 신

작성자
콩새
작성일
2024-11-01 23:08
조회
86



[뚜벅이의 동화 읽기] 동화 인류학 연재


                                                                                        독극물 낚시와 빨간 신

                                                                                                                                                        2024. 11. 1. 정혜숙

  

 


  동화 속 주인공들은 매우 순진하고 바깥세상에 대한 의심과 경계가 낮은 것 같습니다.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독극물 낚시를 좋아한 서장>과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빨간 신을 좋아한 카렌> 두 주인공은 둘 다 이야기 속에서 하면 안 된다고 하는 행위를 반복하다가 불행을 맞이합니다. 두 이야기 속 조심해야 할 조건은 마치 공중에 펼쳐진 투명하게 반짝이는 거미줄처럼 영혼들을 유혹하고 낚아채 절대 놓아주지 않습니다. 먼저 미야자와 겐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카라콘산의 녹은 빙하가 흘러들어 형성된 프하라강의 생태계는 무척 풍요롭습니다. 게다가 프하라 사람들은 메기, 미꾸라지를 무시해 먹지도 않아 그 수가 점점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이 지방의 첫 번째 조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화약을 사용해서 새를 잡으면 안 된다. 독극물을 사용해서 물고기를 잡으면 안 된다.”(『미야자와 겐지 전집2』, 박정임 옮김, 너머, 127p)

  이런 프하라 마을에 수달을 닮은 새로운 서장이 왔습니다. 이미 그의 외모를 묘사한 부분에서 그가 사건의 범인임을 조금 눈치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외모 중 특이한 것은 이가 모두 은으로 된 틀니라는 것입니다. 서장이 말하거나 웃을 때 드러나 번쩍이는 은 틀니를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는 재미있습니다. 특히 번쩍이는 은 틀니는 포식자의 아우라를 뽐내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서장은 작은 마을에서 독극물로 취급되는 산초나무 껍질, 재거름을 사가거나 하는 일들로 마을 사람들로부터 의심을 사기 시작합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그는 마을에서 첫 번째 조례로 금지하고 있는 독극물 낚시에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마을의 시장은 서장을 찾아가 독극물 사용 소문의 진위와 사건 해결을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근데 서장은 당황스럽게도 소문의 사건들이 자신이 한 일임을 시장에게 순순히 자백하고 잡혀 사형에 처해집니다. 그런데 그가 목이 베이기 직전 했던 말은 목숨을 구하거나 지난 행동을 후회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아아, 재미있었어. 독극물로 물고기를 잡을 때 나는 정말 빠졌었지. 이제 다음에는 지옥에서 독극물 낚시를 해볼까.”(『미야자와 겐지 전집2』, 박정임 옮김, 너머, 127p)

  서장님은 마을의 첫 번째 조례에 대한 ‘왜 안된다는 거야!’라는 강한 재미에 빠져 규칙을 어기고 불법 독극물 낚시에 빠져듭니다. 한편 그의 부임은 마치 굶주린 수달이 먹이가 풍부한 푸하라강을 찾아오듯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인사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화약을 사용해서 새를 잡으면 안 된다. 독극물을 사용해서 물고기를 잡으면 안 된다.”라는 조항을 생각해 보면 단순히 자연의 사냥방식을 지키자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자연에서 욕심을 부려 총, 독극물 등의 도구를 사용해 한 번에 대량의 사냥물을 획득하는 술수를 쓰는 것은 인간이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저지르는 죄는 살상과 탈법적 욕망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굶주림의 간절함이 아닌 즉흥적 재미를 쫓아 다른 생명을 취하는 광기의 발현인 것입니다.

  두 번째 안데르센의 동화 속 가난한 카렌은 구두 제작공의 아내로부터 선물받은 빨간 구두를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신고 버리지만 카렌의 마음 속에 깊은 인상과 미련을 남깁니다. 혼자가 된 카렌을 입양한 노부인의 집에 있는 거울은 카렌의 외모를 극찬하며 그녀의 마음을 한껏 부풀려 놓습니다. 

  카렌은 어린 공주의 빨간 신을 보고 홀린 듯 다시 빨간 신을 사게 됩니다. ‘빨간 신에 홀린’ 카렌은 이성을 잃고 장소와 때에 맞지 않는 신을 신어 꾸지람을 듣지만 자아도취에 빠져 헤어날 줄을 모릅니다. 빨간 신을 신은 카렌은 목발을 짚은 병든 군인으로부터 멋진 무용화라며 칭찬을 듣고 춤출 때 신기를 당부 받습니다. 이 병든 군인은 악마로 보여집니다. 이 신발의 위험과 카렌의 위기를 알고도 상황이 악화되기를 멈추기보다는 불행이 일어나기를 부추기는 악마같은 제안이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춤을 추기 시작한 빨간 신은 카렌을 놓아 주지 않습니다. 힘겹게 벚겨져 신발장에 가둬진 빨간 신. 그렇지만 카렌의 마음은 온통 빨간 신에게 가 있어 주기도문을 외우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입니다. 허영과 욕망에 눈이 먼 카렌은 죽어가는 노부인과 빨간 신 사이에서 빨간 신을 선택합니다. 춤추는 빨간 신의 형벌을 말해 주는 천사는 말합니다. 잘난 체하고 거만한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고. 그릇된 허영의 대가로 신체(발)와 욕망을 함께 분리당하는 벌을 받는 사이에도 죽음만은 두려워해 목숨을 갈구하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카렌은 한동안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어릴 적부터 가난으로 신을 신조차 없었던 불쌍한 소녀에게 빨간 신은 세상으로 나가는 첫 번째 걸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냥 발을 보호할 수 있는 정도의 신이 아닌 필요 이상의 가치를 가진 물건은 소녀의 마음을 단번에 하늘 끝까지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 허영심은 마치 공주의 빨간 신을 보고 자신이 공주인냥 공주를 위해 만든 신을 사기도 합니다. 카렌이 어린아이로서 빨간 신을 탐할 때는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었는데도 자기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어른으로 성장했을 때 겪어야 하는 책임을 잊고 잘못된 선택을 한 대가는 실로 어마어마한 상실로 되돌아옵니다. 카렌은 벌을 받았습니다.

  카렌은 두 발을 잃었습니다. 걷거나 춤을 출 수도 없습니다. 빨간 신을 신고 춤을 추던 자신에게 향했던 부러움의 시선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평생 반성과 후회를 하며 살아야 할 운명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천사가 했던 ‘본보기’가 된다는 말이 좀 더 큰 벌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전과는 다른 차원의 시선을 사람들로부터 받으며 인생의 나머지를 감내해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안데르센의 동화에는 무시무시한 장면들이 곳곳에 등장합니다. 어떤 주인공은 악과 선을 알아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카렌처럼 아주 어리석은 등장인물들도 있습니다. 미야자와 겐지와 안데르센 두 동화가 어린 독자를 주요 대상으로 여긴다고 생각했을 때 끔직한 죄를 저지르고 무서운 벌을 받는 이야기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저는 이런 동화들이 성인이 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는 무거운 충고를 은유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에는 돌, 나무, 새, 숲 등 자연의 요소들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인간이 자연과 비교해서 월등하다는 오만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자연과 인간의 균형을 찾는 것에 중요한 가치를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안데르센의 이야기는 좀 더 도시적이고 고립된 인간의 내면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둘 중 누구의 동화를 읽더라도 바라보게 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마음속 거울이라는 것은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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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02 23:47

    독극물 낚시의 서장님과 빨간 신을 신고 춤을 멈추지 못하는 카렌은 모두 현대사회의 우리를 비추어 주는 거울 같습니다. 욕망의 포로가 된 우리는 사형을 선고 받아도 정신을 못차리고 재미와 광기에 빠진 서장님 같습니다. 은 이빨을 번뜩이며 독극물을 모으는 서장님, 빨간 신을 신고 빙글빙글 멈추지 못하는 춤을 추는 카렌! 강력한 캐릭터가 주는 울림이 큰 작품이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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