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 탐구생활》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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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세.소] 상상보다 넓은 세계가 있다
[우.세.소] 자연학 세미나를 소개합니다
상상보다 넓은 세계가 있다
2024.11.04. 이기헌
◎ 주제문 : 세상의 디테일을 관찰하다
◎ 글의 취지와 의의 : 자연학 세미나의 공부 방식은 맡은 부분을 아는 ‘만큼’ 발표한다. 자연학 공부가 주는 즐거움을 소개해보자.
인문세 자연학 세미나는 생명의 근원을 탐구하고, 그것이 생존하기 위해 작동하는 법칙을 들여다본다. 자연학을 공부하다보면 내 주변에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던 새, 벌레, 잡초, 흙, 보이지 않는 공기까지도 탐구의 대상이 된다. 매일 봐서 어떤 존재인지도 인식하기 어려운 인간 종(種)도 예외는 아니다. 공부로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알던 것을 다르게 보게 되었을 때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자연학 공부가 주는 기쁨은 클 수밖에 없다. 봄이면 금세 담장을 채우는 담쟁이 덩굴이 씩씩하게 걷는 모습을 본다면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이 나온다. 딱따구리가 부리로 나무 뚫을 때 내는 소리를 들으면 이 유능한 존재 앞에서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자연학 세미나로 세상이 더 잘 보이고, 세상의 소리가 더 잘 들린다.
2년 전 자연학을 공부를 시작하게 된 몇 가지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나는 자연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산이나 바다에 가서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기회가 있을 때 친구들과 책이라도 읽자는 마음이었다. 친구가 같이 공부하자고 옆구리 찌른 것도 큰 이유였다. 공지를 보니 아는 만큼만 발표하라고 하는 점도 좋았다. 아는 게 없다고 걱정할 게 없고, 책 읽고 느끼고 배운 만큼 준비해서 발표하면 되니까 글쓰기보다 수월하리라고 생각했다. 지나고보니 다른 차원에서 생각할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격주로 만나면서 조금씩 조금씩 자연을 배워갔다. 배울수록 그 세계가 얼마나 광대한지 깨닫게 되었다.
디테일이 보여주는 보다 넓은 세계
자연학은 세상 수많은 디테일을 담고 있다. 『싸우는 식물』의 저자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식물들의 치열한 생존 전략을 소개한다. 장미의 가시는 방어가 아니라 공격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선인장의 빽빽한 가시는 햇빛을 교란해 줄기에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선인장은 부족한 물을 찾아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느라 뿌리털을 발달시켰다. 여름에 잡초를 뽑아도 올라오고 또 올라오는 것은 잡초들이 땅속에 미리 씨를 맡겨두어 위험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질경이는 비를 맞으면 점액성 물질을 내보내 사람에게 밟힘으로써 씨를 퍼뜨린다. 이외에도 식물들은 협력 관계를 구축해서 자기도 살고 균류도 품어 살게 한다. 자연학을 공부하면서 우리가 포착하기 어려운 식물들의 시공간이 넓게 펼쳐지는 것 같았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시리즈를 공부하면서 ‘진화’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왔다. 나는 진화라는 것을 열등한 것에서부터 우월한 것으로의 순차적인 발달 단계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자연학에서 배운 진화는 그 의미가 좀 달랐다. 굴드에 따르면 그것은 어떤 목적을 향해 한 걸음씩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완전한 무엇이 아니다. ‘국지적인 개체군에서 일어나는 점진적이고 적응적인 변화로, 단속적이지만 거듭되며 발생하는 다양성의 증가’이다. 진화론자들에 따라 그 주장은 다를 수 있지만, 기존에 생각했던 ‘진화’를 자연학 공부를 통해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중요한 지점이었다. 진화가 진보의 수순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살아온 터라 놀랐고, 더 공부하다보니 그러한 관점이 만든 인간 우월주의가 세계에 일으킨 파장이 여전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연학은 어휘 하나를 깊이 사유하고 밝히는 공부다.
공부 방법; 스스로 선생님 되기
<읽은 책들>
○ 로버트 M. 헤이즌, 『지구 이야기 : 광물과 생물의 공진화로 푸는 지구 이야기』
○ 린 마굴리스, 『마이크로 코스모스』
○ 스티븐 제이 굴드, 『판다의 엄지』
○ 세라 블레퍼 허디, 『어머니, 그리고 다른 사람들 : 상호이해의 진화적 기원』
○ 데이비드 몽고메리, 이수영 옮김,『흙』(삼천리)
○ 이나가키 히데히로, 박유미 옮김,『싸우는 식물』(더숲)
○ 소어 핸슨, 하윤숙 옮김,『씨앗의 승리』(에이도스)
○ 레나토 브루니, 장혜경 옮김,『식물학자의 정원산책』(초사흘달)
○ 스티븐 제이 굴드, 홍욱희 · 홍동선 옮김, 『다윈 이후(Ever Since Darwin)』(1977)(사이언스북스)
○ 스티븐 제이 굴드, 김동광 옮김, 『원더플 라이프(Wonderful Life)』(1989)(궁리출판사)<구판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 스티븐 제이 굴드, 김동광 옮김, 『인간에 대한 오해(The Mismeasure of Man)』(1981)(사회평론)
○ 스티븐 제이 굴드, 김명주 옮김, 『플라밍고의 미소(The Flamingo’s Smile)』(1985)(현암사)
○ 스티븐 제이 굴드, 김동광 · 손향구 옮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조개화석을 주운 날(Leonardo’s Mountain of Clams and The Diet of Worms)』(1998)(세종)
○ 도널드 R. 프로세로, 김정은 옮김, 『지구 격동의 이력서, 암석25』(뿌리와이파리)
○ 요시다 다카요시, 박현미 옮김, 『주기율표로 세상을 읽다–우주, 지구, 인체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해나무)
○ 로버트 M. 헤이즌, 김홍표 옮김, 『탄소 교향곡』(뿌리와이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