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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안데르센 #7] 우물 밖 외로운 두꺼비

작성자
남연아
작성일
2024-11-06 17:46
조회
114

우물 밖 외로운 두꺼비


주제문 : 더 높은 곳을 향한 동경은 우리를 관계 불능으로 만든다.

  안데르센 동화의 이야기 구조는 수직적이다. 주인공이 깊은 우물, 바다, 땅속에 있다가 땅 위로 올라오고, 마지막에는 하늘까지 날아오른다. 안데르센의 동화에서 수직적 욕망을 가진 주인공들은 끝에 죽음을 맞이한다. 안데르센에게 죽음은 비극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인 하느님에게 닿을 수 있는 초월적 존재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안데르센은 더 높은 곳에 대한 동경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것 같다. 이 욕망은 현대인과도 닮았다. 현대인은 한 곳에 안주하면 안 되고 점점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 높은 곳으로 갈수록 외부적으로는 빛날 수는 있지만, 내부는 타들어 가고 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위치가 더욱 높아지더라도 욕망은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욕망은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는 끊임없는 갈증이다. 갈증은 위만 끊임없이 바라보게 만든다. 내가 어디에 갈지만 목적지만 생각하기 때문에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다. 결국 수직적 욕망은 타인과 관계를 맺지 못하게 만든다.

  「두꺼비」에서 막내 두꺼비는 깊은 우물안에서 푸른 하늘을 쳐다보면서 우물 꼭대기로 높이 올라가고 싶어 한다. 엄마 두꺼비는 ‘자기가 잘 알고 있는 곳이 가장 좋은 곳’이라고 말하며 두레박에 실수로 들어가더라도 뛰어내리라고 막내 두꺼비에게 조언한다. 하지만, 막내 두꺼비는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우물 밖을 나온 막내 두꺼비는 다양한 세상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새로운 생명들을 만나며 기뻐한다. 두꺼비는 멀리 갔지만, ‘벗이 없이는 지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개구리를 만났지만, 두꺼비는 다시 떠난다. ‘막내 두꺼비는 어딜 가든 좀 더 나은 것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942쪽, 『안데르센 동화전집』)

  두꺼비는 ‘더 큰 아름다움과 영광을 향해’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넓은 채소밭에서 송충이를 만난다. 송충이는 닭에게 잡아먹힐 때 두꺼비가 다가가자, 닭들은 두꺼비가 너무 못생겼다면서 그 자리를 떠난다. 두꺼비는 자기 때문에 송충이가 살았다는 사실에 기뻤다. 하지만, 송충이는 ‘나를 구한 것은 나 자신이라고’ 잘난 체했다. 그러면서 집처럼 좋은 곳은 없지만 자신은 더 높이 올라가야겠다고 말했다. 두꺼비는 ‘더 높이’에 공감하며 높은 곳을 쳐다보니 그곳에는 황새 둥지가 있었다. 두꺼비는 아빠 황새를 보면서 중요한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주 높은 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엄마 황새가 이집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두꺼비는 자기도 이집트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빠 황새는 두꺼비를 보자마자 부리로 거칠게 쪼았다. 두꺼비는 자신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 황새에게 죽임을 당했다.

  안데르센은 두꺼비의 위를 향한 동경과 소망을 머릿속에 보석이 있다고 묘사했다. 소중하고 반짝이는 것이 우리 안에 있고, 보석을 볼 수 있는 눈을 아름다운 동화와 이야기를 통해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막내 두꺼비가 엄마 말을 듣지 않고 우물 밖을 나왔기 때문에 이야기가 펼쳐진 것은 맞다. 하지만, 두꺼비는 우물 밖으로 나와 정말 다양한 생명들을 만나지만 누구와도 친구가 되지 못한다. 중간에 두꺼비도 ‘벗 없이는 지낼 수 없다’라고 말하고, 그리고 비슷한 개구리와 두꺼비를 찾는다. 개구리를 만났을 때 두꺼비는 다시 우물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다시 떠나야겠다고 결심한다. 두꺼비도 떠나면서도 ‘내 마음속에 있는 이상한 동경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아’라고 말한다. 보석을 가져 공허함을 느낀다. 

  엄마 두꺼비는 우물 밖에서 우물 안으로 곤두박질쳤고, 처음엔 손님이었다가 눌러앉아 살았다. ‘자기가 잘 알고 있는 곳이 가장 좋은 곳’이라고 말하는 엄마는 마음이 편했을까? 또한 황새 가족은 아프리카로 갔다가 다시 지름길을 통해 다시 자신들의 둥지가 있는 그곳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안데르센 동화는 우물 안이든 밖이든, 아프리카든 덴마크든 관계의 범위가 가족을 넘어서지 않는다. 현대인 또한 어디든 떠날 수 있지만, 그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두꺼비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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