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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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평양의 향해자들](3) 12장_쿨라의 신화
쿨라의 신화
쿨라 신화의 의미
원주민들에게 신화는 자연에 색을 입히고 의미를 부여하고 생명력과 친근감을 갖는 존재로 전환시키는 이야기로, 쿨라 문화권의 모든 사람들에게 주술을 통해 진실로 받아들여져 신성시된 사회적 규약이자 관념이다. 신화는 실제 쿨라 원정에서 나이 든 사람들이 쿨라의 신참자들에게 신화적 이름의 나열과 함께 전설의 의미가 있는 장소를 가리키며 설명하는 방식으로 전달되는데, 이는 이전에는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자연의 모습에 인간이 흥미를 보태주는 것으로 원주민이 그 경치를 보는데 변화를 가져온다. 가시적이지만 무의미했던 자연경관은 신화적 이야기가 덧씌어져 원주민들에게 강력한 감정을 유발할 정도로 중요해진다. 신화를 통해 경관과 친숙한 전설의 극적인 사건이 연결되어 단순했던 바위는 이제 영웅 중의 한 명이 탈출하는 카누를 향해 집어 던진 돌이나, 마술적 카누에 의해 두 섬 사이에 만들어진 바닷길, 돌로 변환 사람과 돌이 된 와가로 전환되고, 이렇게 오래된 이야기를 품은 경관은 신화를 대변하며 영속된다. 수평선의 작은 점에 불과했던 바위는 신화에 의해 채색되어 의미와 가치, 친밀감 등 인격을 갖춘 존재가 되어 미지의 바닷길에 등대가 된다. 자연경관에 이러한 관점이 형성된 원주민들은 이전과는 새로운 방식으로 자연과 관계 맺으며 살아간다.
원주민의 민속 부류
보요와의 민속–구술의 전통, 축적된 설화, 전설, 세대를 거쳐 내려온 텍스트–부류는 4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우리가 전통이라 부르는 오래된 이야기인 리보그워(libogwo). 둘째, 즐거움을 위해 특정 계절에 낭송되는 믿기지 않는 동화인 쿠콰네부(kukwanebu). 세 번째, 다양한 노래들인 워시(wosi), 놀이를 할 때나 특별한 경우에 부르는 민요인 비나비나(vinavina), 네 번째, 주술의 주문인 메그와(megwa), 요파(yopa)가 그것이다.
사실이라고 여겨지는 고대의 전통인 ‘오래된 이야기’인 리보그워는 과거 추장들의 선행, 코야에서의 공적, 선박의 침목 등에 관한 역사적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원주민들이 리리우(lili’u)라 부르는 신화, 설화를 포함하는데, 원주민들은 이를 깊게 믿으며 경의를 표하기 때문에 리리우는 원주민들의 일상에서의 행동과 부족 생활 전반에 적극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원주민의 시간관
말리노프스키에 의하면 원주민들은 신화를 리리우라 부르며 역사적 사실과 분명히 구분하고 그것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다만 원주민들은 신화를 고대와 선사시대에 위치 지우고 역사적 사건들은 최근의 시대에 일어난 일로 구분하지 않는다. 원주민들에게 ‘오래 전에’이나 ‘더 오래 전’과 같은 단계나 순서, 시간대에 놓여진 시대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주민들은 과거에 발생한 사건을 말할 때, 그것이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시기에 일어난 사건인가, 아니면 아버지가 기억하던 시기의 일인가를 구분하지만, 이러한 구분의 선을 넘으면 모든 과거의 사건들은 ‘리리우’라고 불리는 하나의 지평에 놓여진다. 그런데 그들에게 신화와 역사를 구분 짓는 선은 시대의 구분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과거는 단선적 시간관에 따라 시간의 연속적인 단계를 넘어 이어지는 기간이 아니라, 사건들이 담겨 있는 하나의 큰 창고다.
또한 원주민들에게는 세계의 진화, 사회의 진화라 부르는 개념이 없다. 우리는 종교와 과학적 전망에서 지구와 인간이 나이 먹어 간다는 사실을 알고 그러한 조건 안에서 세계를 인식하지만, 원주민들은 양자가 모두 영원토록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사고로는 어떤 사건이든 특정 시대에 상응하는 다른 문화적 배경들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신화적 사건은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고 무관한 오래전 사라진 이야기로 생각한다. 반면에 원주민들은 트로브리안드의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현재의 자신들과 똑같은 집에서 살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같은 무기와 도구를 사용하고, 같은 관심과 걱정을 공유하며, 동일한 이동수단을 이용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간관의 차이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게 해줄까?
사실 원주민들도 땅에서 나와 동물로 변하고, 다시 젊어지기도 하며, 하늘을 나는 카누가 존재했던 신화의 세계와 실제의 현실 사이의 경계를 깨닫고 있다. 말리노프스키에 의하면 원주민들은 엄청난 일이나 초자연적인 일을 접하면 그것을 거짓말로 치부해 버리거나 리리우의 영역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원주민들에게 리리우와 실제, 역사적 현실 사이의 구분은 확고하게 그어져 있음을 나타내지만, 신화적 사건들이 남긴 다양한 흔적들과 조상들에 의해 전승된 주술적 능력 등의 초자연적인 현상은 리리우라는 라벨로 붙여져 원주민들에게 여전히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신화가 살아있는 현실이라고 믿는 사회에서 주술은 일종의 회고조의 경험담으로 신빙성을 입증하며 신화적 전통과 현재를 이어준다. 쿨라의 신화에서 주술은 미(美)와 힘, 그리고 위험에 대한 면역을 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신화에서 인간이 보유하는 능력은 주술의 지식에서 기인하는데, 이 지식은 잊혀질 수 있기 때문에 능력이 사라지거나 효력이 떨러질 수 있다. 과거의 사건들을 하나의 지평으로 놓는 원주민들의 순환적 시간관은 만일 주술이 되살아날 수 있다면 인간은 다시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영웅적 행위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
트로브리안드의 신화적 민속 그룹
트로브리안드의 신화적 민속은 세 가지 계층의 사건에 관련되는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원주민들은 인간이 땅 위로 나온 시기와 채소밭이 없던 시기 등을 언급하고 있지만, 원주민들에게는 변화에 대한 개념이 없다. 이러한 그룹의 범주는 제도의 기원에 대한 것이며, 이러한 것이 이미 만들어져서 나타났다는데 의의가 있다. 지하에서 올라온 최초의 인간은 현재의 원주민처럼 석회 그릇을 가지고, 빈랑나무 열매를 씹으며, 같은 장신구를 걸치고 나타났다. 이제 저자는 지하에서 올라온 사건은 이제는 일어나지 않으므로 신화적이지만, 지하에서 올라온 인간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존재하고 있음에 주목하자고 말한다. 세 계층의 사건과 관련된 그룹은 아래와 같다.
첫 번째, 가장 오래된 신화는 인간의 기원, 하위씨족과 마을의 사회학, 현세와 다음에 올 세상 사이의 관계, 지구에 사람들이 땅 밑으로부터 등장하기 시작할 때 일어난 사건들을 설명한다. 지하에서 올라온 조상들은 지상에 나오자마자 해당 하위 씨족의 특성을 결정해줄 중요한 행동을 바로 실행한다.
두 번째, 문화적 신화로 여기에 속하는 신화는 과물과 그들의 정복자들에 관한 스토리, 관습과 문화를 확실히 확립한 사람들, 특정 제도의 기원에 관한 것들이다. 이 신화들에 따르면 인간이 지표면 위로 나와서 생활을 확립하였고, 모든 사회적 구분 역시 정착되어 각 집단이 뚜렷한 특성을 갖게 되었다. 괴물을 죽임으로써 다시 보요와에 살수 있도록 한 투다바 같은 문화적 영웅, 식인 풍습의 기원과 밭농사의 기원에 관한 스토리가 여기에 속한다.
세 번째, 보통의 인간만을 나타낸 신화로 이는 굉장한 주술적 능력을 소유한 보통 사람이 등장하는 신화다. 이들 신화에는 특정한 제도나 특정 유형의 주술이 어떻게 기원했는지를 다룬다. 마법의 기원, 사랑 주술의 기원, 하늘을 나는 카누의 신화, 몇 개의 쿨라 신화가 포함된다.
신화의 사회학적 분석
쿨라 신화들은 전(全) 쿨라 지역의 원주민의 사고방식과 생활 자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사회적 제도와 구조, 부족의 관습은 전통의 심리적 힘과 환경의 물질적 조건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생겨난 결과물로 사람들 삶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두 개의 의미 없고 쓸모없는 물건을 계속해서 교환하며 신뢰를 쌓는 쿨라는 부족 간에 제도의 토대가 되고 다른 많은 활동을 수반하여 행하도록 한다. 신화, 주술, 전통은 쿨라를 중심으로 일정한 의식, 의례의 모든 형식을 구축했으며, 그것들을 통해 원주민들의 생활 자체를 지배했다. 쿨라 원주민에게 사회적 규약 및 도덕적 가치는 개인의 타고난 욕망과 필요를 넘어서 그들의 행위를 규제한다. 부족 생활을 통제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힘은 ‘관습의 타성’(惰性, 오래되어 굳어진 습성, 지속하려는 성질)–행위의 제일성(齊一性, 현상을 되풀이하여 일으키도록 하는 원리에 대한 선호–이다.
말리노프스키는 인간의 행동이 양심이라는 불변의 보편적 규범을 반영한 것이라는 도덕 철학자의 ‘양심의 도덕률’은 틀렸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행위를 지배하는 법칙은 과거로부터 그렇게 행동해 왔으며, 오늘날에도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행하고 있는 사회적 ‘관습에 대한 준수’다. 사회철학의 체계는 이러한 일반 원리를 설명하고 해석하거나 또는 잘못 해석하기위해 구축되어져 왔다. 타르드(Gabriel Tarde)의 모방, 기딩스(Franklin H. Giddings)의 종족 의식, 뒤르켐(Emile Durkheim)의 집합 의식, 사회의식, 국가의 정신, 집단의 마음, 군중의 본능 같은 개념 등은 이러한 실증적 진실을 표현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사회학에서 가장 근본적이며 다른 것을 환원될 수 없는 가설로서 설명되는 한, 그것은 하나의 사실이자 과학의 기초로서 인정되고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말한다. 주술이 근간이 되는 원주민들의 경제 교환체제는 경제적 필요에 의한 미개한 원시적 교역이 아니라 유럽의 경제 제도와는 잣대가 다르지만, 지속적인 사회적 관습에 대한 준수에서 기인한 또 다른 경제적 교환모델일 뿐이며, 주술 체계의 기초로 작용하며 발견되는 쿨라의 신화 또한 실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