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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미즘

만물에 깃든 영을 보다 

 

[나무의 신화](2) 나무 꼭대기에서 보는 최상의 앎, 완전한 힘

작성자
최수정
작성일
2024-07-10 17:39
조회
174

나무신화(2)

 

나무 꼭대기에서 보는 최상의 앎, 완전한 힘

2024.7.10. 최수정

 

장 마르칼은 지식이라는 말이 어원학적으로 나무(vidu)의 이름과 연관이 있으며, 라틴어 videre, 영어 wood, 드루이드(‘매우 선견지명이 있는이라는 뜻의 dru-wid)라는 말 그리고 나무에 매달림으로써 최상의 지식을 획득한 물푸레나무의 신 우단오딘의 이름의 어원에서 동일한 어근이 발견된다고 지적한다. (225)

 

인류의 전통적인 정신 양태는 다른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에게 그런 것처럼 나무에게도 경우에 따라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영혼을 부여하였다. 그 중 최상의 영혼을 지니고 있는 나무는 신이 살고 있었다는 점에서 신성하여 제의의 대상이 되었다. 대부분의 전승들에서 생명(혹은 샘)의 나무는 땅의 끝이나 죽은 자들의 세계에 근접한 곳과 같이, 접근할 수 없는 장소에 위치해 있다. 생명의 나무는 뱀이나 용이 지키고 있어서 접근이 금지된다. 지하 세계의 힘을 상징하는 뱀은 모두 우주목과 관계가 있다.

종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개념의 총체를 단일한 하나의 이미지로 압축시키는데 있어서 나무만큼 훌륭한 상징은 없다. 나무의 밑둥에 돋아나는 새싹들 덕분에 나무는 무성적 방식으로 번식할 수 있기 때문에, 줄기, 뿌리 그리고 가지들과 더불어 나무는 본질적으로 자웅 동체라고 말할 수 있다.(352) 나무는 스스로 재생한다. 나무들은 그 이름의 대부분이 남성 어미로 끝나지만 그리스어나 라틴어로는 항상 여성형이다. 뱀은 신비하고 위험스런 남근의 상징이며, 나무가 갖고 있는 거대한 여성성의 보충적 상징이다.

 

생명과 죽음의 과잉과 충만의 숲

라틴어 네무스는 그리스어 네모스nemos와 마찬가지로 목장이 있는 숲이나 총림, 특히 성스러운 숲을 지칭한다. 네무스와 네모스는 배분하다, 나누다, 절단하다의 의미를 표현하는 넴nem-이라는 어근을 갖고 있다. ‘성스러운 숲의 개념은 신에 의해 보존되고, 보호되며, 점유되는 하나의 공간이다. 라틴어로 성목은 루쿠스lucus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자유로운 공간을 뜻한다. 루크스의 첫 번째 뜻은 숲 속의 빈 터이며, 그 다음이 성스러운 숲이다.

희생으로 정화하다’, ‘야생의 가파른 공간’, ‘과잉, 식물 속의 충만’, ‘음란luxure’이라는 말을 파생시킨다. 얼핏 보기에 다양해 보이는 이 개념들을 결국 신성한 숲들의 특수성들과 더 나아가 기능들을 정의한다. 신전이 지어지기 훨씬 전에는 분명 성스러운 숲들이 가장 오래된 성소들이었을 것이다. 신봉자들은 제의를 올리는 건축물들이 없었던 시대 성스러운 숲의 제단을 중심으로 모였다.

켈트인들은 성스러운 숲을 네메톤nemeton’이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네무스와 동일한 어원에서 유래한다. 켈트 연구자들은 넴이 종교적인 의미에서하늘을 지칭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네메톤은 땅 위에 하늘의 일부가 이상적으로 투영된 것, 일종의 낙원 혹은 오히려 켈트인의 전설이나 이들에게 기원을 둔 전설에서 흔히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경이로운 과수원’”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낙원, 경이로운 과수원이었던 성스러운 숲은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 카이사르의 파괴를 정당화하기 위해 묘사된다.

그리스도교 전사들이 이교도들을 개종시키려고 했을 때, 이들이 수행해야 할 최초의 임무들 중 하나는 수목 숭배 제의를 금지시키고 성림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지방의 집정관들이 맹목적인 미신들에 대항하여 그리스도교도들을 보호한다. “숲 속의 으슥한 곳에 숨겨진 야생의 장소에서불경한 제의를 집전하는 사람들을 향해 비난을 퍼붓고, “악마들에게 바쳐진 나무들을 저주한다. 악마, 마법사와 마녀들은 그리스도교가 교훈적 차원에서 억압하지 않을 수 없는 본능적인 힘을 표상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교에서 매우 위험한 사탄이 된 판pan 신은 생명의 총체이자 우주에 생명을 부여하는 발생적 에너지를 구현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교에서 사탄은 깊은 숲 속에서 완전한 자유를 만끽하는 세력, 즉 본능적이고 어두운 힘의 세력을 상징한다. 나무인간, 퀴클롭스 그리고 이들이 상기시키는 판 신, 3자는 숲과 더불어 인간 세계를 감싸고 있는 야생적 자연의 의인화이다.

숲은 조상의 무덤이 결집되어 있는 성소 그 자체를 보호하는 것은 물론, 한 집안에서 죽은 모든 사람들의 무덤들까지 보호한다. 그 집안의 후손들은 그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성림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간다. 우리의 묘지 또한 옛날에는 성스러운 숲이었다. 되돌아오는 힘들이 충만한 곳이었다.

 

나무 인간의 근친상간과 친족성

선과 악으로부터 태어난 멀린은 요정 비비안을 만나면서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악을 눌러 이긴다. 요정에게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전수해 주고 난 후, 그는 기꺼이 그녀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깊은 숲 속의 유리집에 스스로를 가둔다. 이 유리집은, “숲 한가운데에 있는 닫힌 세계이며 과수원인 또 다른 세계를 보이지 않는 벽 속에 가두는 세계이다. 이 과수원 안에서 이원론, 다시 말해 남매인 신과 여신의 성스러운 결합이 실현된다.” 그들은 원죄 이전의 즉 바깥 세상을 알지 못하는 아담과 이브의 원초적인 상황을 재구성한다. 기원으로, 자연의 상태로, 과수원으로 되돌아온다. 이 과수원에서 그들은 식물과 동물의 주인이 되어그들을 다스리고, 보호가 필요한 모든 이들을 지켜 주며,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 구세주의 부활을 준비한다.

샤먼인 멀린이 이 숲에서 맡은 역할은 예언 능력이다. 마법사들의 나무들특히 샤먼의 나무인 자작나무와, 죽은 자들을 샤먼의 세계로 유인하기 위해 요정들이 사용했다는 가지 달린 사과나무을 통해 예언력을 얻어 미래의 불행을 예언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소나무’, 즉 네메톤 방목지 한가운데에 솟아 있던 바렌톤의 샘의 소나무이다. 이 샘은 요정 비비안이 사는 곳이다. 샘의 화신인 비비안은 비를 내리게 하는 마법의 힘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녀가 내리는 물은 광기를 치유할 수 있었으며, 비비안은 이 물로 멀린의 광기를 치료한다.

마치 샤먼처럼 바렌톤의 소나무 맨 꼭대기에 기어올라 간 멀린은 최상의 앎에 도달하고 그곳에 살게 되는데, 이는 유리집이 푸른 나무 꼭대기에 있으며, 이곳에서 멀린이 마침내 완전한 힘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힘이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 변신의 능력,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는 능력, 동물들(신탁을 내리는 나무들)의 언어를 해독하고 동물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능력, 치유자로서의 능력과 종종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능력, 샘을 솟아나게 하는 능력, 존재하지 않는 존재들과 사물들을 나타나게 할 수 있는 능력, 식물계에 영향을 끼치는 힘, 동시에 여러 곳에 있을 수 있는 능력 혹은 하늘로 날아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멀린의 소나무는 수원과 관련이 있는 우주목이다. 죽은 자들과 씨앗의 거주지로부터 나온 지하수는 다시 수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우주목에 필요한 물을 댄다.

이는 멀린비비안불륜의 결합’, 최초의 여성의 화신인 어머니와의 근친상간, 그러나 죽음의 위험에 맞서 이를 극복해야 하는 주인공에게 있어 중요한 통과 의례인 인간과의 금지된 근친상간이라는 주제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멀린의 전설을 통하여 이미 앞서 확인한 우주목의 일반적인 특징들을 밝힐 수 있다. , 샘과 관련된 바렌톤의 소나무는 비를 내리고, 예언을 하며 특히 정상에 오르는 자에게는 모든 지식을 나누어준다.

변신 이야기들 속에는 나무가 된 요정과 그녀의 아버지 사이에 매우 분명한 하나의 연관성이 존재한다. , 이들은 가족이며, 나무의 영혼이 인간의 형상을 빌어 잠시 뮈라의 모습으로 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문을 불러일으킬 만큼 요정 뮈라는 자신이 앞으로 변하게 될 나무의 속성을 이미 내부에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생명의 어두운 힘

독일에서는 동화를 요정 이야기라고 부르지 않고, ‘착한 여자 이야기라고 부르고 있는데, 마르트 로베르는 그림 형제의 동화서문에서 이 단어를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한 산파sage-femme”라는 말로 적절히 번역한다. ‘산파는 인간의 출생을 주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화에 등장하는 노파가 종종 실을 잣는 여인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sage-femme’를 일반적으로 산파라고 생각할 경우, 요정은 그 이미지가 고착되어 있는 고대 사회에서 지혜의 규율을 적용하여, 즉 생명의 모든 주요 행위와 마찬가지로 출생을 주제하는 엄격한 제의 절차에 따라 아이를 세상에 나오게 하는 사람이라는 가정이 가능해진다. 요정들이 사용하는 물레 가락fuseau은 단 하나아의 막대기다. 물레는 돌아가는 막대기이며, 바로 이 막대기에다가 실을 잣는 여인은 우주적인 윤회에 부합하는 단일한 움직임을 각인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물레는 새로운 운명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생명의 어두운 힘’, 죽음과 부활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 산파이자 현인賢人이면서 마법사인 이 현명한 여인을 통해 우리는 고대에서 그 모델을 가져온 흔적이 역력한 프랑스 낭만주의의 요정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처럼 동화가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관행에 대한 지식을 전수함으로써, 인간은 사물의 질서에 편입되고 진정한 세상의 빛을 받아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경이로운 과수원이었던 대지 위의 열매들은 피할 수 없는 시련을 극복하고 죽음의 고행을 치른 영웅들, 예를 들어 이그드라실 물푸레나무에 매달린 오딘과 깨달음의 나무 밑에 앉기 전 10년 동안 수행을 한 부처 같은 인물들만이 획득할 수 있는 최상의 지식을 표상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나무가 갖는 신성한 의미뿐 아니라 신적인 발현으로 간주되어 온 자연에 대한 존경과 경이로움이 사라져버린 것을 느낀다. 이는 인간의 모태인 대지의 어머니에 대해 그들이 느끼던 인식의 감정에 영향을 미쳤다. 모성의 신으로서, 고갈되지 않은 자연의 창조적인 힘의 상징을 잃고 이제 사람들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오로지 나무들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이익뿐이다.

알랙상드르 드 훔볼트는 우리는 모든 대중 신앙이, 설령 표면적으로는 매우 불합리하게 보일지라도 잘 관찰되지 못할 뿐 현실로 존재하는 현상들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294)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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