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미즘
만물에 깃든 영을 보다
[동화 인류학 에세이] 세계를 보는 세 가지 태도
동화는 무엇일까? 이번 <동화 인류 연구회>에서 내가 배운 내용을 돌아보면 무문자 사회의 신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만물의 동등함을 사유하며 어떤 자기도 고집할 수 없는 이야기,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넘나드는 이야기라고 정리하고 싶다. 그래서 평소 살던 방식, 생각 방식으로는 범접하기 어려운 세계다. 도무지 환상 같고 연기 같은 이 세계가 뒤죽박죽 얽혀있고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살던 대로 살고 싶지 않다면, 현실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을 조금 더 관찰하고 싶다면 동화적 상상력을 연습해야 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세상을 알고 경험하며 산다. 다만 파악되는 그 세계가 날로 작아지고 있다. 인류학자 팀 잉골드는 『조응』에서 디지털화로 소통이 빨라진 세계에서 우리는 점점 보이지 않는 세상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손편지 쓰는 일을 예로 들었는데, 펜과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간 편지를 곱게 봉투에 넣고, 닿은 곳의 주소를 적어 우표를 붙이고 발송한다. 편지를 받는 사람을 상상하고 다시 돌아올 답장을 기다린다. 하지만 디지털시대에 이런 거북이 소통은 시간 낭비로 여기기 쉽다. 시간으로만 계산하면 그렇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물질들의 질감을 파악하는 능력도, 시간을 기다리는 인내와 인내에 비례하는 기쁨도, 편지의 여정을 상상하는 일도 잃어가고 있다. 당장 스마트폰을 끄고 편지를 쓰자는 말은 아니다. 아날로그로 도배된 세상과는 다르겠지만 우리는 동화 인류학책을 읽으면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할 수 있다. 상상하는 ‘만큼’ 보이지 않는 세계가 열린다. 언어에 사로잡히지 않은 무문자 사회에서 그 세계는 일상처럼 가볍게 접근할 수 있었을까? 지금 나는 그 세계를 상상하려고 무진장 애쓰는데 어렵기만 하다. 미간과 눈꺼풀에 힘을 주어본다.
무문자 사회에서 인류는 죽음을 이후를 사유하며 영이라는 존재를 만들었다. 가시적인 세계와 비가시적인 영의 세계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 애니미즘, 토테미즘, 샤머니즘을 발전시켰다. 만물에 영이 있다는 애니미즘 개념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다. 원시 문화에서 사람들은 어째서 만물이 내면에 힘을 가진 영(활력)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했을까? 근원적인 힘을 상상할 때 어떤 보상이 따른다는 목적적인 이유는 아닐 것 같다. 자고 일어나 눈을 뜨면 어떤 이유에서인지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땅에서는 풀이 부쩍부쩍 자라다 시들고 다시 자라는 생동하는 장면을 보며, 자연이 살아있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순환의 고리에서 만물은 서로에게 힘을 주고받고, 세계는 작동된다. 어느 순간도 자기로 점철될 수 없을 것 같은 애니미즘의 세계는 무척 분주해 보인다.
토테미즘은 자연 전체에서 다른 존재들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차이 있음은 동등함과 다르지 않다. 곰의 능력과 물고기의 능력과 인간의 능력은 다르다. 원시 문화에서는 다른 것을 같게 혹은 같은 것을 다르게 맞추어 균형을 잡는다.
『신성한 용기』를 쓴 페루의 오스카 미로–퀘사다는 샤머니즘의 치유술을 전파한다. 그는 자연의 순환과 리듬을 자세히 관찰해야 우리가 분리된 존재가 아님을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다른 말로 ‘성스러운 상호관계sacred reciprocity’를 회복하자는 것인데, 이것은 곧 샤머니즘의 핵심이다. 순환과 리듬을 잘 보려면 우리의 몸을 깨우는 ‘혼’을 믿고, 관리해야 하는데 책에서는 이 관리술을 호흡하며 연습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이 제시되어 놀라웠다. 그 방법이 나에게 집중하여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명상법과 같은 결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스카가 샤머니즘을 치유 수단으로 삼은 것은 이 원리를 이해할 때 우리는 아름다움과 온전함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만 아는 것만 고집하지 않고, 보이지 않고 광대한 세계가 있다는 상상을 할 수 있다면 어떻게 살 게 되는 걸까? 충만한 자의식에서 머무를 겨를도 없이 나와 연결된 존재들을 속에서 내가 할 일을 노력하고, 조금 겸손해질 수 있지 않을까. 아직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지만. 그렇게 된다면 쥐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