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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미즘

만물에 깃든 영을 보다 

 

용기를 가질 때 상상이 현실이 된다

작성자
최수정
작성일
2024-07-24 17:16
조회
155

<동화인류학> 최종 에세이

 

2024.7.24. 최수정

 

용기를 가질 때 상상이 현실이 된다

 

동화인류학은 다카하타 이사오감독의 애니메이션 <가구야 공주 이야기>를 보고,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과정을 담은 그의 전시회를 다녀오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세미나를 하면서 애니메이션의 리얼리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그동안 애니메이션의 리얼리즘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기술적으로 그림이 얼마나 실제 사람처럼 잘 움직이고 말하게 하는가의 문제라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세미나 도중 알게 된 사실은 애니메이션과 리얼리즘의 관계는 그런 기술적인 기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애니메이션에서 리얼리티는 현실에 상상력을 동원해 새로운 관계를 발견해내고 실재하게 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애니메이션의 리얼리티는 모든 제작 과정에서 만나는 우발적 조건의 관계들에 있었다. 제작을 위해 모인 사람들 각각의 경험과 사회, 역사, 환경, 기술적 조건들이 즉각적 관계로 만들어내고 있는 현실 세계였다. 애니메이션의 세계에서는 연필, 지우개, 책상, 카메라, 스텝의 실수와 같은 모든 우연이 세계 출현에 참여한다. 모든 우연의 관계들이 만들어내는 현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우연은 우리에게 삶의 숨어 있는 수많은 경우의 수이고, 이 우연의 조합들이 우리의 반복되는 현실을 만들어낸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일이 상상력임을 보여준다. 상상력은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으로 숨어 있던 관계들이 드러날 때 그 관계들을 긍정하고 조합하며 새로운 관계를 정의한다. 우연이 촉발하는 힘을 상상력을 바탕으로 조합하고 행동하면 그것이 현실이 된다.

<가구야 공주 이야기>에서 가구야 공주가 벌을 받아 지상에서 달로 추방되는 이유가 상상력을 잃고 자기와 세계의 새로운 관계 구현을 할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늘과 땅 사이의 이 세상에 사는 존재는 탄생과 죽음 사이의 삶을 산다. 삶이란 사이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우연의 관계를 엮는 상상력에 의해 조합된다. 하지만 가구야 공주는 모든 우연을 거부했다. 우연에 의해 탄생하고 새로운 관계에 의해 구현되는 현실, 우발적 조건에 의해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그 순간이 전부인 삶을 거부한 것이다. 가구야 공주는 세상의 모든 우연을 긍정하고 그 조건과 함께 스스로 자기 현실을 구현해낼 용기가 없었다.

부정되는 상상력

신성한 용기에서 우리는 이미 온전하게 있는 그 세계를 알아차릴 힘 이 용기라고 배웠다. ‘용기는 매순간 포용하고, 매순간 기뻐하고, 필요한 것은 이미 가졌음을 믿는 일이었다. 슬픔도 기쁨도 모두 삶의 온전함이라 믿을 수 있는 일이 용기였다. 하지만 가구야 공주뿐만 아니라 나 또한 이 용기를 잃고 사는 때가 많다. 내가 가진 조건을 부정하고, 차라리 어제와 똑같은 오늘로 머물기를 바라고, 내일도 오늘처럼 변함없기만을 바랄 때가 있다.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Edward Burnett Tylor, 1832~1917)원시문화에 의하면 원시문화인들은 만물에 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영들은 만물의 관계성을 잇고 있는 실재적 존재들이다.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영들은 움직이고 거처를 이동하며 관계를 연결한다. 특히 이들은 숲 근처의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장소를 드나들었다. 동굴이나 절벽과 같은 신비로운 장소는 영들이 삶과 죽음의 세계를 이동하는 통로였다. 숲은 상상력의 보고寶庫였다.

숲의 나무들이 들려주는 나무의 신화, 거대한 우주목 이야기는 나무 한 그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이 거대한 우주목을 한눈에 볼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의 눈으로는 한 그루의 나무가 갖는 모든 관계성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한 그루의 나무에 깃든 햇살과 바람과 새와 비와 구름, 버섯과 뱀, 연어와 곰, 사람이 모두 모여 나무를 이룬다. 그것은 두 눈이 모두 자기 바깥만을 볼 때는 볼 수 없다. 북유럽 신화의 오딘처럼 한쪽 눈을 빼 그 눈이 자기 내면을 바라볼 수 있다. 한쪽 눈이 내면을 향해 자기의 근원을 바라볼 때 우리는 재생과 순환의 관계를 볼 수 있다. 근원을 바라보는 일은 하나의 자기라는 형상이라고 믿는 존재에 깃든 수많은 다른 영들을 볼 수 있게 한다. 나를 통과해 나와 나무의 근원적 관계를 알아보는 눈을 갖는 일, 그것이 바로 상상력이다. 원시문화인들은 상상력으로 인간과 나무가 서로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을 이해했다.

그런데 만물에 이 있고, 만물이 신이었던 원시문화를 지나고 시대가 바뀌면서 인간과 나무의 관계가 달라진다. 거대한 우주목과 함께 살던 신이 사라져가면서, 작아지고 희화화된 요정과 마법사, 은둔자, 포악한 사냥꾼의 이미지가 탄생했다. 다양한 장소에서 다채로운 모습으로 숭배받던 신들이 유일신 등장으로 작아지고 왜소해지는 과정을 힘겹게 견딘다. 비록 협소한 장소에서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변질되었지만, 여전히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존재로 잔존해 있었다.

하지만 상상력의 보고였던 숲의 신화에에서 더욱 치명적이었던 것은 과학과 함께 발달한 합리주의적 이성이었다. 이성의 시대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신화의 금기와 두려움조차 해제되었다. 합리주의는 만물을 영이 있는 존재로 생각하고 그 관계에 의해 세계가 탄생하는 상상력의 세계를 부정했다. 이제 숲과 나무는 자원이 되어 그 효용성의 가치로만 남아있다. 이제 크고 거대한 우주목에서 볼 수 있었던 다양한 관계의 깊은 숲은 사라졌다. ‘성스로운 숲‘, ‘숲 속의 빈터‘, 만물이 상호작용하며 공존하던 터전이 완전히 사라졌다. 사라진 숲과 신들과 함께 만물과 관계를 엮던 상상력도 사라졌다.

 

허무한 현실

나무의 신화는 인간의 눈이 외부와 내부를 함께 보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나무의 뿌리는 땅속 깊은 곳을 향해있고, 가지는 높은 하늘을 향해있다. 그 나무와 인간은 구별되지 않았다. 우주목의 신화에서 인간은 재생과 부활의 연속된 흐름 속에 안팎이 없는 끊임없는 운동 속에 있었다.

그런데 이성에 의한 합리성이 중요시되면서 이성이 아닌 눈으로 바라보는 세계가 외면을 받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부정되며 근원을 바라보는 눈의 기능이 의심됐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눈앞의 보이는 현실만 믿는다. 보이는 것들의 확실성에 파묻혀 현실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이 어우러지는 세계를 보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실제로 우리의 현실을 드러내 주고 있음을 보지 못한다. 상상력이 갖고 있었던 관계들의 실재, 그로 인해 드러나는 현실, 그 운동성이 만물의 감수성을 잇는 활동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상상력은 구체적인 현실에 바탕을 둔 동시에 이곳을 떠나 있다. 언제나 뒤꿈치가 들려 있어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현실성과 비현실성의 경계에서 둘 사이에 유동적인 통로가 있음을 본다. 둘 가운에 어느 하나만을 보는 것은 온전한 전체를 놓치는 것임을 알고 있다.

나는 <동화인류학>을 시작하면서 동화 읽기를 통해 상상력을 키우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때는 상상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애니미즘을 공부하면서 상상력이란 곧 삶을 창조하는 일이고, 풍부한 상상력으로 만든 창조적 삶이란 끝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는 현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물은 모두 자기 삶을 위해 움직이고, 그 끝없는 운동을 함께하는 세계에서 누구도 정지하고 있을 수 없다. 상상력은 변화하고 변화시키는 운동의 힘이다. 그 움직임의 활기가 만드는 것이 곧 우리의 현실이다.

나무의 신화들은 깊고 넓은 의 존재들이 각자 자기 삶을 위해 움직이는 행위가 어떻게 다른 삶에 영향을 주고받는지 그 관계성을 이야기한다. 새로운 관계를 맺는 사건이 없다면 현실, 즉 삶이 될 수 없다. 일상의 구체적 관계들이 삶의 도구가 되어 매일 어제와 다른 현실을 만들어낸다.

상상력은 아무런 바탕도 없는 곳에서 마법처럼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알고 있는 현실에서의 우연적 관계들을 긍정하고 그 우연들을 어떻게 엮어낼까 고민할 때 상상력이 발현된다. 상상력을 잃고 보이는 것이 다라고 생각할 때, 이것밖에 없다고 느낄 때 삶은 무료하고 허무해진다. 자기 삶을 구현할 용기가 없었던 가구야 공주처럼 허무에 빠져 이 세상을 떠나 차라리 달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그래서 원시문화인들은 용기를 의례와 결합했는지 모른다. 의례를 수행하면서 스스로에게 새로운 관계 맺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불어넣는다. 그리고 이 의례는 언제나 일상적이다. ‘용기란 너무도 자주, 쉽게 잃어버릴 위험이 있으므로 매일 매순간 반복적으로 몸과 마음에 익힌다. 그것은 가구야 공주 엄마가 베틀 앞에 앉던 일과 같다. 차이가 없는 것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는 물레가 쉬지 않고 돌아가면서 끊기지 않는 실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우리의 삶은 돌고 돌며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되새긴다.

 

치유의 상상력

애니메이션은 애니미즘에서 온 용어다. 만물에 들어 있는 은 물체적 존재로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이동한다. 그것은 정신과 감정이 있고, 지각능력이 있다.

애니미즘 세계에서는 영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얼마나 많은 관계에 참여하는지에 따라 생명력이 늘어난다. , 상상력에 따라 생명력이 증가한다. 내가 새롭게 만들어내는 관계는 매 순간 다른 관계에 참여하는 도구가 되어 또 다른 관계를 만들며 생명력을 증식한다. 각각의 개별 영들은 그들을 둘러싼 무수한 관계에 의해 재생산되며 현실의 공동창조로서 세계에 참여하고 있다. 영들은 관계들을 먹고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관계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없으면 스스로 말라가며 굶어 죽는다. 그래서 만물이 자기 상상력을 조합하고 있는 세계는 언제나 소란스럽고 분주하다.

애니미즘 세계의 주술사들은 주물을 사용해 주술을 행한다. 주술은 주로 영을 치유하기 위해 시행되는데, 삶의 활기가 떨어진 사람들, 예를 들어 병들거나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활기를 찾아주기 위해 주물의 배치를 달리하는 방법을 쓴다. 그들에게 선과 악은 따로 없다. 고통이 없는 상태가 이고, ‘이라 여겨지는 고통이나 나쁜 일은 잘못된 관계 때문에 생긴 것이다. 따라서 을 없애기 위해서는 관계의 배치를 바꾸면 된다. 각자의 은 모두 다르고 복잡하다. 그에 따라 힘이 미치는 관계의 장을 바꿔 현실의 어려움을 치유한다. 이것이 바로 원시문화인들의 치유술이다. 이들의 주물의 배치는 엄청나게 복합적이고 정신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서로 다른 을 위한 것들이다. 복잡하고 다양하게 얽힌 관계를 주의 깊게 사유하려 했던 원시문화인들의 용기있는 모습이다.

나는 타일러의 원시문화를 읽으면서 언제나 나를 둘러싼 영들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상상력 풍부한 사람들을 만나 더불어 즐거웠다. 그들과 함께 상상력의 뿌리에 애니미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상상력은 깊은 관계성과 연결되고, 관계는 언제나 움직인다. 만물은 움직이는 관계의 흐름을 따라가며 언제나 유동하는 공동인격들이다. 이것은 근대 이후 술의 신화를 잃은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의 개인적 상상력과는 다른 것이다. 오로지 모든 관계가 만으로 수렴되는 그런 것이 아니고, 이것은 오히려 관계성이 증폭되면서 자아가 분열한다. 다양한 관계를 위해 언제나 유연한 사고의 도중에 있는 넘치는 수용력으로 예민해져 있다. 공동인격으로서 이 세계의 공동창조자인 우리는 원시문화나무의 신화를 통해 인간과 나무의 관계가 변했을 때 세계와 인간의 관계 또한 변했음을 보았다.

 

상상은 현실이 된다

애니미즘의 세계를 통해 나는 상상력의 세계를 모르면 온전한 세계를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세계는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있어야 할 것과 없어야 할 것이 구분되는 곳이 아니다. 슬픔도 기쁨도 모두 온전히 현실로 드러나게 할 용기가 없다면 자기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없다. 세계를 공동인격들이 공동창조자로서 참여하는 공간이라고 인식한다면 나와 우리 모두를 용기를 내지 않을 수 없다.

상상력은 좋은 것과 함께 나쁜 것도 수용하며 온전한 세계의 힘을 믿는 일이다. 대립과 모순조차 긍정하고, 치유술에 따라 관계의 배치를 조정하며 자기 삶을 좋은 쪽으로 구성하는 능력이다. ‘상상력이 사라진 시대에 동화를 읽으면서 상상력을 키운다는 것은 편협한 관계에 빠진 삶의 공간에 동화라는 주물을 놓아 관계의 배치를 바꿔 치유하는 주술이다. 주술을 통해 삶의 온전함을 믿을 수 있는 용기를 얻는 사람은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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