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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미즘

만물에 깃든 영을 보다 

 

[나무의 신화] 우주나무의 행로 (글수정)

작성자
김유리
작성일
2024-07-10 18:18
조회
148

자크 브로스 『나무의 신화』 후반 2024-7-10 김유리

 

 

성스러운 숲 네메톤

레비-스트로스가 ‘야생의 사고’라고 부른 것은 인간의 오래된 사유 양태로서, 자크 브로스에 의하면 숲에서 유래한 지성이다. 야생(sauvage)은 숲(silva)에서 유래한 말이고, 야생의(숲의) 사유 방식 속에서 나무들은 살아 있고 영혼을 가진다.

켈트인은 성스러운 숲을 네메톤(nemeton)이라고 불렀다. 성스러운 나무가 중심으로 한 넓은 빈터가 숨겨져 있는 네메톤은 일상 공간으로부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금기로 보호받는다. 그곳은 건축물 없는 자연 신전으로서, 제의와 회합과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소였다. 켈트의 땅으로 세력을 넓힌 그리스도교인들은 성림을 개간하고 수도원을 지어 토착 고대 신앙의 세력을 약화시키고자 했다. 제의는 금지되고 숲은 훼손되었다. 숲 자체가 박해의 대상이 된 것이다.

브르타뉴 지방 전역이 ‘깊은 숲’으로 뒤덮여 있던 시절에 드루이드 사제와 음유 시인의 후손들이 이곳에 이주해 은둔했다. 태고의 숲이 사라지고 난 뒤, 자연의 영들은 깃들어 살 장소를 상실하고 브르타뉴의 전설 속 마법의 숲으로 도망쳐야 했다. ‘브로셀리앙드의 숲’ 전설에 등장하는 마법사, 예언자, 샤먼인 ‘멀린’은 오래된 나무 신의 흔적으로서, 우주목의 꼭대기에 스스로 유폐됨으로써 근원으로 돌아가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

나무들의 영혼

신격을 가진 특별한 나무 이외의 모든 나무는 각기 고유한 본성을 가진 요정들의 거처다. 나무 요정들이 위험을 피하기 위해, 또는 지은 죄에 대한 벌로 변신하는 요정담들에는 ‘신의 몸’이 들어 있으니 나뭇가지를 함부로 꺾지 말라는 경고가 들어있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가 나무에 대해 가지는 ‘공손하고 열렬한 사랑’이 『변신 이야기』의 이면에서 심오한 깊이를 더한다고 브로스는 지적한다. 경의를 표하지 않는 사람들을 벌하는 중세 요정담에도 오랜 세월 제의를 올리던 나무들의 기억이 이어진다.

 

이교도의 신들의 운명

숭앙받던 나무 신들은 교회의 추방 노력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신비롭고 기괴한 ‘이교도의 신’으로서 생생하게 살아남는다. 보슈의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은 이교도 신들로 가득찬 행로를 표현한 그림이다. 숲의 지배자인 판(Pan)은 사탄이 되었다. 재생의 주기를 상징하는 뿔이 달린 존재들, 반인반수, 몽마가 어두운 숲에서 출몰하며 그곳에 들어오는 이들에게 ‘설명할 수 없는 공포(panique)’를 유발하였다. 숲과 관련된 사람들은 그러한 신들의 위험한 영향권 안에 있다고 생각되었다. 외따로 살며 비밀스러운 회합을 가지는 마법사와 마녀들은 본능적 힘을 표상하기에 교회의 적으로 배척되었다. 나무 구멍에서 살면서 나무를 스승으로 삼는 많은 고행자들, 무시무시한 외모의 사냥꾼과 채석꾼들도 그리스도교의 건실한 윤리로부터 거리가 있는 자들로 여겨졌다.

 

나무 인간

야생 동물의 호위를 받으며 숲을 지키는 괴물 같은 ‘나무 인간’들이 시대를 불문하고 존재해왔다. 이들은 깊은 숲 속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세력으로, 본능적이고 어두운 힘의 세력을 상징한다고 한다. 덴마크와 프러시아의 왕가의 문장에 등장하는, 벌거벗은 채 나뭇잎 왕관과 허리띠를 차고 몽둥이를 들고 있는 나무 인간 그림은 야생적 자연을 의인화한 것으로 고대 나무 신의 마지막 화신이다.

 

요정의 기원

요람을 들여다보는 요정은 인간의 출생에 관여하며 운명을 주재한다. 출산과 관련되기에 자연의 창조적인 힘을 행사하는 모성의 신을 계승하며 대지모의 풍부한 물과 달 숭배와 관련된다. 운명을 주재하는, 실 잣는 운명의 여신들이 요정의 조상이다. 모성과 운명의 여신을 모시는 골족 여사제들은 요정처럼 외따로 살면서 흰옷을 입고 약용 식물에 대한 지식을 보유한다. 점성술, 저주, 비밀 제의 모두 드루이드 무녀와 요정의 공통된 특징이다. 브로스는 개종을 거부하고 숨어 살았던 골족 여사제들이 요정의 역사적 기원이라고 본다. 이들은 이후 동화에 등장하는 산파이자, 현명한 여인이며, 노파로서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이다.


요정의 도구들

마법의 지팡이는 그저 나뭇가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성스러운 나무에서 유래하기에 생명을 부여하고 변모시키는 신성한 권능을 갖는다. 풍요를 기원하며 막대기로 땅을 치는 고대 의례는 지상의 힘을 불러모아 씨앗을 부활시킨다. 헤르메스의 지팡이는 소통과 치유의 능력을 가지며 모세와 마녀의 막대기는 수맥을 찾는다. 이 지팡이는 마녀의 날아다니는 빗자루로 변천한다. 부활, 변화, 연결, 치유의 능력은 브로스에 따르면 나무의 속성이다.

 

마법이 풀린 숲

공공의 금기와 심리적 두려움이 모두 해제된 지금 더 이상 숲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 18세기 말부터 열정적으로 전개된 탐험, 기원에 대한 연구, 개발은 모두 환상을 몰아내는 파괴 행위로 이어졌다. 이제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우주 밖에 남지 않았다. 식인귀 오르그와 우리의 운명을 잣는 요정들은 우주 공간으로 쫓겨나고 있다.

 

과일나무 숭배

고대인들은 식량을 주는 과일나무를 각별하게 숭배했다. 그들은 나무 열매가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과수의 여신 포모나는 과일의 숙성을 관장한다. 베르툼누스는 계절을 변화를 관장하고 과일나무에 정성을 들인다. 브로스는 고대인들이 우리보다 자연과 더 친숙하고 성스러운 성격에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였고, 여러 과일의 신비로운 기원과 용도에 경탄했다고 주장한다.

야생의 열매만으로 생존이 가능했던 ‘황금시대’가 지나갔다. 재배 기술을 동원하여 수확량을 늘릴 수 있었던 올리브, 무화과, 사과 등은 문명의 과일이라고 할 수 있다. 도토리 수량이 감소하면서 올리브가 성스러운 참나무를 대체했다. 올리브 기름은 종교 제의, 대관식, 치료약, 조명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문명의 나무들은 국가의 건설과 연관되어 올리브는 아테네의 나무이고, 무화과는 로마 건국 신화에 등장한다. 사과는 트로이 전쟁을 초래하는 등 탐욕에 대한 경고로 작동한다. 다수확에 대한 관심과 함께 무화과와 사과의 속성들은 줄곧 성적인 상징이었다.

 

에덴 동산에서 나무 십자가까지


에덴 동산 신화에 등장하는 유혹의 나무는 기독교 예술에서 사과나무로 표현된다. 사과는 지식과 불사와 욕망의 의미를 갖는다. 은폐된 신의 비밀을 엿보고자 하는 입문적 지식은 위험을 동반한다. 불멸성은 초자연적 시련을 거쳐야 도달할 수 있으며, 욕망은 질서를 교란하는 위반 행위를 초래한다.

동산 한 가운데 있는 나무는 이중의 의미가 있다. 생명의 나무로서 욕망, 즉 출산과 생식의 본능을 충동하고, 동시에 지식의 나무로서 죽음의 고행을 초래한다. 불사를 꿈꾸는 인간은 영생을 주는 나무와 그 나무에의 접근을 막는 뱀과 함께 삼각구도를 이룬다. 불멸성은 초자연적인 시련들을 거쳐서야 얻어질 수 있지만, 아담은 뱀에 저항하지 않고 유혹에 짐으로써 생명으로부터 멀어진다.

「창세기」는 창조의 신이 복수의 엘로힘으로 지칭되거나 단수인 야훼로 지칭되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창조 이야기로 시작한다. 복수의 하느님(엘로힘)이 복수의 인간을 창조한다는 것은 남자이자 여자인 양성자로서의 아담을 창조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최초의 양성자의 심오한 의미는 남성적 원리가 유일한 권위를 갖는 가부장적 환경에서 유래한 「창세기」에서는 가리워져 있다. 하지만만 히브리 전승에 나오는 ‘세피로스의 나무’ 상징 속에 보존되어, 창조적 힘의 발현 과정을 보여준다. 이 나무의 도식에서 ‘이름 없는 영혼’은 빛의 점으로 발현되기 시작하는데, 첫 번째 광점(세피라)인 씨앗에서 자라난 오른쪽 나뭇가지는 ‘우주의 아버지’이자 남성적 원리이고, 왼쪽에서 나오는 가지는 ‘위대한 어머니’다. 두 갈래 가지 사이로 솟아나는 줄기는 균형의 축으로서 천상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통로가 된다. 마지막 세피라는 어머니, 여왕, 산파, 기혼자를 의미한다. 이를 「창세기」 신화에 적용하면, 창조하는 유일신은 논리적으로 양성자일 수밖에 없고, 하나인 신은 자기를 둘로 분리함으로써 우주를 창조한다. 마찬가지로 혼자였던 아담은 양성자로서, 자기 몸에서 이브를 분리시켜 둘이 된다. 이렇게 분리된(창조된) 우주와 이브는 자기 원천의 ‘타자’이자 ‘육화된(물질화된) 욕망’이다. 그렇지만 이 태초의 창조가 완성되면, 모든 것의 기원이자 ‘모든 존재자의 어머니’로서 다시 영원한 하나(동일자)가 이루어진다.(351) 이와 같이, 에덴 동산 이야기는 세피로스의 나무 도식에서 하나의 이미지로 압축된다. 양성성에 관해서 덧붙이면, 나무는 암수의 특징을 동시에 띠고 있고, 그 모호한 양성성으로 인해 현대인이 나무에서 남근상을 보고 있는 것과 같이 고대에는 나무의 모성적 성격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생명의 나무는 아담과 이브가 상실했고, 후손들이 접근할 수 없었던 낙원의 나무다. 예수가 흘린 피는 생명의 나무를 소생시키는 강물이 되고, 그가 매달린 수난의 나무는 죽음의 나무이지만 신처럼 부활한다. 생명의 나무는 십자가 나무와 동일한 것이 되면서 다시 한번 세계의 중심이 된다. 죽음의 시련을 이긴 신의 아들(새로운 아담)은 스스로 제물이 되어, 죽음의 시련을 거쳐 인간과 신 사이의 통로를 연결하고 우주목을 새로 심었다.

 

자크 브로스는 역사상 교회가 승리한 이후 사람들이 숭배하는 우주목은 오로지 십자가 나무 하나로 존재하게 되었고 다른 나무 숭배 제의들은 금지되었다고 한다. ‘이교도’들의 우주 체계는 ‘상보성’과 ‘다양성’에 기초하는 데 비해, 일신론적 우주는 비관용적이며 이원론적이다. 일신론적 이원 세계에서 선한 영혼과 정신은 신에게 귀속되고 육체는 자연과 함께 악마의 도구로 버림받는다. 저자는 만물의 공존과 화합에 근거한 생명의 균형이 무너졌다면서, 자연의 힘의 원천인 복잡하고 세세한 본래적 가치와 내재적 의미들을 나무로부터 소생시키고자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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