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미즘
만물에 깃든 영을 보다
[나무의 신화] 몽상을 통해 알게 된다
동화인류학 7번째 시간/『나무의 신화』/24.7.3/최옥현
몽상을 통해 알게 된다
우리의 상상력은 얼마나 협소한지! 이 책에 나오는 신화는 독버섯을 두꺼비, 두꺼비 왕관, 지하 세계의 음울한 힘, 달, 비와 관련된 마녀들의 동물, 자작나무 등과 연결하고 있다. 작은 식물인 독버섯은 저승과 지구과학과 식물학과 우주 차원까지 확장되어 관계 맺고 있다. 자크 브로스는 이 책 서문에서 나무의 신화를 재구성하기 위해 수목학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무엇보다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가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의 시야는 수목학의 시선에 갇혀 고대인들의 사고에 비하면 거의 장님 수준이다.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성스러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고대인들은 몽상을 통해 우주에 대한 직관적 이해와 인간이 점유하고 있는 장소에 대한 이해와 인간이 수행해야 할 역할에 대한 지식을 만들어 갔다. 이런 야생의 사고와 우리의 사고는 무엇이 다른지, 야생의 사고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 얼핏 사람들의 일상적인 관심들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탐구는 기원에 있어서 궁극적으로 레비–스토로스와 일치하고 있다. 왜냐하면 ‘천지 창조로부터 인간을 고립시켰던 서양의 휴머니즘은 인간에게서 보호색을 박탈해 버렸다. 그 순간부터 인간은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더 이상 알지 못하게 되고, 스스로를 파괴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인간을 현대 사상 대신에 자연에, 세속적인 것을 성스러운 것에, 일상적인 것을 신성한 것에 연결시켜 주는 우주적 질서를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 죽은 자들이 사는 곳에서 나온 지하수에서 모든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다.
– 실 잣는 세 명의 여인들로 그려지는 노른느는 그리스와 로마 신화의 모에라이와 파르카에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파르카에처럼 노른느는 차오르고, 가득 차고, 이지러지는 달의 세 가지 측면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자연의 생명에 리듬을 맞추는 것이고, 또한 인간의 삶의 세 시기인 청년기, 성년기, 노년기와도 일치하고 있다.
– 이그드라실이 뿌리를 통해 중첩된 지하의 세 영역, 즉 신들의 영역과 선사시대 거인들의 영역과 인간 조상들의 영역을 지상으로 떠오르게 하면, 그 물푸레나무의 줄기는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중간층으로 인간들이 사는 곳인 미드가르드를 가로지르게 되며, 그 나무의 꼭대기는 신들의 천상 거주지인 아스가르드에까지 닿는다.
– 나는 알고 있나니, 바람에 쓰러진 나무에 매달려 아홉 낮 아홉 밤을 보냈네. 창에 찔리어 오딘에게 보내지니 나 자신 스스로에게 희생되누나.
(오딘이 나무에 매달린 것은 고통 받는 인간들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마술적 힘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 오딘은 조언을 구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미미르의 샘으로 간다. 그러나 이그드라실은 벌벌 떨며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보인다.
– 전 우주에 걸친 화재에도 불타지 않은 물푸레나무 숲에서 한 쌍의 남녀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으니, 그들이 바로 리프와 리프트라지르이다.
– 인간이 나무에서 태어났다는 생각은 인도–유럽 어족의 전통 사회에서는 일반적인 것이다.
– 고인돌, 신석, ‘세계의 중심’인 그리스의 옴팔로스, 그리고 인도의 링가 같은 성스러운 돌과 근원목을 서로 연관 짓는 것은 대부분의 전승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자유로운 ‘정신’, 발아할 준비가 되어 있는 씨앗, 잠재적인 존재의 저장소로 간주되며, 수태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나무가 생과 사의 순환 주기에 복종하는 반면, 돌은 정태적 생명의 상징이 되었다.’
– 인간의 근본 원리들인 두 영혼의 결합은 ‘나무–바위’라는 쌍으로 표현된다. 전자는 여성적 원리를, 후자는 남성적 원리를 표현한다. 민간 전승 속에서 나무는 분명 식물의 영혼인 ‘네프’에 그늘과 습기를 제공하며, 특히 ‘새처럼’ 높은 곳에 앉아 있는 섬세한 영혼인 ‘루’의 버팀목이다. 식물의 영혼은 바위나 돌 속에 존재한다. 돌 사이에서 솟아나오는 샘들은 단지 저 깊은 세계에서 유래한 풍요의 상징일 뿐이다.
– 나무와 돌의 한 쌍에게 바쳐지는 의식의 흔적들
– 그들은 거대한 나무가 우주를 떠받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몇몇 종족들은 언덕 위에 아주 커다란 나무 기둥을 세웠다. 우주 기둥 ‘이르민술’
– 오래전부터 이들의 예언자들은 한 숲을 숭배하였는데, 이곳에는 경건한 공포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 장소는 일종의 성소로 여겨졌는데,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바로 이곳에서 탄생했으며, 이곳에 세상을 다스리는 신성이 있다고 믿었다.
– 원래 땅의 속성은 말이 가지고 있는 성질로 설명된다. 이 둘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 포세이돈은 어머니 레아가 자기 대신 어린 망아지를 아버지 크로노스에게 갖다 주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 헤시오도스가 묘사한, 완전한 견고성의 상징들인 물푸레나무와 청동 사이의 이와 같은 연관성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무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의 청동 무기에는 물푸레나무로 만들어진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 나무가 벼락을 맞고 숲에 불이 나면서 인간은 하늘로부터 신의 선물인 불을 받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나무는 흔히 ‘불의 아버지’라 명명되었는데, 사실상 불은 나뭇가지들을 서로 비비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 자연 속에 살았던 고대 인류를 상상해 보자. 이들에게 있어 자연과의 일치는 복종이 아니라 조화를 의미했다. 더욱이 명상가는 이러한 몽상을 통해 그 근원적 의미를 재발견한다. 이때 몽상은 가장 진실되고 미래 예견적인 존재 양태를 구축한다. 붓다는 나무 아래에서 꿈을 꾸다가 너무나도 인간적인 악몽에서 깨어난다. 신성한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명상에 잠기는 동안 인간이 끊임없이 분리되려고 하는 우주에 대한 직관적 이해가 존재의 저 밑편에서 떠오른다. 그것은 인간이 점유하고 있는 장소에 대한 이해요, 그가 수행하고 있는 역할에 대한 이해이다. 그것은 모든 생물체가 소유하고 있으나 단지 인간에게만 거부당하는, 아니 오히려 인간만이 거부하는 자연적이며 필요충분한 이해이다.
– 몽상 외에는 그 어떤 사실적인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상상력을 통해 우리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키는 것들은 고생물학이 해온 기나긴 탐색 작업의 결과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 태어난 바다를 떠나기 전만 해도 해초였던 식물들은 다른 모든 생물체에 필요한 공기층으로 지구를 둘러싼다. 식물이 대지를 덮는 날, 모든 것이 변한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시작된 연속적인 변모 과정을 통하여 나무는 하늘로 뻗어 나가 성장의 정점에 도달한다. 거대한 유기체요 경이로운 에너지의 압축기이자 생화학적 변압기인 나무는 물을 밖으로 내보내며 소량의 물만을 사용하여 대기 중에 남은 여분의 수분을 증류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