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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미즘

만물에 깃든 영을 보다 

 

[나무의 신화] 우주나무 이야기

작성자
coolyule
작성일
2024-07-03 18:12
조회
203

자크 브로스 『나무의 신화』 1-5장 2024-7-3 김유리

 

우주나무 이야기

 


왜 우주목인가

  자크 브로스는 신화와 전승을 통해 고대 사회의 우주나무 숭배를 살펴보면서, 인간의 운명이 나무와 밀접하게 맺어온 관계를 독자들 앞에 생생하게 불러오고자 한다. 성스럽고 놀라운 나무들에 대한 많고 많은 이야기들과 함께 우리의 운명은 나무와 함께 변화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푸레나무에 매달려

  거대한 한 그루의 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천상과 지하의 심연 사이를 연결한다. 땅속에서 물을 길어 올려 수액을 만들고, 태양빛을 받아들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구름을 모아 비를 내리게 하고 모든 생명체를 보호하고 양육한다. 우주는 이 나무로 인해 영원히 재생된다. 이러한 성스러운 우주목의 신화와 전승은 지상의 모든 곳에서 발견된다.

  게르만 신화의 ‘이그드라실’은 우주적 규모의 물푸레나무다. 신들마저 다 죽는 대멸망 이후까지 나무는 살아남아 재생하는 세계의 근원이 된다.

  우주목은 인간이 이 우주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설명해주는 보편적 상징이다. 인간은 자신의 보호자이자 양육자인 나무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나무를 통해 자기 자신과 우주에 대한 이해를 얻어왔다. 자기보다 크고 자기보다 오래 사는 나무 아래서, 혹은 나무에 기대어 몽상하는 인간의 모습을, 저자는 나무에게 질문하고 대답을 듣는 사람의 이미지로 그려 보인다.

 

자작나무 기어오르기

  가장 높고 밝은 천상과 가장 깊고 어두운 하계로 뻗은 우주목은 신과 영들이 다니는 통로이다. 시베리아의 샤먼들의 우주목은 자작나무다. 부리야트인은 샤머니즘 의례에서 곧고 굵은 자작나무를 천막 안에 세우고 하늘로 올라가는 통로로 사용한다. 아홉 개의 홈을 파낸 나무를 기어오르며 엑스터시에 빠져드는 입문자는 9층 하늘에 도달한 후 샤먼으로서의 힘을 얻는다. 신들의 세계를 한 단계씩 여행하는 승천 의식을 거쳐 다시 지상으로 돌아온다.

  나무줄기만이 아니라, 자작나무 아래서 자라는 버섯의 즙이 환각 상태를 일으켜 신들의 세계로의 여행길을 열어준다. 버섯은, 자작나무 가지로 테를 두른 무고를 두드리며 자작나무를 기어오르는 상승 제의의 중요한 한 요소이다. 샤먼의 여행은 아픈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한 위험한 모험이다. 샤먼은 신과 인류 사이의 통로를 오가는 자로서 인류를 무기력한 상태에서 일으키고, 신의 무관심에 반기를 드는 자이다.

  한편, 인도 신화에는 높은 곳과 낮은 곳 사이를 오르내리는 상호 순환이라는 점에서 ‘거꾸로 선 나무’ 상징이 등장한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하강의 움직임에는 창조 활동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추상적인 신적인 에너지가 뿌리에서부터 발원하여 잎과 꽃이 달릴 나뭇가지 쪽으로 하강하면서 구체화되는 것이다. 또한, 아래로 흐르는 에너지라는 점에서 거꾸로 선 나무는 태양과 동일하다.

 

참나무, 우주 어머니

  고대의 참나무 숭배는 우주의 어머니인 위대한 여신 숭배와 관련이 있다. 참나무는 인간을 낳고 먹이는 대지의 여신의 나무다. 도도네의 신탁은 델포이 신탁만큼 알려져 있었는데, 참나무 잎사귀들이 살랑거리는 소리를 해독하는 여사제들이 집전했다. 유럽에서 참나무 숭배는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까지 살아남는다. 참나무는 크기와 수명으로 경외심을 일으키는데, 유럽에서는 줄기 지름이 10미터, 수명이 2천년이 넘는 참나무가 기록되어 있으며 말을 탄 300명의 남자들이 몸을 피했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게르마니아 전역은 참나무 숲이 뒤덮은 장소였다. 게르만인들에게 참나무는 천둥의 신 도나르-토르의 나무로서 대기를 다스리는 날씨와 수확의 주인이었다. 켈트인들에게 참나무 숲은 공공 성소였다. 드루이드(갈리아인 마법사)는 참나무와 겨우살이를 숭배했다. 참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성스러운 식물이며 참나무의 생명을 담은 심장이라고 여겨졌다.

 

생명의 수액

  농경 문화의 출현 이전, 채집이 중요했던 시대에 나무는 양육자로서의 신격과 결합되어 있었고 생명의 진정한 원천으로 간주되었다. 디오니소스는 농경 사회 이전의 식물 신격에서 유래해 오랜 변천 과정을 겪고 시대의 저항을 이기고 인정받는 신이다.

  디오니소스는 근본적으로 수액의 신이다. 우주-나무에서 생겨나온 이 젊은 신은 이곳저곳 이동하는 여행의 신이다. 관계된 소녀들의 교수(목매달기)는 나무에서 태어나 다시 나무로 돌아가는 일종의 겨울잠에 해당한다. 이 신이 좋아하는 담쟁이덩굴은 나무를 휘감은 뱀을 떠올리게 한다. 고대의 뱀은 지하 세계 및 땅의 권능을 상징한다. 이 신과 관계된 사리풀은 정신 착란 상태를 일으켜, 질서를 카오스로 되돌리고 새롭게 출발하게 하는 힘을 가졌다. 디오니소스는 수많은 식물과 속성들이 합류되는 신격인데 최종 형태는 포도나무의 재배와 포도주 발효와 관계되어 있다. 버려지고 타인(유모와 스승) 손에 키워지고 보호받은 어린 신의 성장은, 원숙하게 변성되는 포도주의 속성을 띤다. 겨울 내내 연이어 벌어지는 디오니소스 축제들은, 수액들이 다시 뱀처럼 줄기를 휘감아 오르게 될 봄의 부활을 부르는 제전이다.

  나무의 생명인 수액은, 모든 존재들에게 물질과 활력을 주는 에너지로서의 ‘생명’ 그 자체이다. 고대 그리스 디오니소스 제전은, 문명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은 자연에 귀속되어 있다는 점을 일깨웠다. 생명 에너지는 인간과 나무의 삶을 망라하며 동일하다는 점을 우리는 잊었지만 저자에 말대로 그들은 잊지 않고 있었다.

 

+

5장 추가


나무 신의 죽음과 부활


 나무를 신화의 맥락에서 다루는 것은 신화에 대한 새로운 독법을 제안한다. 프리기아의 아티스, 페니키아의 아도니스, 이집트의 오시리스는 매우 다른 신들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수목 숭배를 의미한다. 이들은 나무 신으로 죽음과 부활의 주기를 따른다.

  세 신은 남근 숭배와 관련 있지만 성별이 모호하다. 홀로 존재한 우주-대지가 자기 분열하면서 낳은 이 아들 신들은 아버지가 없이 어머니와 ‘동일시’하거나 결합하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남성이거나 배우자이기보다 생식 능력 자체이다. 그리고 이들의 신화에는 거세의 주제가 들어 있다. 생명의 상징인 생식 기관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을 때 버려진다.

  종교적 열광 속에 통음난무와 함께 이루어지는 나무 숭배 제의들은 잔혹한 희생 제의에서 절정을 이룬다. 귀를 찢는 악기들의 굉음 속에 사제들이 빙빙 돌면서 춤을 추는 중에 사람과 짐승의 생식 기관이 절단되어 던져지면 신상에 피가 튀고 제물들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다. 나무에 목을 매달아 그네처럼 흔들리는 소녀들의 신화는 봄과 발아와 풍요를 비는 행위다. 

  희생 제의는 신의 희생담과 뒤섞인다. 뒤섞이는 것만이 아니고, 사실 희생 제물과 신은 하나이다. 나무 신은 스스로를 희생한 나무 그 자체다.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제의는 인간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나무의 제의(나무 뽑기 제의)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이 제의에서 드러나는 것은 인간이 생명을 의탁하는 나무와의 관계다.


소감

  인간은 나무와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우주목에 의탁하는 자기 존재의 위상을 깨닫게 된다. 나무에 매달린 세계들의 신화가 가르쳐주는 건 인간의 자리이며, 나무와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는 인간은 자기 자신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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