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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佛陀  

[유쾌한 불교] 불교의 ‘고苦’

작성자
진진
작성일
2025-03-09 16:15
조회
10

불교의

 

불교의 업 이론(선업을 쌓아 해탈으로 간다)은 인과론을 전제한다. 인과론에는 자유의지(선업이나 악업을 선택하고, 그 책임을 자신이 진다)가 개입하기 어렵다. 하지만, 불교에서 이 자유의지가 발동하는 순간이 발심發心이다. 발심은 나는 이 세상에 우연히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그 기회를 활용해 붓다가 되는 길을 가겠다라고 결의하는 것이다.(72)

불교는 해탈을 지향한다. 해탈은 윤회하는 삶의 괴로움에서 해방되는 것을 뜻한다. 열반(니르바나)은 깨달음의 다른 이름, 평안의 경지다. , 윤회() -> 깨달음 -> 해탈(열반).

불교에서 삶은 고이다. 왜 삶은 고이며, 이때 고는 무엇인가.(73~75) 

앞 시간에 살펴봤듯이 불교는 힌두교에서, 힌두교는 인도의 고대 종교 브라만교에서 조금씩 변화되어 나왔다(46). 이 기저에는 윤회사상이 있고, 생로병사의 삶이 괴로움이라는 인식은 불교를 포함하여 모든 종교에 공통된 것이다. 여기에서 붓다가 정말 삶을 고, 괴로움으로 보았을까 하는 의문이 따라온다. 물론 삶에는 괴로움도 있지만, 이에 동반하여 즐거움이나 기쁨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스트의 두 번째 계급(크샤트리아)으로 석가족의 왕자이지 않은가. 그에게 삶은 괴로움 자체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사문 밖에서 만난 이들(노인, 병자, 죽은 자, 출가자)은 그와는 달랐다. 이를 계기로 그는 출가를 하게 된다. 그가 그때 봤던 삶은 괴로움이었다. 일체개고一切皆苦는 인도사상의 출발점이다.(74~76) 

유대교의 는 민족이 역사적으로 처한 상황처럼 공동체의 고난이지만, 불교의 는 생로병사나 *팔고와 같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문제이다. , 삶이 란 좋고 즐거운 일만의 연속이 아니라는, 괴로움을 동반하는 것이다.(82)

유대교에서 고를 해결해주는 것이 GOD이라면, 불교에서 고는 깨달음을 통해서 스스로 제거할 수 있다.(88) 


* 니르바나(열반涅槃) : ‘번뇌의 불이 꺼진 상태의 평온함, 깨달음의 경지’, 입멸入滅, 죽음.

(반열반般涅槃 : 완전한 열반, 대반열반大般涅槃 :석존의 입적)


*사법인四法印 : 불교 교리의 네 가지 슬로건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현상은 변화한다

諸法無我제법무아 모든 것은 실체를 갖지 않는다

열반적정 涅槃寂靜 번뇌가 사라진 깨달음의 경지는 편안하다

일체개고 一切皆苦 존재하는 모든 변하는 것은 괴로움이다(인도 사상의 공통된 출발점)


*사성제 四諦 : 불교에 대한 네 가지 진리

고제 苦諦 현세에서의 삶은 곧 고통이다

집제 集諦 괴로움의 원인은 끝없는 애집에 있다

멸제 滅諦 모든 욕망을 벗어나서 괴로움이 소멸한 열반의 경지

도제 道諦 번뇌와 업을 끊고 열반에 도달하는 길 


*부파불교 部派佛敎 고타마 붓다가 열반에 든 지 100년쯤 지난 후 보수적인 상좌부(上座部)와 진보적인 대중부(大衆部)로 분열, 이 두 부파(部派;종파)로부터 여러 갈래의 분열이 일어나 불교가 여러 부파로 나뉘면서 전개되었던 시대의 불교이다.


*팔고 八苦 생로병사의 사고四苦, 원증회고(怨憎會苦), 애별리고(愛別離苦), 구불득고(求不得苦;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괴로움), 오취온고(五取蘊苦;물질과 정신의 요소인 색수상행식의 오온에 집착함으로써 생기는 괴로움)

 * 종교 비교 (추후 배운 내용을 조금씩 채우고 수정해 가보려고 합니다.)

 

불교

기독교/유대교(일신교)

믿음

붓다의 일체지(일체지)

GOD의 전지(전지)

교리의 정합성

인과론과 자유의지의 모순을 발심으로 해결

전지와 전능 사이의 모순

개인의

공동체적

고의 전제

불완전한 인간

죄인

벡터(방향)

인간중심주의, 개인주의, 합리주의

신중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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