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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佛陀  

[유쾌한 불교] 깨달음의 극한과 깨달음을 위한 수행

작성자
진진
작성일
2025-05-11 08:01
조회
23

깨달음의 극한과 깨달음을 위한 수행

 

불교에서 깨달음은 궁극, 극한의 상태이다. 지금, 여기의 나를 시공간적으로 무한히 확장한 상태에서 바라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유쾌한 불교깨달음의 결과는 자신이 최대의 타자가 되는 것’(264)이라는고도 한다. ‘나는 내가 아니고, 인간이 아니며, 생명도 아니고, 기묘하고 기괴한 우주의 메커니즘 그 자체’(264).

우리는 이 지점에서 내가 없는 무아의 깨달음이란 욕망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가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다면, 나는 삶을 어떻게 끌어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들었다. 먹고 싶다, 알고 싶다, 건강하고 싶다, 성공하고 싶다 등의 삶의 방향성이 없다면 나는 먹을 필요도, 아침에 눈을 떠 자리에서 일어날 이유도 없지 않을까? 끝까지 간다면 왜 살아야 하지?

여기에서 책은 불교의 ()’에 대해서 말하며, 서양 혹은 일신교의 ()’와 구분할 것을 상기시킨다. 책의 앞 부분에서도 나왔듯이 우리는 보통 실재와 현상을 구분하지 않고 생각하지만, 불교에서는 이 둘을 다르게 본다는 점을 떠올려본다. ‘는 여기에 존재하지만, 생각이 계속해서 바뀌고 내 몸의 세포가 죽고 태어난다는 점에서 나라는 존재를 고집할 수 있는 걸까? 이렇게 나라고 생각하는 여러 조건을 헤집어보면, ‘자신이 있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라서 있게 되는 것이고, 그것은 기적적인 조건에 이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에 집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된다’(273)고 한다.

욕망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가 깨달음의 궁극, 극한이라면, 그 극한으로 가는 과정은 떠오르는 욕망을 공의 차원에서 해석하는 것으로 깨달음의 상태보다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 내게는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깨달음과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의 설명을 하시즈메 선생님은 ‘00.1, 0.001, 0.0001, 0.00001, …..’의 관계로 설명해주었는데, 이해가 확!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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