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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추천사>

작성자
inmoonse
작성일
2024-06-04 04:34
조회
139

거북이 잉글리쉬(매주 월요일 오후 730~ 930)의 번역입니다. 오선민 선생님, 이종은 선생님, 조재영 선생님, 최경미 선생님, 최옥현 선생님, 윤연주가 함께 번역했습니다.

 Beyond Nature and Culture( Phillipe Descolar) 필립 데스콜라_자연과 문화의 저편

 

추천사

 

마셜 살린스(Marshall Sahlins)

 

많은 이들이 인류학이 그 초점을 잃었다고 할 때, 사람들의 문화적 결합상에 대한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파괴적 영향력과 병행해서 인간 조건의 다양성을 알기 위한 존재론적 범위와 보편적 비율에 대한 인류학의 전통적 연구에 대해 새로운 이론적 틀을 제시하는 필립 데스콜라의 주목할 만한 책이 나왔다.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데스콜라의 교수의 자리를 만들었던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는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E.B.Tylor)라든가, 루이스 핸리 모건(Lewis Henry Morgan), 제임스 프레이저(James Frazer), 레드클리프 브라운(A.R.Radcliffe-Brown),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 그리고 알프레드 크뢰버(A.L.Kroeber)처럼 오래전에 사라졌고 점차로 잊히는 인류학의 선조들과 같은 이 학문에서의 위대한 시대 사상가들 중 최후인 듯 보였다. 방대한 민족지적 지식을 갖고서 큰 지리학적 범위의 세대들 비교하기를 제안하고 지적인 야망에 맞추기도 하면서 저 유명한 라틴어 경구인 감히 알려고 하라의 도전에 응할 수 있는 학자들이 있다. 이것은 자연과 문화에 대한 서양의 근본적인 대립을 상대화하고 초월하려는 목적으로 이름 붙여지고 일찍이 저자가 지닌 프로젝트의 범위를 공표해버린 자연과 문화의 저편이 있기 전까지의 역사처럼 보였다. 실로 데스콜라 교수는 단지 전대륙의 인류학뿐만 아니라 방대한 철학적 지식도 모았는데, 우리 서양인들도 또한 타자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라이프니츠, 스피노자 혹은 푸코가 때때로 학술적 대화자라기보다는 원주민의 범주 속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계몽주의의 본고장인 프랑스에서 이 거대한 지적 종합은 지금 북미에서 나타나듯 특별하고 예상 밖의 것처럼은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데스콜라 교수의 작업이 불러일으킨 창의적인 영향에 감사하기 위해 장면을 요약적으로 세팅하는 것이 필요하다. 1950년대 이후 다양하고 비밀스러운 문화적 특이성에 대한 북아메리카 인류학자들의 관심이 증가하면서 인류학자들의 수도 많이 증가하였다. 그렇게 지난 몇 년 동안 이스라엘에서 허머스의 과도한 섭취, 미국의 지방과의 전쟁에 대한 생명정치학, 포스트사회주의자 알바니아스의 피라미드 구조, 브라질 힙합과 지역 라디오에서 보여주는 공간성, 지젝의 고향에서의 점유하자 운동(Occupy Movement)과 꿀벌의 새로운 용도에 대한 (동료 학자들의 심사를 거쳐 게재가 승인된) 논문이 저명한 미국 인류학 저널에 등장하였다. 우리는 요르단 고등학교에서 신념과 권위에 관한 연구, 그리스 정신의학의 기만과 친밀성, 캠퍼스 지속가능한 음식 프로젝트, 종교적인 이스라엘 여성들의 2006년 레바논 전쟁에 대한 반응, 북캐롤리나 돼지농장의 로컬 브랜드, 포스트소셜리스트의 이민과 북서 시카고의 슬로우 커피 운동에서 배웠다. (최근에 가나의 관세 공무원들에 대한 인류학 강의를 들을 때, 가나에서 풍습을 공부했었던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마치 인류학이 데스콜라 교수가 유비론으로 부르는 존재론으로 되돌아간 듯하며, 중세 유럽과 르네상스 시대는 존재론의 중요한 배경이다. 이때는 존재의 거대한 사슬처럼 작동하는 강력한 위계적 원칙에 의해 혼란스럽게 파편이 될 잠재성이 감소하여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많은 차이점이 최소화되었던 세계였지만, 다양성 그 자체는 이질적인 성격의 현상들과 등록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에 대한 일시적인(ad-hoc) 발견으로 이어졌다. 호두와 뇌의 비슷한 생김새를 창조의 순간에 신이 남긴 서명이라는 가정하에 편두통 치료에 호두를 사용하는 것은 현재의 기능주의자들이 다양한 인류학적 세부 사항이 패권(헤게모니적 권력)이나 신자유주의 자본과 같은 총체적 환경에 기인한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전히, 포스트모던의 해체주의 흐름의 문화적인 잔재로서 어떻게든 반구조적 테러를 피했던 유일한 전체적인 이야기(narrative)’로 자본주의의 세계적 지배 외에는 다른 설명을 찾을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논쟁적인 담론과 침투 가능한 경계와 같은 대중적인 개념을 지지하는 필수화된 범주 및 관계에 대한 비판은 문화 조사의 선호하는 결론으로 불확실성이 되게 하였다. 게다가, 특정 정치학적인 경향은, 우파와 좌파 모두에게서 지배적인 구조를 정당화하며, 개인주의의 특권과 집단 질서에 대한 일반적인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신자유주의, 인종 차별, 성 불평등, 동성애 혐오, 3 세계 억압에 대항하는 다양한 해방 운동 같은 인식론적 무정부 상태를 부추겼다. 요컨대, 우리는 반구조적 시대를 지나고 있다.

자연과 문화의 저편 현재의 인류학적 궤적에서 급진적인 변화를 제안한다. 패러다임의 전환, 당신이 원한다면 앞서 인류학자들이 생산하는 화합물과 무엇인 존재론의 요소들을 행성표로 이르게 하는지에 대한 분석적 혼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화학적 은유는 저자 자신의 취향이다.) 이 프로젝트는 존재론의 비교 인류학이다. 광범위한 분포의 네 가지 기본 존재론적 체제, 즉 애니미즘, 토테미즘, 유비주의, 자연주의는 인간과 다른 존재들 사이의 정체성과 차이점, 그리고 신체적 구성과 주관적 또는 정신적 능력의 문제에서 사물에 대한 조사로부터 개발된다. 이러한 각각의 주요 존재론은 사회적 집단과 특징적인 도덕성을 형성하는 구체적인 방법뿐만 아니라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는 독특한 방식과 관련이 있다. 또한, 주요 존재론적 배치는 교환, 포식, 생산 등 여러 유형의 관계에 의해 교차 단절되며, 이들은 다양하게 양립 가능하거나 양립할 수 없다. 이러한 것은 일반적인 건축물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이것은 본문의 풍부함에 반하는 것으로, 이는 아마존의 아추아르(Achuar) 사이의 저자 자신의 현장 조사에서 많은 것을 포함하여 신중하게 묘사되고 분석된 민족지적인 실증으로 드러난다. 이 신랄한 묘사가 데스콜라 교수의 프로젝트에 대해 결실 있는 약속으로 이르게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이 책의 초판본이 나온 이후로, 그는 파리의 케 브랑리 박물관(Musée du quai Branly)에서 인상적인 설치물 안에서 시각적 이미지의 형태로 네 가지 체계로 발표에 올랐었다. 그러나 자연과 문화의 저편의 혁신적인 특징은 아마도 데스콜라 교수가 문화에 대해 우리 자신의 자연 감각의 보편적 관련성을 부인하는 함의, 그리고 17세기에 자연주의에 있어 서구가 트로피를 차지했던 문화에 추정적으로 대조하는 것을 거부하는 함의로 여기에 표현되는데, 예를 들자면, ‘자연적인영역이 정신없고 비인간적인 실물 주체로만 구성된 그렇게 감각이 없는 사람들을 향해 우리의 초자연적인개념이 의미 있을 수 있을까? 사실상, 데스콜라 교수는 다른 사람들의 세계가 우리 주위를 돌지 않는다는 네오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분명히 밝힌다.

대신, 훌륭한 인류학은 그들의 주의를 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이름을 고치는 것보다 더 많은 무언가가 수반된다. 혼령들, 의식들, 언어, 그리고 문화와 같이 그들이 가진 것과 같이 즉 다른 말로, 그들 스스로 살아가는 인간들과 함께 식물들, 동물들, 그리고 다른 것들(다시 말하면, 대상)에 의해 살고 있는 애니미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비교를 통한 데스콜라 교수의 생산에 대한 우리의 개념에 바친 빛나는 페이지들의 이론적인 결과들을 고려하라. 우리의 자연주의적인 어떤 사물의 감각에 의하면, 생산은 그가 말한 것처럼 창조의 영웅적 모델이다. 자율적인 주체에 의해서 신이든, 인간이든 자율적인 주체는 어떤 과정에 계획이 있고 미리 정해진 목적에 의해 불활성 물질에 형태를 부과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런 행동 계획은 뿌리 깊은 개인주의와 자연주의적 유물주의의 결합이다. 이런 개념이 두 개의 상호의존적인 전제를 깔고 있다.: 존재 및 사물의 미래 원인으로서 개별화된 의도적인 에이전트의 우위성. 그리고 창조자의 존재론적 상태 지위와 그 창조자가 생산한 것에 생산물의 존재론적 지위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생산을 사회 질서의 주요 결정 조건과 역사적 변화의 역동적인 힘으로 이론화하는 것은 우리 중 마르크스주의자들만이 아니다. 또한 우리는 어린이, 예술, 지식, 제도 등을 생산하기 때문에 그 아이디어를 경제적 문제나 자연과의 관계에 국한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마존의 아르추아인들에게 식물은 그들을 기르는 여자의 자식이고, 동물은 그들을 사냥하는 남자의 처남이다. 여기서 사냥은 보답하고, 구슬리고, 현혹하고, 양육하고, 유혹하고, 존중하고, 약속하고, 또는 다른 방식으로 협상하는 방법으로 사냥꾼이 동물의 인척 관계를 세우고 그의 사람들의 존재를 제공하는 사회적 관계이다. 외부로부터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냥은 실로 결혼이랑 같다. 더욱 그러한 것은 사냥꾼이 동물의 살만 획득되고, 그 동물을 존경스럽게 처리하고 처남의 되는 사냥한 동물의 영혼을 보존함으로써 사냥꾼은 다른 종을 낳을 수 있게 해주었으므로 더욱 그러하다. 또한 아마존에서는 종종 아내와 아이들을 훔쳐 오는데, 그런 방식의 식구를 데려오는 것과 다르다. 이것이야말로 물질적 생산성에 국한되지 않는 사고에서 발생하는 인류학적으로 비옥하다. 데스콜라 교수의 대규모 도식(scheme)을 비교했는데. 어떤 도식은 옛날 사람들에 대한 모델에 대한 구도를 그리고, 그런데도, 미네르바 부엉이가 해 질 녘에 날개를 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새로운 인류학적 새벽으로 앞으로 나가는 개념으로 이야기를 예고하는 것이 샹테클레르, 르코갈루아라는 강력한 주장을 할 수 있다 

한마디 붙이면, 재닛 로이드의 훌륭한 번역에 대해서도요

이 번역가가 데스콜라 교수의 복잡한 생각을 명확하게 보여줄 뿐 아니라, 어떤 매직을 발휘하여 갈리아적인 목소리를 영어의 산문에 보존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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