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한강

[채식주의자] 몸 그리고 고통의 사슬

작성자
남연아
작성일
2024-11-25 17:21
조회
51

몸 그리고 고통의 사슬

  우리는 몸을 가지고 태어난다. 20년 동안 우리의 몸이 성장할 때 우리는 몸의 형태에 대해 많은 말을 하고, 듣는다. 어른들은 오랜만에 본 아이들을 보고 이런 말을 던진다. “키가 너무 많이 컸다.” “어머 살이 왜 이렇게 쪘어?” 몸에 대한 이런 말에는 ‘잘 먹어야 한다’라는 기본 조건이 깔려있다. 살이 쪄도 성장기에는 키로 갈 거라면서 일단 잘 먹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요즘에는 여자 청소년들의 거식증도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성장기의 목표는 일단 몸이 커지는 것이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인간의 몸이 무엇으로 구성되는지 깨달아가는 영혜를 보여준다. 소설은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남편, 형부, 언니의 시점으로 어느 날 느닷없이 채식을 시작하며 점점 음식을 거부하는 영혜를 바라본다.

  1부는 육식으로 인한 폭력과 고통의 사슬을 보여준다. 영혜는 꿈(무의식)을 통해 수많은 목숨과 핏덩이들로 자신의 몸이 이뤄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후로 영혜는 육식을 거부한다. 고기를 먹어 수많은 목숨들이 희생되었고, 명치에 끈질기게 많은 목숨들이 붙어있어서 고통스러워한다. 영혜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당했다. 이런 폭력이 영향을 미친 건지 영혜의 성격은 말수가 없었다. 자신이 피해자임을 받아드리면서 살았을 것이다. 꿈속에서 숲속에 고깃덩어리가 여기저기 걸려있고, 흰색 옷에 피가 묻힌 채 도망갔던 영혜는 그 순간 자신이 폭력의 가해자였음을 알고 고통스러워했다. 채식으로 폭력을 거부했지만,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는 아버지의 폭력을 다시 마주해야 했고, 결국 자신의 팔목을 그어 스스로에게 폭력을 가했다.

  육식만 멈춘다면 꿈을 안 꿀 줄 알았지만, 여전히 영혜는 꿈속에서 괴로워했다. 육식과는 반대편에 있는 두 가지 모티프가 나오며 영혜는 꿈에서 조금 벗어난다. 하나는 나무와 꽃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이다. 형부의 비디오 예술 작품을 위해 영혜의 몸에 커다란 꽃이 그려진다. 영혜는 촬영이 끝난 후에도 그 꽃을 지우지 않는 이유는 바로 ‘꿈을 꾸지 않아서’였다. 자기 몸이 꽃이 된 후에 꿈을 꾸지 않았고, 영혜가 정신병원에 들어가서 어떠한 음식도 거부하는 것과도 연결된다. 어떠한 음식도 거부하고, 물과 햇빛으로 살아나고자 한다. 동물에서 나무로 변화하고 있었고 그 사실을 언니에게 말하면서 영혜는 처음으로 큭큭 소리내어 웃는다. 목과 코로 들어오는 미음을 필사적으로 먹어내는 영혜는 나무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영혜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앙상한 몸이 되었을 때 주변 사람들이 그녀의 몸이 ‘아이’ 같다고 말한다. 나무가 되어가는 몸은 아이로 돌아가는 것이다. 형부가 영혜의 몸을 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바로 아직 영혜에게 몽고반점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이다. 몽고반점은 자라면서 사라지지만, 영혜는 언제든 아이로 돌아갈 수 있는 뿌리가 있었다. 소설에서 유일하게 나오는 아이는 영혜의 조카이자 인혜의 아이인 지우이다. 인혜는 영혜가 고통스럽게 모든 음식을 거부하는 것을 보면서 지우를 생각한다. 지우가 아니었다면 삶의 끈을 놓쳐버렸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지우가 그 끈을 잡아주는 이유는 혼돈이었다. 어떤 고통 속에서도 있어도 자신을 웃게 하는 아이의 존재는 가장 약하지만 동시에 끈질긴 생명력을 상징한다.

  식물과 아이가 육식과 반대편에 있지만, 그 둘의 세계가 평화로운 것은 아니다. 인혜가 보았던 나무의 모습은 무자비하고, 무섭고, 서늘한 생명의 말이었다.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짐승들처럼, 완강하고 삼엄하게 온몸을 버티고 서있을 뿐이었다.” (한강,  『채식주의자』, 창비, 248쪽) 아이 또한 쉽게 버리려 했다는 잔인함과 무책임의 죄를 가져다주는 존재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고통 3부작이라고 말했다. 아이가 되어가는 나무가 되어가는 고통을 이렇게 묘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에게 육식은 당연하고, 배부르게 먹는다. 인간에게 잊힌 먹는 것과 숨 쉬는 것의 고통을 나무가 되어가는 영혜의 몸을 통해 보여준다. 몸에 붙어 있는 먹이와 숨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해준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