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채식주의자] 눈과 입, 그리고 윤리
눈과 입, 그리고 윤리
『채식주의자』에 나온 눈과 입이 하는 일을 살펴 보고, 작품의 윤리적 요구를 해석해 본다.
응시하는 눈
영혜는 잠을 못 잔다. 날고기 수백 개가 헛간에 매달린 꿈을 꾼 후로 불면증으로 말라간다. 일시적으로 잠이 들면 다시 꿈을 꾼다. 감은 눈으로도 무엇인가를 보고 있는 것이다.
영혜의 눈은 무엇인가를 계속 응시한다. 고기 먹기를 거부하는 영혜는 고기를 먹는 타인들의 얼굴을 응시한다. 이것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눈을 뜬다는 것은 외면하고 무시해온 것들을 의식한다는 의미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두고 괜찮다고 넘길 수 있는 것을 남겨 두지 않는다. 영혜는 냉장고 속에 넣어둔 고기들을 모두 꺼낸다. 삼켰으되 소화되지 않고 명치에 걸려 있는 “목숨들”에 대해 의식한다.
영혜의 각성은 텅빈 시선과 광증으로 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뱃속에 억눌러 둔 것들이 “얼굴”이 되어 밀고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자기가 삼킨 것에 의해 삼켜진다.
입의 기능
입은 문이다. 무엇인가를 삼키기도 하고 뱉기도 한다. 입으로 먹어 없애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는 것을 꺼내어 표현하기도 한다. 영혜는 삼켰으나 소화되지 않고 걸려 있는 무엇인가를 꺼내야 했는데, 그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자기를 물고 죽임을 당하는 개의 눈길인지, 그 개를 먹고 괜찮다고 생각했던 마음인지, 아파트를 분양 받기 위해 임신을 미루는 삶의 우선 순위에 대한 것인지 알아보려면 일단은 해오던 방식들을 멈추어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혜에게 계속 “먹어!”라고 명령하면서 입에 고기를 쑤셔 넣는다.
말을 하려면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런데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식별되지 않는다. 음식으로 채워진 입 속에서 소리는 뭉개져 신음이나 비명으로 나온다. 영혜의 생각은 알아들을 수 없고, 이해되지 않는다. 부모, 형제, 부부 관계가 고립되고 막힌다. 영혜의 입은 말 대신, 먹은 것을 게워 내고, 피를 토한다.
깨어나 말하라
작품의 윤리적 요구를 해석해볼 수 있을까? 고립, 불면, 거식, 포르노그래피, 광증, 죽음 충동, 난무하는 피로 표현되는 잔혹한 장면들 안에 어떤 윤리가 담겨 있을까? 그것은, 깨어나 말하라는 명령이 아닐까 한다.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현상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것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는 것 같다. 멈춰서 눈을 뜨고, 말을 만들어 표현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를 회복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영혼이 멈추라고 외친다
영혜는 남편과 부모에게서 버려진다.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도시 외곽의 정신 병원에 감금된다. 언니 인혜가 영혜를 입원시키고 병원비를 대준다. 인혜는 결혼 생활을 끝냈고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사실 인혜 부부는 삶의 무의미 앞에서 공포에 질린 채 일상에 끌려가던 중이었다.
인혜는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는 꿈을 꾸고 죽음에 강하게 이끌리며, 일종의 영혼 각성 상태에 도달한다. 동생 영혜의 사그러져가는 육체 너머로 영혼이 콘크리트를 뚫고 흙과 하늘로 크고 강력하게 뻗어 물과 빛을 흡수해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을 본다.
인혜는 샤먼이 된 것 같다. 그동안 영혜가 끊임없이 외쳤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은 말을, 인혜가 외친다. “그만! 하지 마! 하지 마세요!” 인혜의 입에서 타인과 자기 말이 함께 발화한다. 그의 “어둡고 끈질”긴 눈길은 영혼의 세계로 열리고, 불꽃처럼 일렁이는 초록빛의 나무들의 생명을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