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왜란) 돌(아보기) 코너>에서는 허남린 선생님께서 최근 푸~욱 빠져계시는 임진왜란 연구의 경험, 쟁점, 즐거움 등에 대한 산문을 격월로 게재합니다. 허남린 선생님은 캐나다 UBC(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아시아학과에서 일본사를 가르치고 계시며, 현재 인문세에서 일본 철학과 조선 연행사 세미나를 이끌어주시고 계십니다. 쓰신 책으로는 『조선시대 속의 일본』, 『처음 읽는 정유재란 1597』, 『두 조선의 여성:신체·언어·심성』, 『Prayer and Play in Late Tokugawa Japan』, 『Death and Social Order in Tokugawa Japan』이 있습니다.
전란의 기아와 권력
전란의 기아와 권력
허남린 선생님(캐나다 UBC 아시아학과 교수)
왜적이 쳐들어오자 하루 아침에 나라가 풍비박산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양쪽의 숫자만 보아도 뻔했다. 왜적의 군세는 10만을 훌쩍 넘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워야 하는 조선의 군세는 많아야 2~3만 명 정도였다. 그것도 모아 놓으면 먹을 것을 주지 않으니 흩어져 버리기 일쑤였다.
절대적 열세인데, 여기에 가지고 싸우는 무기는 활과 총의 대결이었다. 조선의 주무기는 활이었고, 왜적은 철포 혹은 조총이라 불린 총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그 총의 성능은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원시적이지만 당시에는 최신예 병기로 무적이었다. 싸움은 밀고 밀리면서 전개되어야 정상인데, 들고 싸워야 할 무기가 이렇다 보니 조선의 군사는 속절없이 밀리고 말았다.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줄 군대가 흩어져 버리고, 관리들이 줄행랑을 치자 인민들은 곳곳에서 분노했다. 그들의 분노는 관청으로 향했고, 몇몇 곳에서는 관가를 불태우고, 창고를 털었다. 국왕 선조가 어둠이 가시기도 전에 궁궐을 빠져 북으로 사라지자 궁궐은 불길에 휩싸였다. 아직 왜적이 서울에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노비 호적을 보관했던 관사가 제일 먼저 불에 탔고, 곧이어 경복궁도 잿더미로 화했다. 서울은 다른 지역보다 노비의 비중이 월등히 높은 곳이었다.
왜적이 침입하는 곳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했다. 목숨보다 귀한 것이 무엇이 있으랴. 발이 빠른 사람들은 산속으로 피난을 떠나고, 연고가 있는 사람들은 안전한 곳을 찾아 사방으로 흩어져 갔다. 피난의 시기를 놓친 사람들과 도망갈 힘이 없는 사람들은 그대로 남아 왜적의 칼날에 목숨을 맡겨야 했다. 살기 위한 부역은 여기저기 있었다. 왜적이 진주한 지역은 더더욱 그러했다.
양반들을 피난처로 나른 사람들은 노비들이었다. 가마에 태우고 혹은 업고 산비탈을 오르고 넘어지며 계곡물을 건넜다. 이들을 위해 식량을 나른 인력도 노비들이었다. 좀 힘 있다 싶은 양반 집은 노비의 수가 수 백 명에 이르기도 했다. “주인님” 식솔의 손발이 되어 전선을 넘나 들며 소식을 전하고 생필품을 지고 나르다 잡히면 죽임을 당했다. 당시에는 주인님을 섬기다 죽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파죽지세인 왜적에게는 그러나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먹을 것을 배로 실어 부산까지는 갖고 왔는데, 이를 북상하는 군대를 따라 조선의 내륙으로 운반할 길이 없었다. 어깨에 메고 말에 실어도 그 무거운 대량의 곡식을 나를 수가 없었다. 여기에 조선의 곡식은 여기저기 방치되어 있었다. 방어할 병사들이 다 도망갔으니 관가의 창고에 쌓여 있는 곡식은 온전히 왜적의 손에 떨어졌다. 자신들이 갖고 온 군량을 운반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왜적은 조선의 곡식을 먹으며 조선인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조선 인민들은 자신들의 식량을 강탈당하고 살육의 위험에 처했다. 살아 남으려면 왜적과 싸워야 했다. 조선 인민들은 굶어 죽느니 죽더라도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왕을 위해 싸웠다고 나중에 분식했지만, 그들의 싸움은 도망간 국왕과는 관계없었다.
여기에 나중에 명군이 들어와 왜적과 싸웠다. 명군도 군량을 의주까지는 실어 왔지만, 전선을 따라 이를 운반하지 못했다. 명군 나아가 명이라는 나라의 한계였다. 군병을 모집해 보내기는 했어도 이들을 먹일 식량을 산길을 넘고 강을 건너 배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조선 인민에게 군량의 운반을 강제했지만, 이미 배 곪고 지칠 대로 지친 그들은 명군의 군량 수요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방법이 없자 명군도 조선의 곡식을 먹기 시작했다. 조선의 곡식에 손을 대는 엄청난 수의 외부 집단이 둘이나 더 생겨난 것이다. 왜적과 명군이었다.
왜적은 전국으로 퍼져 나가며 많은 조선 인민을 학살했다. 남은 자들은 죽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갔다. 이들 대부분은 농민들이었다. 농사지을 사람들은 급감했고, 농토는 황폐화되었다. 농사가 줄어들자 곡식의 생산은 급감했다. 얼마 남지 않은 곡식을 서로 먹겠다는 입은 왜적과 명군이 가담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공급과 수요의 균형이 완전히 깨져 버렸다.
먹을 것을 둘러싼 싸움은 절실함을 더해갔다. 이러한 싸움에서 우위에 서는 자들은 무기를 갖고 있는 군대였다. 왜적은 조총으로 곡식을 강탈하고, 명군은 조선 정부의 목을 누르며 군량을 대라고 윽박질렀다. 패자는 언제나 힘없는 조선의 인민들이었다. 전쟁은 기아를 의미했고,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몸은 질병을 불렀다. 임진왜란은 식량을 둘러싼 처절한 생존의 기억으로 메워져 갔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식량이라는 교훈은 뼛속 깊이 스며들었다.
전쟁이 끝난 후, 조선의 지배층이 가장 힘을 기울인 것은 토지의 집적이었다. 그들도 배를 곯고 고통의 긴 터널을 지나와야 했다. 먹을 것이 없으면 죽는다. 먹을 것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먹을 것은 땅에서 나온다. 다른 것은 몰라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땅을 많이 차지해야 한다. 생사를 오갔던 전시의 경험은 뭐니 뭐니 해도 땅밖에 없다고 인간의 뇌는 이러한 천리를 각인했다.
전후의 토지 집적은 전쟁 전보다 쉬웠다. 주인 없는 땅이 널려 있었고, 풀숲에 묻혀버린 토지도 널려 있었고, 싼값으로 살 수 있는 땅도 널려 있었다. 지배층은 권력에 줄을 대고, 법을 능란하게 다뤘다. 이렇게 해서 도망갔다 돌아온 힘 있는 자들은 토지를 집적해 갔다. 겨우 살아남은 힘 없는 자들은 사방에서 옥죄어 오는 힘에 가난의 주변으로 밀려났다. 왜적의 침입을 극복한 전후의 조선은 땅 소유의 권력판이 되어 버렸다. 권력의, 권력에 의한, 권력을 위한 소수의 부와 다수의 빈이 이렇게 해서 심화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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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moonse | 2024.06.21 | 0 | 303 |
전쟁 중에도 후에도 백성의 굶주림은 안중에도 없이, 지배층은 자신들의 권력 지키기에만 전전긍긍이군요.
당장 눈 앞에 놓인 먹거리를 해결해야만 하는 현실에 그들에 대한 분노조차 품기 어려웠을 농민과 노비의 삶이 선하게 그려져 마음 한구석이 아립니다.
아찔할 정도로 전쟁의 풍경이 끔찍하게 그려집니다. 쌀을 놓고 일어난 다툼에 불과할 수도 있는 일을. 누구를 굶길 것인가의 문제가 되어버린 참상에 숙연해지고요. 생생한 임진왜란 이야기 너무 감사합니다 선생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