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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 Ivan Dominic Illich

공생의 삶을 생각하다

 

[학교 없는 사회] 기대에서 희망으로

작성자
덕후
작성일
2024-07-11 00:22
조회
191

기대에서 희망으로

 

이반 일리치는 인간이 스스로 만든 제도의 함정에 빠져 위험에 처했다고 주장하며 기대를 희망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원시인들에게는 희망의 세상이었는데 인간이 운명과 환경을 바꾸기 시작하면서 희망은 기대로 변했다는 것이다. 판도라의 신화에서 항아리에는 모든 재앙과 희망이 담겨 있었다. 원시인들에게 모든 재앙이 있음에도 희망의 세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의 선함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항아리 속 희망을 잊은 채 악에 맞서기 위해 제도를 만들고 환경을 바꾸고 사람들을 교육시키면서 기대를 상승시켰다. 그러나 기대는 좌절의 간격을 넓히고 개인의 선의에 의존하기보다 제도에 의존하게 만들며 인간의 의식을 퇴행시킨다. 이러한 기대를 희망으로 바꾸는 일은 에피메테우스적 인간을 만나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만든 제도에 의해 조작되고 제도가 창출한 가치에 의해 새로운 제도의 수요를 만들어 낸다. 인간은 도구의 도구로 전락했고 제도는 제도 자체와 우리 자신도 끝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제도화된 사회에서 가공된 인간은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을 위험한 것으로 여긴다. 인간의 가치는 제도의 산물을 소비하고 태워버리는 것으로 측정되고 끝없는 능력을 지닌 프로메테우스의 행위는 계속된다. 인간은 스스로 만든 지옥 같은 어둠 속에 갇히게 되었다.

이반 일리치는 이런 어둠 속에도 희망은 있다고 말한다. 지구적 환경의 균형을 찾기 위한 탈제도화가 그 답이다. 탈제도화는 더 많이 더 빠르게 앞으로만 달리며 가치를 제도화하던 프로메테우스적 오류 대신 지구라는 항아리를 통해 다시 희망을 만나는 것이다. 희망은 어둠 속에서 비밀스러운 세계를 지닌 친구를 만나는 것이다. 그는 지구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돌보고 기다리는 에피메테우스적 인간이다. 그의 세계는 최고의 순간과 비통한 순간이 있는 그만의 세계다. 어리석은 실수나 실패, 기계의 고장이나 빈둥거리기를 통해 시적 경이를 경험할 수 있는 세계다. 희망은 기대와 달리 계획하고 계산할 수 없다. 통제할 수 없고 예측하거나 강요할 수도 없다. 희망은 자연의 선함을 믿고 우리가 바라는 선물을 가져올 에피메테우스적 인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를 가두는 기만의 상자 대신 지구의 유한성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지닌 친구는 어둠 속에서도 우리를 흥미롭고 경이로운 세계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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