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 Ivan Dominic Illich
공생의 삶을 생각하다
[학교 없는 사회] 에피메테우스의 희망
에피메테우스의 희망
이반 일리치는 『학교 없는 사회』에서 퇴행하는 사회를 구할 방법으로 에피메테우스적 인간상을 제시한다. 유사 이전에 대지의 여신이었던 판도라의 신화에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었지만 그리스 고전기 이후 판도라가 재앙을 일으킨 것으로 각색되면서 사람들이 희망보다 기대에 의존하게 된 것을 퇴행이라 본 것이다. 이 퇴행은 탈 제도화를 통해 사려 깊은 인간을 부활시킴으로써 막을 수 있다고 한다. 대지의 여신과 결혼하여 필연을 긍정하는 에피메테우스처럼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우리 사회는 희망을 회복할 수 있다.
대지의 여신인 판도라의 세계는 갖가지 재앙도 있었지만 희망도 함께였다. 자연의 베풂에 의해 ‘이럭저럭 살아갈(subsist)’ 수 있는 곳이었으므로 사람들은 자연의 선함을 적극적으로 믿을 수 있었다. 이 세계에는 목적이 없었고 그에 따른 결핍도 불만족도 없었다.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일이 일어날 만 한 충만하고 필연적인 세계였으므로 자신들의 바람에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국가의 통치를 위해 제도를 만들어 교육하기 시작하자 세상에 희망은 사라지고 기대만 가득하게 되었다.
제도화된 사회는 요구와 결핍의 순환으로 갈증이 샘솟는 지옥으로 변했고 기대 속에서 사람들은 위기에 처했다. 판도라가 풀어 놓은 재앙에 맞서기 위해 만든 제도는 교육을 통해 프로메테우스적 인간을 만들어냈다. 프로메테우스는 앞을 보는 자로서 계획하고 실행하지만 바위에 쇠사슬로 묶이듯이 예측할 수 있는 결과만을 기대하는 습관에 묶였다. 목적을 이루는 것을 선으로 여기고 목적을 이룰 때까지 만족하지 못하는 프로메테우스 인간들은 불만족의 세상에서 불과 기술로 자신이 만든 것을 끊임없이 태워 없애면서도 무기력에 빠졌다.
이반 일리치는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 탈제도화 특히 탈학교화를 주장한다. 학교는 제도화된 가치로 신화를 만들어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중심적 제도이기 때문이다. 학교교육을 통해 희망보다 기대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서도 예상한 결과 외에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워졌다. 제도화된 가치에 의해 자기 삶을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대부분은 그 가치에 미치지 못하고 그럴 때 심리적 무능력을 느끼고 불행해진다. 탈학교화는 기대하고 좌절하는 제도에서 벗어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세상으로의 문을 열어준다.
탈학교화한 사회의 인간상으로 제시된 것은 판도라와 결혼한 에피메테우스다. ‘뒤를 보다’ 또는 ‘나중에 생각함’을 뜻하는 에피메테우스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프로메테우스와 달리 고전을 읽으며 전통과 지나온 것에서 배울 것을 찾는다. 그는 미래를 계획하지 않고 과거의 일들을 세심하게 살피는 사람이다. 목적론을 거절하는 그에게 세계는 경이롭고 흥미롭다. 세상의 모든 것과 만날 수 있고 결합할 수 있는 에피메테우스는 작고 소중한 순간을 놓치지 않으며 낯설고 우연한 만남을 기뻐한다. 삶을 제도가 만들어낸 가치와 상품으로 둘러싸는 대신 자연에서 지어진 시를 발견하고 사람과 사물의 모든 것에서 배우며 일군다.
이반 일리치가 말하는 희망은 바람을 가질 뿐 어떤 결과가 나오든 낙관할 수 있는 것이다. 판도라가 모든 재앙과 희망이 함께 담긴 항아리를 가져왔듯이 좋은 것만 골라서 갖기를 바라는 대신 모든 것을 긍정하며 받아들이는 것이다. 학교의 졸업장을 위해 공부하는 대신 작은 배움의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위해 사람을 만나고 사물을 만진다면, 그리고 어떤 결과가 와도 좌절하지 않고 기쁘게 배우기를 원한다면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다. 에피메테우스적 인간이 갖는 희망은 평범하지만 특별한 친구를 만나 함께 삶 주변에서 언제나 새로운 배울 것을 발견함으로써 다가올 미래를 맞이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