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이반 일리치 Ivan Dominic Illich

공생의 삶을 생각하다

 

[학교 없는 사회]에피메테우스적 인간으로 거듭나기

작성자
진진
작성일
2024-07-18 17:59
조회
139

 

 

에피메테우스적 인간으로 거듭나기

 

인간이 만든 기술과 문명은 세상의 많은 한계들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조작함으로써 삶을 변화시켜왔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인간은 더 나은 삶을 위한 힘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믿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이끌 힘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나보다 그 힘을 더 확고히 믿는 요즘 아이들이 무기력증에 빠져 있단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우리 집의 두 아이만 봐도 능동적으로 뭔가를 하는 일이 없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거나 해야 한다고 주어진 일 외에는 당최 뭔가를 하려고 들지 않는다. 나은 삶을 위한 힘이 내게 있고 그 힘으로 인해 삶은 분명히 나아졌는데, 우리의 삶은 왜 오히려 무력해졌으며 우리는 어떻게 그 무기력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이반 일리치는 학교 없는 사회에서 인간의 이 무능력이 학교화된 사회로부터 왔으며, 이 기저에 프로메테우스적 인간관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재앙과 희망이 뒤섞인 온갖 것들을 펼쳐놓는 판도라를 풀려나서는 안 될 고통과 악이 들어 있는 상자로 생각한다. 인간이 만든 제도를 통해 판도라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여기게 된 인간은 자신을 기술과 문명을 제작하는 자로 정의한다. 판도라의 상자를 마음대로 여닫을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은 대지를 인간의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여긴다. 학교화된 사회는 기술과 문명을 전수하고 유지시키는 제도에 오히려 온 몸이 묶인 채, 제도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만을 생산해내고 삶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이반 일리치는 학교화된 사회의 대안으로 탈학교화를 주장하며 에피메테우스적 인간관을 말한다.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형의 반대에도 판도라와 결혼한다. 에피메테우스에게 판도라는 자신이 태어난 세계이다. 그 결혼이 앞이 예측되지 않는 어둠으로 들어가는 길이라 해도 그는 그 대지에서만 다른 에피메테우스들을 만날 수 있기에 기꺼이 그곳으로 들어간다. 그곳에 있어야 할 것과 없어져야 할 것은 없으며, 그것들은 서로 분리될 수도 없다. 에피메테우스가 믿는 자연의 선함이란 이 어둠을 협력하여 헤쳐 나갈 수 있는 친구를 만나는 일이다.

프로메테우스적 인간은 스스로를 제도 속에 넣음으로써 삶을 계획하고 관리한다. 그 제도를 통해 삶을 예측함으로써 문제가 될 만한 싹을 애초에 제거해버린다. 그는 어느새 제도의 도구가 되고, 그런 그에게 재앙을 품고 있는 판도라와의 결혼은 고통과 악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반면, 에피메테우스는 이 대지를 자신의 삶의 조건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 그에게 이 바깥의 삶은 없다. 온갖 사물들이 넘쳐나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하는 이 조건에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뒤돌아보고 해석하는 일을 통해 그는 배우고 성장한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