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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 Ivan Dominic Illich

공생의 삶을 생각하다

 

[학교 없는 사회]활력 있는 삶

작성자
진진
작성일
2024-07-25 17:57
조회
138


활력 있는 삶

기술과 문명은 예측 불가능한 삶의 조건들을 인간에게 편리하고 유리하게 계획하고 조작함으로써 세상을 변화시켜왔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인간은 이제 이 세상을 이끌 힘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나보다 그 힘을 더 확고히 믿는 요즘 세대가 무기력증에 빠져 있단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우리 집의 두 아이만 봐도 시키지 않으면 뭔가를 하는 법이 없고, 주어진 일 외에는 당최 뭔가를 하려고 들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왜 우리는 오히려 활력을 잃고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을까? 이반 일리치는 삶을 계획하고 통제하는 학교화된 사회에서 인간은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이런 인간을 프로메테우스적 인간이라고 한다. 그는 활력 있는 삶을,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에피메테우스적 인간에서 발견한다.

이반 일리치는 학교 없는 사회에서 기대희망을 구분하며, 전자에 프로메테우스적 인간관이 후자에 에피메테우스적 인간관이 있다고 말한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프로메테우스는 재앙과 희망이 뒤섞인 온갖 것들을 펼쳐놓는 판도라 상자를 풀려나서는 안 될 고통과 악이 들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제도와 기술, 문명을 만들어 판도라를 통제하고자 했다. 다가올 삶 앞에 풀려나서는 안 되는 것들을 악으로 두고 그것을 여는 자 판도라를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자로 못박아 둔다. 학교화된사회는 이 심판자를 자기 삶 앞에 두고, 그것을 신화화해 교육하고 전수한다. 판도라 상자 안에서 있어야 할 것과 제거되어야 할 것이 이미 정해져 있고, 이 둘을 분리해낼 수 있다는 생각은 프로메테우스가 세상을 보는 방법이다. 학교화된 사회에서 인간은 판도라 상자 안의 희망을 볼 수 있는 눈이 가려진 채, 있어야 할 것만 고집하는 제도에 몸이 묶인 채 수동적 삶을 산다.

이반 일리치는 학교화된 사회의 대안으로 탈학교화를 주장하며 에피메테우스적 인간을 얘기한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형의 반대에도 판도라와 결혼한다. 에피메테우스에게 판도라는 자신이 태어난 세계이자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해야 할 존재이다. 온갖 것들을 풀어낼 판도라와의 결혼은 그 조건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곳에서 희망을 발견하겠다는 마음이다. 그에게 다른 세상은 없다. 그 결혼이 앞이 예측되지 않는 어둠으로 들어가는 길이라 해도 그는 기꺼이 그곳으로 들어간다. 그곳에 있어야 할 것과 없어져야 할 것은 없으며, 그것들은 서로 분리될 수도 없다. 이반 일리치는 희망이란, 바라는 선물을 가져올 사람에 대한 바람이라고 했다. 에피메테우스는 자신에게 벌어지는 온갖 일들에서 다른 에피메테우스를 본다. 그들과 함께 이 어둠을 헤쳐 나가며 절망하기도 하지만 그들에게서 자신과 같은 마음, 여기에서 희망을 발견하고자 하는 마음을 보는 것이다.

프로메테우스적 인간은 스스로를 제도 속에 넣음으로써 삶을 계획하고 관리한다. 그 제도를 통해 삶을 예측함으로써 문제가 될 만한 싹을 애초에 제거해버린다. 그는 어느새 유지해야 할 제도의 도구가 되고, 그의 삶은 제도가 요구하고 명령하는 것에 맹목적으로 끌려간다. 반면, 에피메테우스는 이 대지를 자신의 삶의 조건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 그에게 이 바깥의 삶은 없다. 온갖 사물들이 넘쳐나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하는 이 조건에서 그는 미리 계산하고 예측해서 있어야 할 사건을 계획하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을 제거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뒤돌아보고 해석하는 일을 통해 그는 배우고 성장한다. 배울 것들이 넘쳐나는 삶의 조건 속에서 그의 삶은 활기 있어진다.

나는 사회가 해야 한다고 하는 것들을 할 것들을 많이 알고, 가장 빠르다고 하는 방법에 대한 정보로 계획을 세우고 일이 착착 진행되는 것을 의욕 넘치고 활기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해야 할 일과 읽어야 할 책, 스케줄을 내가 정하고 그대로 따르게 하며, 일이 계획대로 잘 진행되었을 때, 그날 하루를 활기차게 보냈다고 생각하며 뿌듯해했다. 그런데, 이반 일리치 세미나를 마무리하며 활력 있는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에 의하면 활력 있는 삶이란 내가 처한 상황과 내게 벌어지는 일을 해석하며 수시로 바뀌는 있어야 할 것과 해야 할 일을 가져가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내 삶은 활기 있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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