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 Ivan Dominic Illich
공생의 삶을 생각하다
[젠더] 4장 젠더와 친족관계
4장 토박이 문화 속의 젠더
젠더와 친족관계
토박이 문화 속에서 젠더는 공간, 시간, 기술을 나누는 일이었다. 젠더가 살아 있는 세계에서 친족은 젠더를 가진 사람들 사이의 결합을 가리키고 친족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누가 누구에 대해 어떤 관계를 갖는지 규칙을 세우는 일이다. 토박이 문화에서는 각 젠더의 생산물이나 부역, 지대, 교역, 수공업, 기억에도 모두 젠더의 경계가 그어져 있었다. 그러나 상품집약적인 산업사회가 등장하면서 결혼이 의미하는 혼인 상태는 두 개인을 부부라는 경제 단위로 묶는 의식으로 사용되었다. 친족 관계에서 젠더가 사라지고 젠더 구분이 사라진 가정의 노동은 임금 노동과 그림자 노동으로 구분 되었다. 이러한 경제적 분업은 남녀 성 특징에 맞춰 차별적으로 배당되었다. 19세기 유럽의 경제는 젠더가 무너진 가정 즉 경제적 구분만 있고 성적으로만 결합된 부부에 의존하여 지탱되었다. 공간, 시간, 기술을 구분하며 상보성을 지닌 토박이 문화 속의 젠더가 사라지고 친족관계는 경제적 성만 남은 부부라는 생산 단위를 통해 성적 충동만을 부각시키게 되었다.
————
젠더와 도구
–젠더에 따른 도구가 구분되어 있었다.
–도구와 젠더를 이어주는 끈이 끊어지는 시대가 왔다. (92)
젠더, 지대, 상업, 수공업
–원시적 삶은 젠더로 나뉜 도구 위에서 유지되었다.
–자급자족적 경제로 살아가는 곳이라면 언제나 젠더가 있었다.
–상품집약적인 산업사회가 등장하면서 젠더의 상실이 나타났다.(94)
–중세에 지대는 잉여생산물(교환 가능한 재화)로 낼 수 있었는데 이들의 다른 활동을 ‘생산’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오늘날 ‘생산’은 가치를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옮기거나 소모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생산과 소비의 기능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다는 점이 자급자족을 근대 경제와 구분하는 뚜렷한 특징
–남자와 여자의 능력은 섞일 수 없고 그 둘을 통일할 공통분모도 없다.(95)
–생산물이나 부역, 지대, 교역, 수공업, 기억에도 모두 젠더의 경계가 그어져 있었다.
젠더와 친족
#친족: 젠더 구분을 가로질러 상대에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들(99)
#친족관계:
–남녀 간의 상보성을 통해 젠더 영역을 형성한다
–서로 관계를 맺는 두 개의 젠더를 전제로 한다.
#친족관계를 맺는다: 누가 누구에 대해 어떤 관계를 갖는지의 규칙을 세우는 일
#젠더: 단순히 누가 누구인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도구와 어떤 말을 쓰는 사람인지를 정의하는 것. 공간, 시간, 기술을 나누는 일.
–친족관계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구조주의 방법론처럼 우주적 이원성의 한 현상으로 환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젠더와 결혼
#결혼:
1. 축하잔치와 혼인의례, 2. 혼인한 상태 자체
=>두 개인을 부부라는 경제 단위로 묶는 의식
=>두 개의 젠더 그물망을 하나로 묶는 일이 두 개인을 세금 징수 단위로 용접하는 일로 바뀜(93)
–일상 생활이나 작업은 여전히 젠더 구분이 있었으나 부부가 과세의 기본 단위가 되자 남자가 가구 대표자가 되어 지대를 지불했다. 지대가 화폐로 바뀌고 지역의 통화가 국가 통화로 바뀌자 부부는 다루기 쉬운 생산 단위가 되었다. 국가와 교회가 새 젠더 기능을 부여하며 남녀의 영역을 규정했다.
-19세기 초까지 경제는 젠더가 무너진 가정에 의존하여 지탱되었으나 여전히 노동은 젠더별로 갈라져 있었다.
-19세기 이후 가구 단위의 노동이 젠더 구분에서 임금 노동과 그림자 노동이라는 경제적 분업으로 바뀌었다. 두 노동은 새로 발견된 남녀 성 특징에 맞춰 차별적으로 배당되었다.
#젠더의 붕괴: 19세기 유럽은 토착적 자급자족으로부터 경제적 성이 지배하는 시대로 이행되었고 경제적 구분만 있고 젠더는 없이 성적으로 결합한 부부가 산업 생산의 토대가 되었다. 이후 인류학자들은 이런 부부를 기준으로 ‘성적 충동(libido)의 구조와 감각’을 찾았다. (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