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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 Ivan Dominic Illich

공생의 삶을 생각하다

 

[학교 없는 사회]새로운 학습 네트워크

작성자
진진
작성일
2024-07-04 17:57
조회
65

새로운 학습 네트워크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 배우면서 성장한다. 이는 그 배움과 성장을 무엇으로 정의하든 모두가 동의하는 사실이고, 이반 일리치는 이러한 측면에서 인간을 학생(學生), 즉 배우는 사람으로 본다. 그는 배움을 통해 진정한 인간이 된다는 도덕이 제도화된 학교와 결합되고 자본이 이를 뒷받침할 때 배움이 수동적이 된다고 한다. ‘학교화된 사회에서는 배움이 학교라는 제도에서 선생님이라는 공인된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전문화된 교육자료에 의해 단계를 밟아 올라감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자율적이고 자발적으로 실현되어야 할 배움이 학교화된 사회에서는 제도를 소비하는 일에 묶이게 된다. 학교화된 사회에서는 배움뿐만 아니라 건강, 안전과 같은 가치 실현을, 그에 최적화된 서비스를 이용으로 오해하게 된다.

이반 일리치는 배움이란 모든 사람이 배움에 필요한 자원에 마음껏 접근할 수 있도록 학습의 경로를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하고 학습 교류의 기회를 모두에게 동등하게 열어놓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배움에 필요한 네 가지 자원, 즉 사물, 모델, 친구, 연장자가 학교라는 제도에 의해 정의되거나 그 문턱을 넘어설 수 있는 이들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누구나 마음껏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학습 네크워크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는 학교에서 교육자료, 선생님, 학우(學友), 교육전문가로 대변되는 사물, 모델, 친구, 연장자에 대한 문턱을 낮추고 그 접근을 용이하게 해야 한다고 한다.

그는 1장에서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끼리 그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도록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를 열어주는 네트워크나 서비스를 예로 들며, ‘문화대혁명이라는 주제를 공통으로 하기보다 마오쩌둥이 쓴 글서로 도와 이해하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이 만나는 것을 말했다. 이 문제는 배움의 자원 중 친구의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둘은 어떤 측면에서 다르게 이해되는 걸까?

기술 모델로서의 교사의 경우 과거의 이력이 아닌 그 기술을 가르침에 있어 현재의 기술적 측면만을 평가해야 한다고 이반 일리치는 말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가나 보상으로 크레디트 지급이나 인센티브와 같은 혜택을 제시하며, 일정 기간 이상 누군가를 가르친 사람에게는 더 상급의 교사로 일할 자격 부여할 수 있고 교육을 공유함으로 자격을 얻게 엘리트를 언급한다. 엘리트나 상급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아 그는 위계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새로운 학습 네트워크를 통한 위계는 기존 학교화된 사회의 위계와 어떻게 다를까?

가치 실현을 제도에 의존하지 않고,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 안에서 개인이 자율적이고 자발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가치 실현은 지금의 수동적인 사회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인지 생각만 해도 어깨가 무겁고 가슴이 답답한 게 솔직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반 일리치는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나 또한 그 실천의 버거움 때문이지 그의 말에 공감이 안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 힘겨움에도 불구하고 탈학교화를 해야 하는 걸까? 탈학교화를 함으로써 얻게 되는 자율과 공생이 있는 사회는 왜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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