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 Ivan Dominic Illich
공생의 삶을 생각하다
[학교 없는 사회] 교육 세계 복원하기
이반 일리치 『학교 없는 사회』 6장 2024-7-4 김유리
자발적이고 독립적인 연결 활동으로 복원되는 교육 세계
이반 일리치에 따라 학교를 현상학적으로 정의하면, (1)특정 연령대의 사람들을 (2)교사 앞에 모아 놓고 (3)전일제로 시행하는 강제적 교육과정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진정한 교육 제도라면 (1)배우기를 원하는 사람 누구나 연령 불문으로 학습에 필요한 자원(사물, 롤 모델, 친구, 연장자)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2)아는 것을 나누고 싶으면 누구나 배우고자 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어야 하며 (3)공적 문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누구나 매체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두 제도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자발적인 배움이 주도하느냐 자발적인 배움을 부정하느냐이다. 타인이 정한 교육과정을 수용하도록 강제하기 위해 아이를 세계와 차단시키는 것이 학교라면, 아이의 자발적인 배움에 의존하여 그를 둘러싼 사물과 사람이 전부 ‘교육 세계’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 일리치가 말하는 학습 기회의 네트워크이다. 탈학교 사회에서 묻게 될 질문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까가 아니라 아이들이 배움을 얻기 위해 어떤 종류의 사람과 사물을 만나고 싶어 하는가이다. 여기서 아이라는 표현은 모든 입문하는 사람과 치환할 수 있다.
질문
1.
“(일리치)가 여기서 제안하려는 교육 제도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위한 것이다.” “왜 어디로도 통하지 않는 다리를 놓으려 하는가?”(155)
–교육 개혁에 앞서 정치와 경제의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반론에 대해 응답한 내용이다. 가난한 지역사회와 국가에서 할 수 있는 사회적 해방의 길은 교육 개혁을 시작하는 데에 있다.
–“사회가 탈학교화되면 오늘날의 세계 질서와 국가 안정의 기반인 경제, 교육, 정치 사이의 구분을 흐릿하게 만들 것이다.”(204) 나라마다 다른 사정에도 학교의 국제기준은 유사하며 학교가 전 세계적으로 시행하는 숨은 교육과정은 세계 시장과 강대국의 질서의 밑바탕이다.
–국가와 기업이 세상을 통제하고 소유하는 한, 교육 자료들에 대한 접근은 늘 통제받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 자료들에 대한 접근을 어떻게든 늘릴 수만 있다면, 최후의 정치적 장벽을 돌파할 통찰력을 얻게 된다.(176) 이것이 일리치식 접근법이다!
2.
스승-제자 관계가 성립되려면, “인격적 행위 자체가 더 높은 가치를 갖는 사회를 먼저 건설해야 한다.”(200)
–교육 자원에 접근, 기술 모델과의 만남, 동료 학습자와의 협동까지는 조직해내더라도 스승을 만나는 것은 정책화할 수 없는 상위 차원의 문제로 구분된다.
3.
아이들을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고용되어 급여도 받고,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174)
–자식들이 학교가 아니라 직장으로 가는 것을 ‘교육받은’ 중산층 부모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4.
학교 밖으로 탈출한다고 해도, 인공적인 사물에 둘러싸여 태어난 현대의 아이들은 어떻게 차단벽을 뚫고 세계와 만날 수 있나.(164)
5.
교육 상점(172-73)이라는 개념이 재미있다. 교육과 상점의 결합! 동네 길모퉁이 ‘생물학 전시 상점’에 들른 고객들은 박물관의 전시실로 안내되고, 상영회를 소개 받고, 소소한 불편을 해결할 방법들을 아는 안내자를 알게 되고, 심도 깊은 비판적 조언을 줄 연장자에게 보내지기도 한다. 상점 점원은 박물관 큐레이터나 도서관 사서에 가깝다.
6.
지적 리더십은 “옳은 것과는 무관하다.”(198)
-“지적 리더십은 맞거나 틀리는 것보다는 뛰어난 지성과 상상력 그리고 타인의 학습 활동에 기꺼이 참여하려는 의지와 관계된 능력이다.”(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