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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스웨덴 특파원이 들려주는 슬기로운 외국살이

[슬기로운 tOkyO살이] 반신욕의 추억 -처음 만난 문화충격-

작성자
토토로
작성일
2024-12-01 23:57
조회
82

  항상 이맘때쯤 날씨가 살살 추워지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일본에서 문화 충격을 처음 받았던 일이다.

  나에게는 일본에서 가족처럼 지내는 친구가 있다. 대학생 때 학교 식당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친구는 한국으로 유학을 온 ‘유학생’이었고 나는 일본으로 어학연수 갈 ‘예비 연수생’이었기 때문에 처음 만났지만 빠르게 가까워졌다. 당시 나는 아주 기초적인 ‘추워’, ‘배고파’, ‘졸려’, ‘맛있어’ 정도의 일본어 단어만 아는 수준이었지만, 친구와 함께 밥을 먹고 대화를 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친구와 몇 번 학교 식당에서 만나 함께 밥을 먹었고, 나는 곧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기 위해 학교를 휴학하고 부산에 있는 고향집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기숙사에서 이삿짐을 옮기던 날 친구를 만나서 이제 부산에 간다고 인사를 하니, 자기도 부산에 가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부산은 너무 좋은 곳이니 꼭 한번 여행을 가보라고 이야기하다가, 그냥 이번 주에 우리 집으로 놀러 오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봤다. 그렇게 나는 몇 번 만나지 않은 외국인 친구를 집으로 초대했고, 다른 유학생 2명과 함께 고향집으로 여행을 왔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 인연은 내가 일본에서 생활하는 지금까지 쭉 이어져 오고 있다. 이후 그녀는 한국인 남편을 만나서 국제결혼을 하였고, 나는 일본에서 살고 있다. 비록 요즘은 서로 바빠서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외국 생활에서 가족처럼 든든한 현지인 친구가 있는 것은 참으로 든든한 일이다.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 그 친구는 한국에 있었지만 친구의 어머니가 집으로 자주 초대해 주셔서 그 집에 놀러 가서 가족들과 함께 주말을 보내곤 했다. 당시 어학교는 다니고 있었지만, 일본 가정에 가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처음 일본인 친구 집에 초대되었을 때는 너무 설레고 기대가 되었다. 친구가 없는 친구 집에서 친구의 가족과 함께 외출도 하고 장도 보고 어머니의 저녁 식사 준비도 도와드리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저녁을 먹고 가족들과 티비를 보는데, 어머니가 반신욕 할래?(오후로니 하이루? お風呂に入る?)라고 물어보셨다. 당시 내 일본어 수준으로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해 뜻을 전자사전으로 찾아봤던 기억이 난다. 일본 집은 난방을 해도 한국의 온돌에 비할 바가 아니기 때문에 따뜻한 반신욕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마침, 유명한 온천에서 입욕제를 사 오셨다고 고르라고 하시면서 준비를 해 주셨다. 향이 나는 입욕제는 당시에 처음 써 봤기 때문에, 아로마 테라피를 하는 기분으로 따뜻한 반신욕을 즐겼다. 몸이 따뜻해지고 스르륵 잠이 들 때쯤 욕탕에서 나왔다. 어머니가 준비를 해 주셨기 때문에 나는 나름, 뒷정리는 해야지 싶어서 욕조의 물을 빼고 깨끗이 청소까지 하고 나왔다. 속으로 ‘일본은 매일 반신욕을 한다고 하는데, 가족들 다 이렇게 반신욕을 하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청소도 힘들겠다.’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머리를 말리고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는 친구 방으로 가서 푹 잠들었다. 다음 날은 가족들과 가마쿠라라고 하는 큰 불상이 있는 절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날 저녁도 가족들과 다 같이 식사를 하고 티비를 보다 어머니가 ‘오후로니 하이루?’라고 물어보셨다. 많이 걸어 피곤했기 때문에 어제와 같이 반신욕을 하겠다고 했더니, 어머니가 ‘오늘은 물 빼지마(누카나이데네).’라고 하셨고, 언니와 오빠가 한참을 웃었다. 나는 그 일본어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언니와 오빠가 웃으니 그냥 좀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전자사전을 가지고 와서 그 단어를 찾아보았는데 못 찾아서 옆에서 언니가 찾아주면서도 계속 웃었다. 사전의 뜻을 봐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되었다. 그래서 대충 물청소하지마라라는 말이라 넘겨짚고, ‘제가 오후로를 하니 정리는 제가 할게요’라고 했더니(이렇게 잘 이야기 한 건 아니고, 영어 대충 섞어서 이야기를 한 기억이 난다), ‘아니야. 나도 오후로 할 거야(나도 반신욕 할거야).’라고 하시는 거다.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순간 내 눈이 엄청나게 커졌던 모양이다. 분위기로 대충 짐작을 하고, 나는 마음이 너무 복잡해졌다. 반신욕을 한다고 괜히 말했나? 내가 하고 나서 거기 다시 어머니가 들어가신다고? 그럼 나는 정리도 안 하고 그냥 나와도 되는 건가? 어린 마음에 별별 생각을 다 하면서 그날은 그냥 샤워만 하고 나오는 선택을 했다. 

사진 : Yahoo, Japan 검색. 일본의 욕조(좌), 나고야 지브리파크의 메이짱네 욕조(우)

(좌)사진 중앙 아래 부분의 회색 마개가 있는 부분을 통해 물을 다시 데워짐

(우) 이웃집의 토토로의 장면처럼 저 욕조에서 가족들이 함께 반신욕을 함

 

  요즘도 친구 어머니를 만나면 가끔 그 이야기를 하신다.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내가 들어갔던 욕조의 물에 다른 사람들이 다시 들어간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대중탕이나 온천을 가면 당연한 것인데 집에서 가족과 함께 욕조의 물을 같이 쓴다는 것이 정말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나에게는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아주 강렬한 문화 충격이었다. 

  어제는 한국에 단기 연수를 다녀온 학생을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그 학생은 내년에는 한국의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갈 예정이라 준비는 잘되고 있는지, 걱정하는 것은 없는지 물어봤다. 기숙사가 조금 걱정이라고 했다. 1인실 기숙사인데 뭐가 걱정이냐고 했더니 단기 연수 때 기숙사에서 지냈는데 화장실의 변기와 샤워기가 같이 있는 게 너무 충격이었고, 있는 내도록 익숙하지 않아 불편했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게 가장 걱정이라고 했다. ‘뭐 고작 그게 걱정거리니? 호텔에서는 다 같이 있으니, 호텔이라고 생각하고 쓰면 되잖아.’ 하고 이야기해 놓고는 20년 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화장실 욕실이 분리되어 있으니 함께 있는 한국의 화장실이 충격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20년 전의 오후로 사건이 내게 충격이었던 것처럼….

  내가 가진 생각과 기준이 어떤 곳에서는 절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렇게 강렬하고 효과적으로 깨닫게 해 주는 것이 또 있을까? 그렇게 다른 문화에서 경험한 불편함과 당혹감은 나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 주었고, 내가 얼마나 좁은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 안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허물고 다른 세상과 만나 ‘차이’가 주는 선물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싶다.

전체 6

  • 2024-12-02 09:16

    오후로니 하이루?
    일본에서의 반신욕! 정말 큰 토토로 선생님의 눈이 더 커졌을 생각을 하니저의 두 눈이 완전히 다 감기는 큰 웃음이!! 선생님의 이야기는 정말 하나하나 다 재미있어요. 다른 문화의 경계에서, 나의 상식을 자꾸 낯설게 만드는 경험. 선생님의 귀한 일상에 박수를 보냅니다. 좋은 글 항상 감사해요. ^^


    • 2025-01-04 14:03

      나의 상식을 낯설게 만드는 경험….선생님 ㅎㅎ 어릴 때는 것도 재미있었는데, 나이를 먹다보니 가끔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하하하


  • 2024-12-02 12:59

    한 목욕물에 가족들이 차례로 들어간다는 얘기는 말로만 들었는데 토토로샘의 경험담을 들으니 더 생생하고 재미있네요! 차이를 즐겁게 받아들이는 여유가 더욱 사람을 크게 만드는 것 같아요. 자그마한 체구의 토토로샘 안에 커다란 세계가 있는 듯해 존경스럽습니다. ^_^


    • 2025-01-04 14:03

      차이를 즐겁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가끔 비뚤어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ㅎㅎㅎ


  • 2024-12-21 18:15

    ‘내가 가진 생각과 기준이 어떤 곳에서는 절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정말 문화란 ‘차이’에 있군요. 대중 목욕탕에서는 생면부지 사람들과 함께 탕에 들어가는데, 집에서는 함께 탕에 들어간다는 생각을 못했네요. 아마 좁아서 너무 티가 나서일까요. 샤워실과 변기가 같이 있는 것이 충격적일 수 있다는.
    아 꿀잼이네요.


    • 2025-01-04 14:04

      맞아요. 선생님 너무 좁아서 물을 함께 쓴다고 하는 것이 상상이 되질 않았습니다. ㅎㅎ 티가 너무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