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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스웨덴 특파원이 들려주는 슬기로운 외국살이

[슬기로운 tOkyO살이] 쏘니가 선물해 준 호사스러운 시간

작성자
토토로
작성일
2024-08-01 00:58
조회
246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 살면, 가까운 지인, 먼 지인 할 것 없이 한국에서 살 때보다 만날 기회가 더 많다. 한국에서는 표를 구하기도 어려운 조성진, 임윤찬 같은 연주가들의 공연을 비교적 쉽게 보기도 하고, 한국이라면 가까이서 얼굴 보기도 어려운 유명인들을 만나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이들을 만나게 되면 반가운 건 둘째 치고, 내 둥지를 떠나 객지에서 살며 움츠렸던 어깨가 펴지며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자부심이 뿜뿜 솟아나는 경험을 해외에 나와 사는 한국인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해 보았을 것이다. 단지 같은 국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성취를 내 성취인 것 마냥 누려보는 호사스러운 시간이 선물같이 느껴진다.


  바로 지난주 우리의 쏘니가 도쿄에 왔다. 쏘니가 속한 토트넘이 일비셀 고베와의선 경기를 위해 일본을 방문한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다. 우리는 경기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티켓 발매일에 알람을 맞춰놓고 작전을 짜고 준비를 했다. 쏘니를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서 보기 위해 가족이 모두 동원되어 작전을 세웠다. 컴퓨터 2대와, 핸드폰 2대로 동시에 접속을 하여 각각 다른 구역의 좌석에 도전한다. 한 구역에만 도전해서 앞쪽 좌석을 놓칠까봐 세운 작전이다. 한국이라면 이 모든 작전의 실행은 피시방에서 이루어졌겠지만…

티켓이 오픈되고, 우리는 각자가 맡은 구역을 선택해 가능한 좌석 중 가장 앞자리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남편과 내가 맡은 구역은 이미 J리그 회원들에게 먼저 오픈이 되어 앞좌석이 없었다. 큰아이가 맡은 구역은 앞좌석이 남아 있어 얼른 좌석을 선택하라고 한 다음 잽싸게 핸드폰을 건네 받아 카드번호를 넣고 다음 버튼을 누르지만,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트래픽으로 두세 번의 오류가 나는 동안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이게 뭐라고, 애국심이 불타오르는 경험까지 한다. 무사히 예매에 성공 했다. 혹시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남편과 작은 아이도 예매 확정이 될 때까지 계속 좌석을 검색하는 것도 우리의 작전의 일부였다.

그래도 이정도면 수월하게 좌석을 확보했다. 


  다 같이 유니폼을 입고 응원 가자는 야심찬 계획은 후덜덜한 유니폼 가격에 포기를 하고, 얼음물과 스포츠 음료 등을 챙겨들고 경기가 열리는 국립경기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소나기가 내려 걱정했지만, 오히려 36도가 넘는 열기를 조금은 식혀줘서 34도. 하지만 습도가 높아 체감 온도는 40도 이상이 될 것 같았다. 경기장이 가까워지자, 등판에 SON이라고 적힌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많다. 옆을 쓰윽 지나가며 한국 사람인지 확인을 해 보지만, 모두 일본 사람들이다. 일본팀과 경기를 하는데, 토트넘, 그것도 우리 쏘니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고? 찜통더위의 날씨지만 내 발걸음은 경쾌하고 신난다. 자리를 잡고 앉았더니, 앞도 쏘니 팬, 옆도 쏘니 팬, 뒤도 쏘니 팬. 이게 뭐라고 괜히 고맙다. 옆에 앉은 아주머니는 아들과 같이 응원을 왔는데, 두 손을 꼭 모으고 ‘쏘니, 햐~ 쏘니, 멋지다, 어머머… 쏘니’ 하며 아들의 어깨를 치며 너무 좋아하셔서 남편이랑 한참을 큭큭 웃었다. 내 아들은 아니지만, 내 아들인 것 마냥 뿌듯하다. 소녀 팬에 지지 않는 아줌마 팬. 그 맘이 바로 내 맘이다.


경기력은 말 할 것도 없다. 도쿄의 찜통더위를 날려버릴 만큼 진심을 다해 열심히 뛰는 선수들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기력 차이가 확연히 나지만 최선을 다해 뛰는 비셀 고베팀의 선수들도, 처음 경험하는 숨 막히는 더위에도 지친 기색 없이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며 뛰는 토트넘의 선수들도 다 아낌없이 박수를 쳐 주고 싶었지만, 그 중에도 백미는 우리 쏘니다. 주장으로서 선수들을 격려하며 경기를 이끌어 나가는 모습이 멀리서 봐도 듬직하고 여유가 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한방을 터트려 주는 모습에서는 카리스마와 책임감도 느껴진다. 아마 경기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손흥민이 골을 넣고 나서는 모두 사진 찍는 포즈를 취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교체가 되어 그라운드를 나올 때는 모두 기립박수를 보냈다. 상대편 선수들의 유니폼을 입고 있던 관객들도 모두 한마음으로 박수를 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 졌다. 여기는 영국도 아니고 한국도 아닌, 일본 맞지? 쏘니에게 보내는 박수지만, 나에게 보내는 박수 인 듯, 잠시 착각의 자유를 누렸다. 국뽕 돋는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


     



  경기가 끝나고 시상식이 이어졌다. 최우수 선수로 뽑힌 우리의 쏘니. 자랑스럽다. 시상식이 끝나고 인터뷰도 끝나고, 선수들이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퇴장을 한다. 쏘니는 행렬의 가장 뒤에서 천천히 따라가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 준다. 마치 오늘 온 5만 명 이상의 관중들과 다 눈인사를 하고 돌아가겠다는 듯 천천히 관중석을 바라보며 정성껏 인사를 해 주고, 그 인사를 받은 관중들은 열광적으로 환호를 보낸다. 쏘니가 운동장을 떠날 때까지 뒷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쏘니~~하면서 손을 흔드는데 그들의 눈빛은 이미 존경의 눈빛으로 바뀌어 있다. 선수가 관중을 존중하고, 관중이 선수를 존경한다. 너무 감동적이어서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더운 날, 얼른 들어가서 시원한 라커룸에서 좀 쉬고 싶을 텐데, 저렇게 인사를 해 줄 수 있는 그의 훌륭한 인격이 실력을 백배 천배 돋보이게 만들면서 ‘갓흥민’ 소리가 절로 나온다. 돌아 나오는 길에도 관중들은 역시 쏘니다. 감동이다. 멋지다. 경기도 멋있었지만, 히토가라가 스고이요네(人柄がすごいよね。さすがだよ。인품이 대단하네. 역시…) 하는 말을 듣고 내 어깨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전체 8

  • 2024-08-01 22:54

    히토가라가 스고이요네~ 오!! 일본어도 배우는!!
    축구장에 저 가득한 사람들을 모두 한 마음으로 모으는 선수의 힘! 오오오오!!
    올림픽 시즌이기도 하고, 왜 운동경기는 다 재매있을까. . 생각하다가, 결국 선수의 ‘히토가라’에 감동하는 경험. .
    축구장의 네 식구를 상상하는 재미도 있군요. ^^


    • 2024-08-04 19:24

      운동경기는 다 재미있지만, 선수들 저마다의 스토리가 더해져 백배 감동. 축구장에서 선수도 관객도 땀을 뻘뻘 흘리며 관람하는 ㅋㅋㅋ 즐거운 여름밤이었습니다^^


  • 2024-08-02 01:32

    제목만 보고 ‘쏘니’가 sony거나 소나타차(이건 무슨 맥락인지 저도 몰라요)를 상상했네요. 토토르샘이 올려주신 사진들이 경기장의 열기를 여기까지 전달해주네요. 관중들을 향한 쏘니의 사랑의 눈빛! 저도 받아보고 싶어집니다.


    • 2024-08-04 19:25

      캬~~선생님. 사랑의 눈빛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ㅋ 팬이 아니라도 팬으로 만들고 마는 우리 쏘니^^


  • 2024-08-02 22:15

    아 국뽕 돋네요. 우리의 쏘니는 실력, 얼굴, 인성까지 갑이지요.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 같아요.
    부럽습니다.
    지난 달에 쏘니가 저희 집 앞에서 조기축구해서 일대 교통이 마비되고 아수라가 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는데요.
    저는 정말 뭔 난리난줄 알았습니다. 금요일 밤에 이렇게 시꺼멓게 사람들이 가득, 공만 잡으면 우와 우와.
    패널티킥 하나도 우와 우와. 하도 난리라서 아파트 창문으로 봤는데, 알고보니 제가 봤던 깨알만한 사람이 쏘니였더군요.
    저도 쏘니를 경기장에서 응원하면서 보고 싶습니다. 쏘니~~ 화이팅.


    • 2024-08-04 19:27

      실력에 얼굴에 인성에 체력에,,,상상만 해도 빙구웃음 ㅎㅎ 그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조기축구 했던 곳이 선생님 댁 근처였군요. ㅎㅎㅎ 근데 공만잡으면 우와우와하는 모습 너무너무 이해 됩니다. 안 할 수가 없어요! 우리 쏘니니깐^^


  • 2024-08-04 15:07

    토토로샘과 가족들의 흥분과 기쁨, 자랑스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네요. 함께 운동장에 있는 듯 생생한 인파원의 소식 너무나 재미있습니다!^_^


    • 2024-08-04 19:30

      자랑스러움과 뿌듯함. 참고참아 저 정도입니다. ㅎㅎㅎ 우리는 쏘니보유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