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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말/호시노 미치오] 9장 백 년 후의 풍경(2/2)

작성자
덕후
작성일
2024-12-23 15:54
조회
57


일본어 강독팀(매주 월 오후 4-6)에서 읽은 호시노 미치오의 魔法のことば自然 연재합니다.

아래는 이한정 선생님의 진두지휘 아래 김완수 선생님, 이종호 선생님, 오선민 선생님, 임영희 선생님, 권수현 선생님, 조혜영이 함께 번역했습니다.

 

 


  알래스카 전체로 눈을 돌리면 고래 이외에도 흥미를 끄는 동물은 많이 있습니다. 그중 제가 매력을 느끼는 것은 카리부라고 하는 동물로 개체로서라기 보다 그 큰 무리에 흥미가 있지요. 왜 그런가 하면 제 안에는 항상 조금 더 빨리 태어났더라면 좋았겠다고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만약 백 년 전에 태어났더라면 에스키모인들의 옛 생활을 볼 수 있었습니다. 대평원을 떠도는 버팔로의 모습은 이제 미국 인디언의 전설로 밖에 알 수 없습니다. 그런 것도 조금 더 빨리 태어났더라면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어딘가에 있습니다.

  그래서 알래스카에서 여러 여행을 반복하는 중에 알래스카 북극권을 크게 계절 이동해 가는 카리부 무리와 만났을 때 늦지 않고 시간에 잘 맞췄구나하는 생각을 매우 강하게 가졌던 거죠. 그 광경은 수천 년 전과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몇 십만 마리의 카리부 무리가 저의 베이스캠프를 지나갔습니다만 그것은 매우 장대한 풍경인 것입니다. 아침에 한 마리의 카리부도 보지 못했는데 지평선으로부터 그 모습이 보이고 점점 점점 늘어갑니다. 마지막에는 지평선 전부를 메우고 계속 저의 베이스캠프를 향해 와서 6시간이나 7시간에 걸쳐 모든 무리가 지나가고 그리고 건너편 측의 지평선으로 사라져서 한 마리도 없어져 버립니다. 더구나 그것을 보고 있을 때에는 주위에는 달리 아무도 없습니다. 관광객이 가득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 혼자서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옛날 옛적으로 돌아가 버린 것처럼 그런 세계가 아직 남아 있는 것처럼 매우 신기한 기분이 됩니다.

  알래스카 북극권의 에스키모나 인디언들은 지금까지도 그런 카리부의 수렵생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 그렸던, 하지만 이제 절대 없어져버렸다고 생각했던 세계가 아직 남아 있었다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 하는 기분이 북받쳐 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카리부는 저에게 있어 특별한 존재인 거죠.

  그렇다고 해도 알래스카에 살고 있으면 역시 에스키모나 인디언 사람들이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알콜중독의 문제인데요. 앵커리지 마을에서 도로에 쓰러져 있거나 그런 그들의 삶에 맞닥뜨리면 매우 슬픈 기분이 됩니다. 저는 인디언 사람들의 모임이 있을 때는 되도록 가고,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들으려고 하고 있지만, 거기에서 느끼는 것은 왠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그들 자신의 힘이지요. 그렇지만 그들에 대해 생각했을 때 사실은 여러 문제가 그들의 주변에 없는 편이 이상한 거지요. 예컨대 저희의 경우는 백 년 전과 지금과는 삶도 크게 다르지만 그 변화라는 것은 천천히 왔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스키모나 인디언 사람들의 경우 한 세대 안에서 고대부터 근대로 건너온 것 같은 변화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살이나 알콜중독, 혹은 연장자와의 갭이나 유전개발의 문제 등을 볼 때는 두 개의 견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역시 부정적인 견해입니다만 다른 하나는 필요악이라는 사고방식. 한 명의 인간으로 치환해 봐도 슬럼프에 빠져 있는 때라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가능성을 숨기고 있는 시기이지요. 그러고 나서 변해가는 가능성으로 넘쳐흐릅니다. 그러니까 저도 그런 식으로 그들의 지금을 봐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젊은이들 사이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런 생각이 매우 강하게 있습니다. 그것도 최근에는 특히 어른 세대로의 동경이 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 시기는 그들은 서양문명을 동경했는데, 거꾸로 지금은 어른들에 대한 소회라는 것이 매우 강합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상황도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고 어디까지나 지금은 그 중간의, 다음 시대로 들어가기 위해 여러 가지 문제를 떠안은 시기라고 보고 있습니다. 어떤 문제도 없는 완전한 세계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오히려 그런 모순을 포함한 인간의 삶이 있기 때문에 저는 알래스카에 매료된 것이지요. 인간이 살아간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여러 문제가 생겨납니다. 만약 알래스카에 사람이 살지 않고 아름다운 자연뿐이라고 한다면 저는 알래스카에 그만큼 매료되지 않았겠지요.

  그들이 거기에서 살고 있는 이상, 역시 무언가의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때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에 매우 흥미롭습니다. 가령 보다 좋은 선택을 했다고 해도 또 반드시 다음의 문제가 나오는 것이니까요. 다시 말해…… 이것에는 끝이 없는 거죠. 이런 사회에서 있어야 할 절대적인 규범도 환경문제 없는 세계도, 최종적인 해결도 없습니다. 있는 것은 그래도 뭔가 보다 좋은 선택을 하려고 하는 힘뿐입니다.

이것은 조금 특이한 예일지 모르지만, 옛날에 있었던 샤머니즘의 세계는 알래스카에서는 지금은 거의 없어지고 있습니다. 종교라고 하면 기독교가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분명히 기독교가 알래스카의 네이티브 종교나 역사를 빼앗고 매우 폭력적으로 배제해 온 역사가 있습니다.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단지 부정적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너무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땠는가 하면, 분명하게 그들은 어느 세계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샤머니즘 속에서 굴레가 되었던 면도 있는 것으로, 거기에서 해방되었다는 의미도 놓칠 수 없지요. 어쨌든 외부의 입장에서 보면 기독교가 침투했던 것은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 되지만, 실제로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매우 능숙하게, 기독교의 양쪽을 재면서 잘 받아들인 부분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막연한 말입니다만, 목표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음 시대 안에서 어떻게 자신들이 보다 나은 방향을 선택해 갈지를 모색하는 것, 그런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지구의 천년 후 라고 하는 것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거기까지는 책임을 질 수 없겠지요. 하지만 100년 정도의 범위라면 어떻게든지 자신들의 안에서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좋은 방향으로 가지고 가자라는 모색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범죄가 없는 사회는 어디에도 없으며, 범죄가 완전 제로 사회라고 하는 것은 어쩐지 무섭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그런 것들을 가지면서 그 모든 것을 안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항상 이상과 현실이 있고, 어딘가에서 그 둘이 타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것이 역시 가장 중요하지요.

  이야기가 조금 벗어나지만, 알래스카를 여행하면서 무서운 체험을 한 적은 없는지 자주 듣습니다만, 물론 아주 많이 있지요. 캠프를 한 다음날, 잠이 덜 깬 눈으로 텐트의 입구를 열었더니 곰의 얼굴이 불쑥, 이런 일이 몇 번이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 생각하면 무서울 뿐이고, 거기에서는 어떻게든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무서운 케이스는 새끼를 데리고 있는 곰의 경우입니다. 제가 새끼 곰과 어미 곰의 사이에 들어가 버리는 일이 있습니다. 위에서 보면 바로 아는 위치관계가 지상에서는 풀숲이나 뭔가로 보이지 않고 자신이 딱 그 중앙에 서 있게 되어버린 경우가 있지요. 그렇게 하면 매우 위험하지만, 확실하게 주의를 기울이면 대체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여름 캠프와 겨울 캠프에서는 무엇이 다른가 하면, 여름은 역시 무의식에 곰에 대한 생각이 항상 머리에 있습니다. 겨울은 춥지만 곰은 동면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위험을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어딘가 해방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4월에 들어가서도 그 기분 그대로 캠프를 하고 마는 일이 있어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곰에 공격당하는 경우는 적다고 생각합니다. 곰도 인간을 정말로 공격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북해도의 불곰도 꽤 크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호사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들과 에스키모의 얼굴 생김새는 완전히 같습니다. 그 덕분에 고래잡이로 어떤 마을에 갔을 때도, 옛날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아주 잘 보살펴 줍니다. 특히 저는 에스키모와 혼돈하는 경우가 많아 마을에 들어가기가 매우 쉽습니다. 얼굴이 닮아있다는 것은 서로 안심하는 부분이 있어 어떤 가족은 저에 대해 정말로 부모처럼 생각하고 내 아들이야라고 소개해 줍니다. 당돌한 것 같지만, 거기서 함께 생활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로 같은 민족이구나 하지요. 살고 있는 세계는 다르지만 느끼는 것은 정말 닮아 있습니다. 맞는지 여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항상 생각하는 것은 부끄러워하는 방식이 똑같이 닮아있습니다. 일본에서 어린이가 손님이 왔을 때 자주 기둥 뒤에 숨어서 보는 일이 있지요. 그런 감각은 그들도 완전히 똑같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지만, 그런 소소한 감각이 닮아 있다고 하는 것은 매우 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알래스카에 있으며 일본인에게조차 자주 에스키모로 혼동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알래스카 철도에 타고 있었을 때 제 뒤에 에스키모 젊은이 두 명이 앉아있었습니다. 거기에 일본인 젊은이가 배낭을 메고 들어온 거죠. 제 쪽으로 오는데 아아, 일본인이라서 말 거는 건가하고 생각하자 그대로 지나쳐서 뒤에 에스키모에게 일본인이냐고 물었습니다.

또 처음 간 인디언 마을에서 어느 가족이 저를 받아주기로 해서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지요. 공항이라고 해도 활주로는 자갈길이고, 열 명 탈 정도의 비행기가 도착합니다. 그래도 마을에서는 대단한 행사이니까 마을사람이 와하고 모여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디가 저를 기다리고 있는 가족인지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바로 찾겠지 하고 짐을 정리하고 있었는데요, 정신 차려보니 마을 사람이 모두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그 사람의 집을 방문하자 계속 기다리고 있었지만 일본인은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일을 몇 번이고 경험하자 역시 저는 몽골로이드구나 실감했습니다.

먹는 것에 대해서도 비슷한 부분이 있지요. 그들의 식생활은 정말 풍족한 거죠. 백인 친구에게 당신들보다 그들이 훨씬 풍족한 식생활을 한다고 말해도 그들에게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인의 먹거리 감각은 그들의 그것과 매우 닮아있습니다. 바다표범의 말린 고기든 고래의 고기든 일본인이라면 아마 아무 저항도 없이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먹는다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같은 것을 먹어준다는 것은 매우 기쁜 것이지요. 예컨대 일본의 간장과 비슷한 실오일이라는 바다표범의 기름을 녹인 것이 있는데 특별한 냄새가 납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식생활에는 빠뜨리지 않고 매끼니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 오일이 나오면 모두 제가 그것을 먹는지 어떤지 보고 있는 거죠. 먹든 안 먹든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역시 그것을 먹으면 기쁜 거지요. 그 감각은 매우 잘 압니다. 일본인이 미국인이 회를 먹어주지 않으면 역시 섭섭한 것처럼. 물론 환경이 전혀 다른 것이니까 봐 줄 수 있지만 어딘지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음악의 취미가 달라도 신경 쓰지 않지만 자신들이 먹는 것을 거부당하는 것은 매우 괴롭습니다. 그러니까 식생활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 다른 민족과 마주 대하는 매우 중요한 한 걸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알래스카에 아무리 오래 살고 있어도 저는 역시 일본인인 것이지요. 알래스카는 매우 좋아하지만 그렇게 있으면 있을수록 거꾸로 일본도 좋아져 갑니다. 멋지게 말할 수 없지만 예컨대 일본에 있을 때 아주 귀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 완전 별 이야기 아닌데요, 백중 선물이라든가 연말 선물이 있지요. 이전에는 왜 저런 걸 하나 싶었는데 저쪽에 살다보면 그 옛날부터의 의미라고 할까 풍습이 가진 의미라는 것이 이해되어 갑니다. 하여튼 연말 선물이라고 한정지을 수 없겠지만 전혀 다른 세계에 들어가 있으면 오히려 발밑의 어둠이 잘 보이게 됩니다.

때문에, 알래스카와 같이 정말 자연이 크고 넓은 세계에서 일본에 돌아오면, 어수선하고 복작복작하게 만들어진 자연을 앞에 두면 그것이 싫어지냐 하면 그런 일은 없습니다. 반대로 아주 그립습니다. 물론 규모는 완전히 다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알래스카의 자연과 미국 본토의 자연을 비교해 봐도 같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는 옐로스톤이나 그랜드캐니언과 같은 국립공원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가면 역시 방대한 자연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알래스카의 자연과 비교하면 정말 작은 자연입니다. 옐로스톤이라고 하는 것은 그 주변을 모두 사람의 생활로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일하게 남아있고 보호되고 있는 곳이 옐로스톤 국립공원입니다. 알래스카의 경우는 그 반대입니다. 데날리 국립공원이라고 하는 거대한 공원이 있습니다만, 미국의 국립공원과 비교해서도 정말로 와일드한 장소입니다. 하지만 알래스카 전체로 봤을 때, 그곳은 가장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 있는 지역인 것입니다. , 반대의 세계인 것이지요. 알래스카의 대부분은 이제 뭐가 뭔지 모르는 세계. 세스나로 북극권을 향해서 날아가도 한결 같이 벌판이 수십 킬로, 수백 킬로로 이어져있습니다. 그것이 알래스카가 지금도 계속 가지고 있는 자연이지요.

한편, 일본의 자연이라고 하면, 물론 규모로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큰 자연이 좋고, 작은 자연이 나쁘다라고 한다면 그런 일은 없습니다. 두 가지는 완전 다른 자연입니다. 자주 친구와 이야기 합니다만, 인간에게 있어 중요한 자연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두 가지가 있고, 하나는 가까운 자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의 삶 속의 자연, 일본에서 접하는 자연이지요.

알래스카의 자연은 그런 자연이 아니고 먼 자연입니다. 그것은 알래스카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도 멉니다. 카리부의 계절이동도 알래스카에 살고 있는 사람의 대부분은 본 적이 없습니다. 늑대가 옛날과 같이 남아 있어도 누구도 늑대라는 건 본적이 없습니다. 그 정도로 품이 넓다고 할까. 하지만 사람이 볼 수 없는 자연은 중요한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먼 자연의 중요함이라고 하는 것은 즉, 자신이 상상하는 자연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가지 않아도 먼저 그런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뭔가 인간을 풍요롭게 하는 자연이지요. 예를 들어 알래스카에 늑대가 한 마리도 없어져 버린다고 해서 우리들의 생활은 아무 변화도 없습니다. 먼 자연이기 때문에. 하지만 역시 상상 속에서 알래스카에서 늑대가 없어져 버린다면 우리는 큰 것을 잃어버린 것이 됩니다. 실제로 거기에 가지 않아도 좋고, 하지만 거기에 있는 것으로 풍요롭게 해 주는 자연이라고 하는 것이 있지요. 먼 자연의 소중함과 가까운 자연의 소중함. 알래스카의 자연과 일본의 자연을 비교할 때에 그런 것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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