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쿠노 카츠미] 곤마리는 정리 계곡의 나우시카인가?(1/2)
일본어 강독팀에서 읽은 오쿠노 카츠미의 『モノも石も死者も生きている世界の民から人類學者が敎わったこと』(『물건도 돌도 죽은 자도 살아 있는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인류학자가 배운 것』)을 연재합니다. 이한정 선생님의 지도 아래 오선민 선생님, 김미향 선생님, 조혜영이 함께 번역했습니다.
『물건도 돌도 죽은 자도 살아 있는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인류학자가 배운 것』
■ 목차
1 곤마리는 정리 계곡의 나우시카인가?
2 바람의 계곡의 애니미즘
3 가와카미 히로미와 <뫼비우스의 띠>
4 벽과 연락 통로—애니미즘을 둘러싼 두 가지 태도
5 돌아와라, 살아있는 것들아
6 동양적인 견해로부터 애니미즘을 생각하다
7 미야자와 겐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다
8 잠자는 신의 꿈—융에서 애니미즘으로
9 순수한 기억과 죽은 자의 영혼—베르그송과 애니미즘
10 기호론 애니미즘—에두아르도 콘의 사고의 숲으로
11 인간인 것의 끝—말할 수 없는 것의 순수 경험
12 인간에게만 닫힌 세계에 애니미즘은 없다
1장 곤마리는 정리 계곡의 나우시카인가?
의류, 책, 주방용품, 액세서리, 소품 등의 ‘물건’은 자본금을 투입시킨 제품공장에서 싼값에 대량으로 생산되어 판매점으로 운반되고 우리에게 구입되어 주거공간으로 들어오게 된다. 물건은 구입 후 곧바로 사용되거나 소비되는 경우도 있지만 부족할 경우나 교체가 필요한 경우에 대비하여 집 안에 모아두는 일도 있다. 그 사이에 입을 수 없게 되거나 누군가에게 안 어울린다는 말을 들어서 사용하지 않게 된 물건(의류), 읽으려고 샀는데 시간이 없어서 읽지 못한 채 쌓아 놓은 물건(책), 그 외에 여러 사람에게 받은 물건, 증정품 등이 집 안에서 모르는 사이에 점점 증식하고 급기야 생활공간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어수선한 물건 더미나 뭉치는 소유자를 물리적으로 무겁게 짓누를 뿐 아니라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져서, 치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식과 함께 치워지지 않고 정리되지 않는 자신의 한심스러움이 정신적으로 무겁게 짓눌러 온다. 대량 생산·대량 소비의 시대에 사는 우리들이 껴안고 있는 그러한 특이한 과제에 대해서 해결을 해주는 것이 정리를 전문으로 하는 ‘정리 컨설턴트’이다.
‘곤마리’ 즉 곤도 마리에(近藤麻理惠)는 ‘정리의 마법’을 전수하는, 잘 나가는 정리 컨설턴트다. 그녀의 저서 『곤마리~인생이 설레는 정리의 마법~』 시리즈는 누계 1000만부 이상 팔았다고 한다. 2019년 1월부터 시작된 넷플릭스의 <인생이 설레는 정리의 마법>이라고 제목을 붙인 프로그램은 이례적인 대히트를 기록했다.
곤마리는 ‘정리 계곡의 나우시카’인 걸까?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주인공 나우시카는 사람 이외의 존재, 특히 곤충 등의 살아 있는 것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애니미스트다. 나우시카는 애니미즘의 체현자다.
지금부터 애니미즘에 대해 논할 것인데, 여기서는 애니미즘을 우선 지구라고 하는 우리들이 사는 이 행성이나 우주에 있어서 인간만이 반드시 주인인 것은 아니라고 하는 사고방식 혹은 사상을 말하는 것이라고 정의해 두자. 애니미즘에서는 사람과 사람 외(사람 이외의 존재)는 모습이나 형태는 다르지만 마음이 서로 통하고 있다. 과연 곤마리는 바람 계곡이 아닌 정리 계곡의 나우시카인 걸까?
곤마리 즉 곤도 마리에가 설명하는 정리의 방법 중에서 가장 알기 쉽고 또 오컬틱한 것이 ‘설렘’을 단서로 물건을 남길지 버릴지를 결정한다는 방법이다. 곤마리는 이렇게 썼다.
“만졌을 때 설레는가”
물건을 하나하나 손에 들고 설레는 물건은 남기고, 설레지 않는 물건은 버린다. 물건을 판정하는 가장 간단하고 정확한 방법입니다. (곤도近藤 2019: 62)
곤마리에 따르면 정리에 있어서 버리든 남기든 일단은 물건에 반드시 접촉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졌을 때 설레는지’ 어떤지가 정리에 즈음하여 선별의 기준이 된다. 곤마리는 말한다. “물건을 남길지 버릴지 판정할 때도 ‘갖고 있어서 행복한지 어떤지’ 즉 ‘갖고 있어서 마음이 설레는지 어떤지’를 기준으로 한다”(곤도 2019:63)라고.
‘설렘’을 축으로 정리를 설명하는 곤마리의 실천적인 “물건의 철학”은 사실은 매우 합리적이다. 그녀는 물건을 버릴 수 없는 데에는 네 개의 원인이 있다고 분석한다.
사람이 물건을 버릴 수 없는 것은 아직 사용할 수 있으니까(기능적인 가치), 유용하니까(정보적인 가치), 추억이 들어가 있으니까(감정적인 가치). 더욱이 구하기 어려웠다거나 대체할 수 없으면(희소가치) 더욱더 내놓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곤도 2019:68)
아직 쓸 만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거나 이후에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거나 소중한 사람에게 받은 추억의 물건이라거나……라는 것으로 물건은 버려질 수 없는 것이다. 곤마리는 소유자가 가치를 이것저것 생각해 봄으로써 본래적으로는 단순한 물질에 지나지 않는 물건에 의해 꼼짝 못하게 얽매여서 버려지지 않게 된 것을 냉정하게 동시에 합리적으로 꿰뚫어보고 있다. 이 점을 근거로 곤마리는 일종의 정신론을 정리법의 기본으로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설레지는 않지만 버릴 수 없는’ 물건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그 진짜 역할을 생각해 볼 것. 그러면 의외일 정도로 많은 물건이 이미 용도를 다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터입니다.
… (중략) …
‘물건을 많이 버린다’는 것은 물건을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벽장이나 옷장 속에 넣어져서 그 존재조차도 잊혀버리는 물건들이 과연 소중하게 다뤄진다고 할 수 있을까요.
만약, 물건에 기분이나 감정이 있다면 그런 상태가 기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시라도 빨리 감옥 혹은 외딴 섬 같은 곳에서 구출해 주고 “지금까지 고마웠어”라고 감사의 마음을 품고 물건을 기분 좋게 해방해 주세요.
정리를 하면 개운해지는 것은 사람도 물건도 분명히 같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곤도 2019:87-8)
물건들은 벽장이나 옷장이라는 ‘감옥’이나 ‘외딴 섬’에 갇힌 채 돌아봐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물건들의 ‘기분’이나 ‘감정’이 되어 보자, 라고 호소한다. 감옥이나 외딴 섬으로부터 물건들을 구출해서 지금까지의 일을 감사하고 기분 좋게 해방시켜 주지는 않겠는가. 그렇게 하면, 즉 ‘정리’를 하면 사람도 물건도 개운해진다. 이것이 곤마리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왜 정리할 수 없는 것일까를 다양한 가치에 의해 사로잡힌 것을 포함해서 합리적·논리적으로 설명해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다른 한편으로는 물건의 기분이나 감정의 존재를 넌지시 암시하면서 사람들을 동요시켜 일종의 오컬틱한 해결법을 제시한다. ‘곤마리 방법’은 물리와 정신론의 합성물, 혹은 합리와 ‘비합리’의 혼합의 성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대량 생산과 소비의 시대에 완전히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집 안으로 과하게 넘치고 증식하는 물건, 물건, 물건 ……. 인간의 힘을 넘어서 증식하는 물건을, 인간과 물건이 서로 통하고 있다는 애니미스틱한 사변의 영역으로 대담하게 옮겨, 그 자리에서 실천적으로 대처하고 소유자에게 버려야 할 것과 남겨야 할 것을 정리하고 정돈시킨다.
이것이야말로 곤마리의 마법이다. 겉보기에는 크게 다른 ‘인간’과 ‘물건·대상·객체’가 기분이나 감정을 품는 마음의 측면에서 서로 연결되어 합쳐지고 있다. 곤마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합리·논리·물리에 절묘하게 안배해서 버무려진 비합리·오컬트·애니미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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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들을 감옥이나 외딴 섬에서 구출해야 하는데요…몸은 왜 안움직일까요…그들의 목소리를 못 듣나봐요. 곤마리는 정리계곡의 나우시카인가? 결론이 너무 궁금해서 다음편이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