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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말/호시노 미치오] 6장 남동 알래스카와 혹등고래(2/2)

작성자
덕후
작성일
2024-10-28 20:28
조회
173

안녕하세요!

일본어 강독팀(매주 월 오후 4-6)에서 읽은 호시노 미치오의 魔法のことば自然 연재합니다.

 

아래는 이한정 선생님의 진두지휘 아래 김완수 선생님, 이종호 선생님, 오선민 선생님, 임영희 선생님, 권수현 선생님, 조혜영이 함께 번역했습니다.

 

 

  남동 알래스카의 자연은 매우 아름다운 자연입니다. 저는 알래스카에 가서 처음 10년 동안 항상 북극권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남쪽 알래스카의 자연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지요. 그런데 5년쯤 전에 남동 알래스카의 자연을 처음으로 보고나서 남동 알래스카의 자연에 아주 매료되었습니다. 알래스카의 지도가 가까이에 없어서 상당히 알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남동 알래스카는 알래스카에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쪽을 향해 딱 냄비의 손잡이와 같은 형태로 아래에 뻗어있는 지역입니다. 비가 매우 많이 오는 지역으로 연간 4,000밀리가 넘습니다. 일본해류가 흐르고 있고 그것이 해안선의 빙산에 닿아 많은 비나 눈을 내리게 하지요. 원생림과 빙하에 묻혀 있어 도로도 거의 없는 세계입니다. 바다 쪽이라 하면, 많은 섬이 피요르드와 같은 형태로 무수하게 흩어져 있고, 후미가 깊거나, 그 깊숙한 곳에는 반드시 빙하가 있거나 해서 매우 환상적인 세계입니다. 그리고 매년 여름이 되면 반드시 혹등고래가 옵니다. 제가 제일 처음 이 남동 알래스카를 촬영하기 시작한 것은 고래가 목적이 아니고, 이 숲을 테마로 찍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아마도 남동 알래스카의 원생림은 미국 중에서도 가장 큰, 전혀 사람이 손대지 않고 남겨진 크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해변의 원생림은 숲의 단계로서는 마지막 숲이지요. , 빙하가 후퇴해 제일 먼저 원시적인 식물이 나타나고 다음의 식물이 나타나 숲이 되고, 가문비 숲에서 솔송나무 숲으로 바뀌고, 남동 알래스카의 숲은 이미 마지막 단계에 있습니다. 즉 이 이상, 숲은 변해갈 수 없습니다. 영어로는 올드 그루우스 포레스트라고 말하지만, 이끼가 낀 신비한 세계입니다.

  촬영을 시작한 것은 벌써 5년 정도 전입니다만, 어느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숲속을 혼자서 걷고 있자니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났지요. 슈우 슈우하고 숨소리가 들려왔지요. 무슨 소리지 하고 확인해 보려고 그 숨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걸어갔더니 걷는 사이에 해안선으로 나가졌는데, 마침 두 마리의 혹등고래가 지나가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때의 제 기분은 잘 설명할 수 없습니다만, 아주 차분했던 것이지요. 해안선에는 유빙이 떠 있었습니다. 멀리 빙하의 산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제 눈앞을 혹등고래가 정말로 조용하게 숨 쉬면서 지나갔습니다. 그때에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빙하나 고래나 숲이 뭔가 하나의 것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로부터 며칠인가 지난 후에 또 좀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저물녘 정말로 잔잔한 만월의 밤으로, 그때까지 바다는 거칠었습니다만, 그날 가까스로 유리처럼 바람과 파도가 잔잔해져 우리는 배에서 내려 작은 고무보트로 바다로 나아갔습니다. 그때 아마 스무 마리에 가까운 혹등고래가 뿔뿔이 흩어져 여러 곳에 있고, 우리를 둘러싸듯이 천천히 천천히 수영하면서 호흡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보트의 엔진을 끄고 계속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물의 행성이라는 말이 있는데, 정말로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기분이었습니다. 즉 아까도 말했지만, 그곳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빙하로 덮여 있던 바다인 것입니다. 조금 전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수백 년 전의 이야기인데, 즉 빙하가 서서히 후퇴하여 거기에 육지가 나타나고 거기에 다시 바다가 돌아오고 고래가 돌아오고 고래와 숲 그리고 빙하가 정말 하나로 묶여 있어서 하나하나로 나누기 어려운 세계 같은 그러한 신기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때 이 땅에서 해야 할 테마를 조금씩 알기 시작해서, 시간이라는 것을 테마로 사진을 찍어 볼 수 없을까, 남동 알래스카의 자연을 무대로 정말로 먼 긴 시간을 테마로 사진을 찍어 볼 수 없을까, 그런 식으로 생각했습니다.

생물은 정신이 아찔할 정도의 시간을 거쳐 여기에 있는 것인데, 매년 그곳으로 돌아오는 혹등고래와 빙하 그리고 원시림, 이 세 가지를 테마로 그 일을 아주 알기 쉽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제가 남동 알래스카에서 촬영하고 있는 하나의 큰 테마인데, 그러한 긴 시간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그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시간은 어떤 것일까라고 하는 것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라는 것은 아주 먼 때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역시 계속 이어지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인간의 역사를 제 나름대로 머릿속에 생각하려고 할 때, 인간의 일생을 기준으로 한 스케일로 역사를 보는 버릇이 있지요. 즉 예컨대 야요이시대(弥生時代)를 생각했을 때, 그것이 1800년이나 2000년 전의 먼 옛날의 일처럼 우리는 생각해 버렸지요. 역사의 한 사건을 지금과는 전혀 관계없는 지식으로 보게 될 것 같은데, 하지만 그 역사라는 것을 인간의 일생을 더듬어 가는 것으로 본다면 사실 그렇게 먼 것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컨대 야요이시대가 얼마나 과거인가 생각하면, 자신이 지금 여기에 있고, 그 앞에 부모가 있고, 그 앞에 또 부모가 있고 그러한 사람의 일생을 이어가는 것으로 역사를 살펴보면, 야요이시대란 인간이 일렬로 늘어서면 60명에서 80명 정도가 늘어서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즉 그 한 줄에 인간이 늘어서 있는 경우에, 문득 자신과 피가 연결된 야요이시대의 인간이라는 것은, 얼굴의 형태마저 분명히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인간의 역사는 매우 짧은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즉 지구의 스케일이나 역사를 생각할 경우, 1억년이라는 시간 스케일은 역시 손에 닿지 않습니다. 예컨대 공룡이 멸종한 수천만 년 전이라는 것은 쉽게 우리의 감각으로는 모르겠지만, 1만 년 전이라면 인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정말 바로 요전의 일처럼 느껴지는 기분이 듭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은 알래스카 선주민에 관한 것입니다. 1만 년 전, 2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에 유라시아와 알래스카가 연결되어 있어서 그 사이에 베링지아[베링육교]라고 하는 커다란 평원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곳을 건너서 에스키모인들도 인디언 사람들도 지나왔던 것인데요, 그것은 먼 옛날의 일이 아니고 불과 엊그제의 사건인 것이죠. 이와 같이 남동 알래스카의 자연을 주제로 고래나 숲이나 빙하를 생각하면 거기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의 일이 머리에 떠오릅니다.

남동 알래스카에 살고 있던 사람들로서 하이다족과 클링깃족이라고 하는 인디언이 있습니다. 소위 토템폴을 쌓아올린 사람들인 것이지요. 저는 남동 알래스카의 자연을 주제로 찍기 시작하고 나서 역시 아무래도 이 땅의 선주민에 대한 생각이 사라지지 않고 어떻게든 그들이 쌓아올렸던 토템폴이라는 것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상당히 강해졌습니다. 그런데 알래스카에는 그런 의미로의 토템폴이 이미 하나도 없다고 전해집니다. 대부분의 토템폴은 어느 시대에 모두 박물관이 가져가 버렸거나 썩어 없어졌거나 해서 알래스카에는 그들이 신화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던 무렵의 토템폴은 없다고 전해지는데 저는 그래도 어떻게든 그 토템폴을 보고 싶었습니다. 고래나 흰머리독수리나 곰이나 늑대, 그들이 그런 것들과 자신들을 동일하게 보고 있던 시대의 토템폴을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어느 때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남동 알래스카의 조금 남쪽에 퀸샤론도 섬이라는 아주 많은 섬으로 되어있는 군도가 있습니다. 그곳은 옛날 옛적 하이다족의 섬이었던 거지요. 거기에 그들이 동물과 일체가 되어 살았던 시대의 토템폴이 아직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는 것이 힘들고 아주 먼 곳이지만 거기까지 갈 수 있다면 진짜 토템폴을 보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백 년 이상 전에 유럽 사람들이 처음 그곳을 지나갈 때 천연두를 가져와서 하이다족의 대부분이 죽고, 살아남았던 자도 옛날부터 살던 마을을 떠나 다른 섬으로 옮겨 살았습니다. 그리고 박물관이 세계의 유산을 수집하기 시작했던 시대에 토템폴도 그 수집 목적이 되었는데 하이다족이 그대로 두기를 바란다고 해서 박물관으로 가져가는 것을 거부했던 것이지요. 박물관으로 가져가면 영구보존할 수 있습니다. 자연 그대로 남겨두면 그것은 나무의 문화이기 때문에 언젠가 끝내는 썩어버립니다. 그러나 하이다족은 거기에 자신들은 이제 갈 수 없지만 자신들에게 아주 신성한 장소에서 토템폴을 가지고 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썩어버려도 좋다, 그대로 두고 싶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기적적으로 진짜 토템폴이 퀸샤론도 섬의 어느 섬에 남아있었던 것이지요. 저는 그곳에 작년에 처음으로 갔었지만 이제 정말로 인기가 없는 세계였습니다. 작은 후미로 들어가면 그 숲속에 토템폴이 아마 20개 가깝다고 생각되는데 반 정도는 땅바닥에 쓰러져 이끼가 껴있었고 거기로부터 또 새로운 나무가 자라거나 하는 것이지요. 저는 감동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미 잊혀진 장소에 있다는 상황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정말로 끝내는 썩으면서도 그런 형태의 토템폴이 지금도 남겨져 있습니다. 여러 가지 모양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흰머리수리라던가 큰 까마귀라든가

큰 까마귀는 인디언 신화 속에서 창조주라고 말해지는 새로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새이지요. 어째서인지 인디언들뿐만 아니라 에스키모에게 있어서도 큰 까마귀는 대단히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드시 창세신화에 나오는 신비한 새인 것입니다. 그 큰 까마귀라든가 인간의 아이가 곰에게 안긴 모습이라든가 여러 가지 토템폴이 이끼가 껴서 거의 사라져가려고 하는데 아주 커다란 힘을 가지고 말을 걸어오는 것이지요.

  거기서 이틀 동안 지냈습니다만, 그들이 신화의 시대에 살고 있었을 무렵 토템폴을 혼자서 여기에 앉아서 보고 있자니, 신화라고 하는 것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아주 큰 힘을 가지고 저에게 압도해 다가옵니다. 그것이 신화라고 하는 것에 흥미를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지요. 우리는 신화라고 하면, 바보스러운 조금 시대착오적인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해 버리지만 실은 신화라고 하는 것은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은 이미 우주에 갈 수 있는 시대고, 자연과학이라고 하는 것이 대단히 발달해서 우리가 도대체 어떤 생물인지, 무엇인지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과학의 지혜가 왠지 우리와 사회와의 연결을 말해주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점점 자신이 세계와 분리되어 대상화되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달에 갈 수 있게 되거나 자연과학이 발달해도, 우리들의 정신적인 풍요로움이 사라져 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어쩔 수 없습니다. 즉 어쩌면 자신들을 세계 속에서 자리매김하기 위해 우리는 어딘가에서 신화의 힘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닐까, 저는 지금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방금 말한 고래잡이를 생각해 봐도 포인트호프라는 마을에 제가 아주 좋아하는 신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조금 긴 신화라 전부는 잘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만, 어느 밤 이글루 안에서 가족이 생활하고 있고, 언뜻 보면 젊은 아들이 비정상적인 각성 상태가 되어 있습니다. 즉 의식이 없어지고, 멍하게 앉아 있습니다. 그것을 가족이 보고 있습니다. 이윽고 그 아들은 의식이 나가서 어느새 자신이 고래와 함께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몸도 완전히 고래가 되어, 고래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조금씩 고래의 기분을 알아 갑니다. 그때, 어느 장로 고래가 그에게 말을 하지요. 봄이 되면 우리들은 포인트호프 마을 근처를 지나 북극해로 헤엄쳐간다. 그때 네가 호흡을 하면 해면에서 에스키모의 우미악을 볼 것이다. 너는 누구에게 작살을 맞아야 하는지를 스스로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그리고 새하얗고 깨끗한 우미악을 선택하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즉 우미악을 그런 식으로 깨끗하게 유지하고 있는 에스키모는 분명 우리들을 잡았을 때, 소중하게 고기를 마을 사람 전원에게 나눠 줄 것이다그런 이야기를 몇 번이나 하는 거죠. , 자신들이 누구에게 작살을 맞게 되는지, 그것을 그 장로 고래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이지요. 잘 설명할 수 없습니다만, 저는 그 이야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옛날부터 포인트호프에 전해오는 고래잡이 신화라는 것을 사람들이 믿고 있었는가 하면, 그것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지요. 고래가 인간에게 그런 것을 가르친다니, 그들은 결코 믿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화를 통해 역시 자신이라는 것을 세계에 자리매김한다, 그것은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신화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습니다. 그중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억제라고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딘가에서 자신을 억제해 갑니다. 그것이 터부라든가 그런 세계와 연결되어 가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신화라고 하는 것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우리가 지금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정말로 여러 가지 것이 편리해져서 테크놀로지 등과 같은 것으로 점점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고 있는데, 동시에 매우 큰 것을 상실했다는 것은 이러한 신화, 자신들의 신화라는 것이 더 이상 없는 그것이 역시 매우 뭔가 불안하다고 할까, 자신들을 어떻게 세계나 우주 속에서 자리매김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어쩔 수가 없네요. 앞으로 몇 년 만 있으면 2000년이 되는군요. 그런 것을 생각했을 때, 어딘가 불안이라는 것이 있어서,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로서 시작했을 때부터 여러 가지 것이 쓰여 있어, 그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 거다 하는 사고방식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서 어디선가 믿고 싶다고 할까, 그런 마음이 있어서 예컨대 이런 생각을 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제 곧 우리는 2000년을 맞이합니다. 그 때 3000년이라는 것을 인간이 맞이할 수 있을지 어떨지 하는 것을 가끔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즉 앞으로 천년 남았지만, 만약 인간이 3000년을 맞이할 수 있다면, 하고 저는 이렇게 항상 생각하지요. 3000년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았을 때, 정말로 인간이라는 존재가 진화해 가는 것이라면, 지금 역시 인간이 변화하려고 하는 때인 것 같아서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할까,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기분이 들어 어쩔 수 없습니다. 그 진화하는 것은 의식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막연하지만 그럼 의식의 변화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앞으로 자신이 알래스카에 있고 알래스카 자연과 관련된 가운데, 뭔가 그 계기가 되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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