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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은 일상과 다른 상상력을 통해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구석기에서 살아가려면 먼 곳에서도 물을 구할 천리안, 웬만한 도구는 만들 수 있는 손, 간단한 도구를 복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머리가 있어야 하고, 무리 가운데 살기 위해서 빠르게 자기 역할을 찾는 맥락 파악을 해야 하고, 무엇보다 남에게 군림받거나 군림해서도 안됩니다. 한마디로 자연학적 지식, 기술, 사회적 지능이 뛰어나야 살 수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남의 돈 벌기가 싶냐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무기력하게 사는 것 말고도 다른 옵션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상상해봅니다. 어쩌면 나도 몰랐던 다른 가능성, 이를테면 효율, 이익과 무관하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엇을 만드는 데에 집중하고, 그저 친구들과 아무런 이해나 계산없이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힘이, ‘이미’ 내 안에 있는, 그런 멋진 상상을 말이죠.

[빙하 이후(9)] 『뱀 의식』 예술, 영험한 힘을 가진 낯선 형태들

작성자
강평
작성일
2024-09-21 11:33
조회
53

예술이 무엇일까요. 일상을 살아가는 것과는 하등 관계 없는 것이자 여유있는 자, 천재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요. 빙하 이후> 시즌 참고 도서 중 하나였던 뱀 의식의저자 바르부르크는 북아메리카 푸에블로 인디언들의 뱀에 관련된 의례와 예술을 인간 삶의 원형과 연결시킵니다. 예술이 무엇인지, 예술을 왜 하는지 질문에 대한 답을 합니다. 멀게만 보이는 의례를 일상적인 삶과 연결한 것이지요. 그들은 번쩍하는 번개와 뱀을 연결합니다. 푸에블로 인디언들은 동물 모양의 가면을 둘러쓰고 춤을 추면서 존재론적 변신과 초월적인 힘의 강탈을 시도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상징을 통해 개별적 자아에서 벗어나 원형의 합일을 꾀합니다.

 

다음은 삶과 작품이 분리되지 않는 작업을 하고 계시는 현직 작가, 조재영 선생님의 글입니다. 인문세에서 예술 작품과 글쓰기의 콜라보를 실현하고 계시는 조재영 선생님의 뱀 의식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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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영험한 힘을 가진 낯선 형태들

 

조재영

 

인간의 보편성, 인류의 본질적 특성 혹은 인간 정신의 원형은 아비 바르부르크의 저서 뱀 의식을 떠받치는 가장 기본적 전제이다. 미술사가였던 그는 실제 삶과 분리된 채 작품을 심미적으로만평가 내리는 당시 미술사에 공허와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삶과 작품이 분리될 수 있는가? 나아가 이미지, 조형 예술을 창조해내는 인간의 근원은 무엇이고, 왜 그런 행위들을 하는가? 도대체 예술은 무엇인가?

바르부르크는 삶과 작품이 분리되지 않아야 하듯이, 현상적 삶과 그 너머 인간 원형이 분리되지 않고 일치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확신을 전한다. 바르부르크는 미술사가 그렇듯, 현재 우리의 삶이 원형과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전 세계를 포괄하는 원형을 찾아 합일을 이루려는 의지, 현상적인 인간 삶을 원형과 연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북아메리카 푸에블로 인디언들의 의례와 예술에서 발견한다.

 

상징’, 그 자체가 갖는 주술적 힘

원형과의 연결혹은 합일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현상과 원형은 곧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중간의 매개체, 오직 상징을 통해 가능하다. 따라서 원형과 합일을 꿈꾸는 인간에게는 통로가 되는 상징들을 창조해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간들이 이미지를 그리고 조형 예술을 만들고, ‘의례의식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모두는 상징적 기호이자 그 기호들이 보이고 만져지는 구체적 물질이자 형태이고, 기호들이 작동하는 형식이자 체계이다.

그런데 상징으로서의 이미지, 형태나 형식의 창조는 인간이 자의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바르쿠르크는 상징 하나하나, 그 모양과 형식 또한 원형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미지, 상징물 자체가 이미 그 자체로 원형에 근거하여 생물학적 필연성을 가진 것으로 본다. 원형에 의해 필연적 근거를 가진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존재, 구체적 윤곽과 형태를 가진 생물과 같다. 예컨대 원형을 드러내기 위해 번개는 뱀으로 상징되어야만 하고, 재단 나무 위에는 깃털이 있어야만 한다. 이 필연성을 통해서만 세계, 모든 인간에게 공동인 원형을 만날 수 있다.

필연성을 가진 각 상징물은 특정 형식과 절차들을 통해 인간화되고, 인간은 그 상징물로 전유된다. 상징물은 원형과 인간이 교차하고 합일을 이루는 자리이다. 단지 대리인으로 소극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서로에게 전유되어 가면서 상징은 그 자체로 창의적이고 주술적인 힘을 가진 그 무엇이 된다. ‘영험한 힘그 자체가 된다.

푸에블로 인디언은 동물 가면 춤으로 신비한 미메시스적 변신을 통해 자신들이 얻고자 했던 것을 강탈할 수 있다고 믿었다. ‘원시 인간에게 가면 춤은 개체를 초월하는 존재와 관계 맺는 과정에서 낯선 다이몬적 존재에게 깊이 종속되는 것을 의미’(111) 했다. 가면을 쓰고 추는 춤을 통해, 그것 없이는 불가능해 보이는 존재론적 변신을 실현하고, 그 변신을 하고서야 마침내 초월적 존재와 힘의 강탈을 시도한다.

 

낯선 도구로 유기체적 윤곽 넘기

이렇듯 상징을 통한 원형과의 합일 속에서 푸에블로 인디언들은 개별적 자아로서의 자신을 벗어난다. 아니 개별적 자아를 벗어나야 원형과의 합일도 가능하다. 의례와 의식 그리고 예술은 이들이 서로에게 교차되는 장()이다. 이 과정에서 푸에블로인들은 뱀, 영양, 옥수수, 깃털 등 구체적 생물의 형태를 가지고 온다. ‘포착할 수 없는 비유기체적 존재가 생물 형태적 애니미즘적으로 친숙하고 조망 가능한 존재로 대체’(162)되는 것이다. 미지의 힘을 인식 가능한 대상, 이미지로 대체하는 모습에서 그 힘과 합일을 이루려는 푸에블로인들의 적극적 의지와 노력이 보인다. 물론 인식 가능한 생물의 형태들은 일직선상에서, 원형과 일대일 대응하듯 단순하게 매칭되지 않는다. 한정된 윤곽의 선을 그어가며 미지의 원형을 인식 가능한 범위로 그 윤곽들을 재단한다. 재단된 윤곽, 형태들 사이에 입체적이고 구조적인 질서를 섬세하고 예민하게 부여해간다.

푸에블로 인디언들은 자신들의 인식 능력으로는 포착 불가능한 인류 공동의 원형, 인간의 보편성과 본질적 특성을 직감하고 그것을 알기 위해, 그것을 알아 합일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걸며 고군분투한다. 인식 가능한 상징물들을 호출하고, 그 사이 윤곽들을 섬세하게 재단하며 인식 불가능한 세계를 이해 가능한 상징체계로 변모시킨다. 바르부르크의 도구관은 인간이 자신들의 상징체계 범위를 더 멀리 확장해가는 보다 진일보한 태도를 보여준다.

 

나의 출발점은 인간을 도구를 다루는 동물로 파악하는 것이다. ‘다룬다는 활동은 연결하고 분리하는 일이다. 그러는 와중에 인간은 나라는 유기체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다. 손은 인간이 신경 조직 없는 무기물인 실제 사물을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자아를 비유기체적으로 확장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이 도구를 다룸으로써 자신의 유기체적 윤곽을 넘어 고양하는 인간의 비극이다” (뱀 의식, 『아비 바르부르크』, 읻다, 163)

 

저자는 개별적 자아가 유기체적 윤곽을 넘어서는 것을 비극으로 묘사한다. 왜냐하면 손이 만나는 무기물, 그것이 전적으로 인간 신체에 속하지 않는 이질적이고 낯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낯선 도구를 자신과 결합시킬 때에만 자신의 윤곽을 더 멀리 확장해 갈 수 있다. 바르부르크는 이 모든 과정들에 인류의 예술종교가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를 탈유기체로 해체시키고 우주론적 존재로 전유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유일한 통로이다. 원형의 본질적 특성들을 예술과 종교를 통해 이미지, 상징, 기호화되고, 인간은 그 상징과 기호로서의 이미지를 해석해냄으로써 그 특성을 알아낸다. 또 반대로 이미지를 창조하고 그 이미지를 통해 자연과 우주에 자신들의 바람과 의지를 전달한다. 예술과 종교는 구체적 형태들을 가지고 인간과 원형, 인간과 우주를 연결하는 매개체이다.

 



            

아비 모리츠 바르부르크(Aby Moritz Warburg, 1866~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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