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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은 일상과 다른 상상력을 통해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구석기에서 살아가려면 먼 곳에서도 물을 구할 천리안, 웬만한 도구는 만들 수 있는 손, 간단한 도구를 복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머리가 있어야 하고, 무리 가운데 살기 위해서 빠르게 자기 역할을 찾는 맥락 파악을 해야 하고, 무엇보다 남에게 군림받거나 군림해서도 안됩니다. 한마디로 자연학적 지식, 기술, 사회적 지능이 뛰어나야 살 수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남의 돈 벌기가 싶냐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무기력하게 사는 것 말고도 다른 옵션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상상해봅니다. 어쩌면 나도 몰랐던 다른 가능성, 이를테면 효율, 이익과 무관하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엇을 만드는 데에 집중하고, 그저 친구들과 아무런 이해나 계산없이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힘이, ‘이미’ 내 안에 있는, 그런 멋진 상상을 말이죠.

[빙하 이후(10)] 『농경의 배신』길들이기, 부메랑으로 돌아오다

작성자
강평
작성일
2024-09-28 11:59
조회
70

 

<빙하 이후> 시즌의 연재가 이번 10회차로 마무리됩니다. 이 시즌 동안 농업 혁명, 과학 혁명, 과학 혁명이 진보라는 생각에 대한 생각을 했습니다. 대륙별 구석기 시대상을 상상해보며 낭만적이고 막연한 동경이 아니라, 그간의 편견을 조금은 덜어낸 구석기를 생각하게 되었지요. 신석기 농업 혁명은 동식물을 길들였을 때는 예상할 수 없었던 각종 부작용, 그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또 다른 인위적인 것들, 다시 그것이 낳은 부작용들이 연속되었던 시기인 것 같습니다.

 

<빙하 이후> 시즌은 참고 도서도 많이 읽었는데요. 그중 이 시즌과 가장 관련 있는 책을 1권만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농경의 배신을 택할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 강평옥 선생님의 글을 참고해보시지요. (<공주 석장리 박물관> 야외에 있는 구석기 남자 모형에 대해 오선민 선생님께서 글을 써보시겠다고 했는데, 오선민 선생님 허락 없이 강평옥 선생님이 먼저 썼습니다.)

 

새로 시작되는 <야생의 사고> 시즌은 책 리뷰를 연재합니다.

리뷰 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원숭이과 초밥 요리사, 프란스 드 발 저

2. 야생의 사고, 레비 스트로스 저

3. 서태평양의 항해자들, 브로니스라브 말리노프스키 저

4. 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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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이기, 부메랑으로 돌아오다

 

강평옥

 

공주 석장리 구석기 사람에 대한 생각

<공주 석장리 박물관> 야외에는 의자에 앉아 있는 구석기 사람의 모형이 있다. 잔뜩 화가 난 등 근육, 느긋한 자세, 왠지 모를 자긍심이 묻어나는 표정의 그 남자는 분명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백 번 생각하고, 한 번 움직이는 신중한 얼굴로, 석장리에 앉아 구름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바람 냄새가 어떤지, 언제 열매를 따고, 사슴을 어디서 잡을지, 부족민과 어떻게 나눠 먹을지 생각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를 비롯한 선조들도 쭉 그곳에 앉아서 생각을 해왔으리라. 신석기 농업 혁명에는 획기적인 변화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구석기는 수만 년동안 겉으로 보기에는 다 똑같은 주먹도끼를 이렇게 저렇게, 다르게 만들고, 다 비슷하게만 보이는 수렵, 채집 생활을 다르게 변주하며 살았다.

임진왜란을 몇십 년째 연구하고 계시는 UBC의 허남린 선생님께서는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면 아이처럼 기뻐하시고, 먼지를 뒤집어쓴 고문서의 알 수 없는 단어 하나의 의미를 알아내려 안간힘을 쓰신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알아내신 귀중한 이야기를 인문세 회원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신다.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골똘히 생각하고, 움직이고, 나눠주는 면에서 나는 허남린 선생님께 석장리에 앉아 있는 구석기인의 모습을 본다. 비슷해보이지만 매번 조금씩 다른 구석기인의 주먹도끼는 허남린 선생님의 매일 계속되는 임진왜란 연구와 닮아있다. 그러고보니 허남린 선생님께서는 매일 1시간 런닝, 푸쉬업 250(, 25개의 오타가 아니고 250개 맞습니다!)를 하시니 등 근육도 석장리 남자와 비슷할 것이다.





 

농경에 대한 흔한 편견

농경의 배신? 농경이 뭐라고, 무슨 배신을 했다는 것일까? 제임스 C. 스콧이 말하는 <농경의 배신>은 우리가 알던 농경, 더 정확히는 농경의 이점이 사실과는 매우 다르다는 의미이다. 신석기 혁명은 식물의 단종화, 동물의 가축화 즉, 인간이 동식물을 길들인 것을 특징으로 한다. 자연에 있는 동식물을 수동적으로 수렵, 채집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들을 울타리에 가두고, 인위적으로 인간의 목적에 맞게 조정하는, 일종의 창조를 한 것이다. 헐벗고 굶주리던 짐승의 삶에서 풍요로운 먹거리를 얻고 뒷날 문화의 발판을 마련하는 등 비로소 인간답게 살게 된 것, 이것이 농경에 대한 흔한 편견이다. 신석기는 언제나 혁명이라는 단어와 함께 한다. ()시대와는 구분되는 획기적인 일대 전환점이라는 것이다.

스콧은 수렵, 채집 사회가 농경 사회로 곧바로 전환한 것이 아니라, 농경의 등장 이후에도 이 두 사회는 1,000년 가까이 공존했거나 선택적이었고, 의도적으로 농경으로의 전환을 거부하거나, 농경을 채택했다가 다시 수렵, 채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았다. 농경 자체의 문제점, 그리고 농경에서 파생되는 부작용 때문이었다. 농경은 인간이 동식물만 길들인 것이 아니라, 이들을 길들이기 위해 인간도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 끊임없는 노동 지옥을 맞이하는 등, 인간도 동식물에게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를 길들이는지, 누가 누구의 종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에 의존하면서, 서로가 가지고 있던 본래의 기능이 마비된다.

농경은 건조한 곳에서 대규모 관개 사업의 필요성, 이에 따른 국가의 탄생과 함께 이야기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수렵, 농경, 농경 국가라는 단선적인 변화는 없었다. 스콧은 동식물 길들이기와 농경국가 사이에는 거의 4,000년이라는 시간차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농경국가의 서사가 출발점부터 잘못되었다고 한다. 농경국가는 건조한 환경을 출발점으로 인구 증가, 집약적 생계 방식으로의 요구, 이를 위한 관개, 노동력, 노동력을 동원하고 관리할 공권력의 필요성으로 이어졌다는 서사가 있다. 하지만 실제 티크리스유프라테스 강 유역은 지금의 기후와 달리 건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출발점 자체의 오류가 발생한다. 스콧은 이 지역이 공권력이 필요한 관개가 아니라 배수가 필요했을 것이고, 다양하고 안정적인 식량원이 확보된 풍요로운 습지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수렵채집에서 농경국가로 가는 데에 왜 4,000(160세대)이나 걸렸을까? 스콧은 새로운 생활양식이 받아들여지려면 사람들의 망설임, 주저를 고려해도 1,000년 정도라면 모를까 4,000년은 매우 이례적으로 긴 기간이라는 생각한다. 그는 이 시간이 새로운 환경에 대한 실험과 관리가 지속된 시기라고 한다. 사람들은 수렵채집과 농경 중 택일이 아니라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여러 생존 전략을 걸쳐서 살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수렵채집과 농경을 명확한 구분이 아니라 스펙트럼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길들여진 동식물, 그리고 우리

어떻게 인간은 거친 야생 동물을 길들여 온순한 가축을 만들게 되었을까. 스콧은 그들이 인간에게 포획되면서가 아니라 자기 발로 인간의 공동체인 도무스에 찾아온 것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생쥐는 인간을 찾아왔지만 길들여지지 않은 데에 반해 양, 염소는 바로 사냥되지 않고 우리에 갇힌다. 야생 동물은 이후 번식시키고, 살아있을 때는 젖, , 피를, 죽은 다음에는 고기로 활용된다. 그들은 인간에게 와서 더 큰 포식자로부터 보호받고 먹이를 보장받는 안정을 누린다. 동시에 그들이 갇힌 울타리 안은 좁고 외부로 나갈 수 없는 곳으로서 그들은 이동의 자유를 잃는다. 거친 야생 생태계의 선택압을 겪지는 않지만 자신들의 주인이 강요하는 계획적, 비의도적 선택압을 받게 된다. 일테면 주인이 원하는 형태, 크기로 자라게 된다. 보호받는 동안 외부자극에 대한 반응 역치 역시 낮아져, 울타리 밖을 나갈 수 없는 무능력한 상태로 된다. 갇힌 동물은 전염병 위험에 노출되며 사망률도 높다. 가축 새끼의 사망률은 높지만 번식력 자체가 야생보다 3배 높다.

수렵채집민은 간헐적’, ‘집중적으로 식량을 구하는 다양한활동을 한다. 자연의 리듬과 활동을 맞춰 템포를 조절한다. 자신의 신체 감각을 예민하게 작동시키고 숙달된 능력을 최대한 끓어 올려 준비하고 협동하고 분업한다. 농경민이나 직장인은 1년 계획을 세워, 수확물(농작물, 가축, 기업의 계획)에 맞추어 꾸준히, 똑같이, 부지런하게 활동한다. 직장인들은 월~금까지, 9To6라는 일정하고 고정한 리듬으로 일한다. 안정적인 수익에 의지하는 나머지, 이제 그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상상을 할 수 없는 일종의 무능력도 따라온다.

수렵채집민은 간헐적으로 일하고, 놀고 싶을 때 자주 놀았던 것 같다. 식량을 구하는 활동과는 거리가 먼 아주 쓸데없는 일, 일테면 서로의 머리, 등을 쓰다듬는 애정행위를 하거나 게임하듯 식량에 필요한 기술을 연마해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그도 아니면 늘어지게 한숨 잤을 것 같다. 인간이 동식물을 길들였다고 생각했지만 반대로 길들인 대상에게 길들여져 그들에게 의지하고 매이느라 쓸데없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잊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밀화의 저주

노동 시간이 크게 늘어난다는 점 이외에도 단종화, 가축화된 식량원들에서 얻을 수 있는 영양분은 수렵, 채집으로 얻던 다양하고 풍부한 영양분에 비해 턱없이 단조롭고 부족했고, 동식물과 인간이 인위적으로 쳐놓은 울타리 안에 밀집해서 사느라 전례없는 치명적 인수공통 감염병이 창궐했다. 다시 말해 농경, 목축을 하다보니 힘들게 일해서, 먹어도 힘이 덜 나는 음식을 먹고, 동식물과 같이 사느라 감염병으로 몰살을 당하는 위험에까지 노출된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왜 농경, 목축으로 빨리 이동하지 않았을까가 아니라 왜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농경, 목축을 시작하게 되었을까가 된다. 스콧은 농경, 목축으로의 변화를 갑작스러운 추위라는 기후에의 적응을 든다. 즉 농경, 목축이 우수해서가 아니라, 하필 수렵, 채집을 할 수 없는 기후 변화에 적응하느라 농경, 목축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스콧은 기원전 5천 년 전후 인구 변화에 주목한다. 그 이전 5,000년 동안 인구는 400만에서 500만으로 100만이 증가한다. 신석기혁명이라는 정착, 농경이라는 문명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후 5,000년 동안 20배인 1억 명이 넘는 것으로 봐서 결국 신석기혁명 시기는 인구학적 병목 구간이 된다. 이 병목 구간의 주요 원인은 전염병이었다. 정착생활로 인한 과밀한 환경, 가축의 배설물 등이 이상적 병원체의 배양장이었고, 철새는 확산의 매개체였으며, 인간들은 질병 매개체를 알지 못했기에 피해는 훨씬 컸다. 전염병에 대응하기 위해서 부적을 지니고 신전을 지으며 빌기도 했다. 수렵 채집 사회에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대재앙에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기록에 의하면 그들은 전염병의 원인이 접촉이라는 감염 원리를 이해하게 된 것 같다. 그들은 접촉을 피하기 위해 제한된 구역 내 격리, 외부에서 들어온 상인, 병사들을 고립, 회피시키는 거리 두기를 실시했다.

전염병은 밀집한 인간들을 직접적으로 몰살시키기도 하지만 그들이 키운 동식물이 전염병으로 사라져 인간이 굶어 죽게 되는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인간들을 대량으로 죽게 만들기도 한다. 인간만 거리 두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식물들도 거리 두기를 할 필요성이 생긴다. 휴한기를 두거나, 몇 가지 작물을 교대로 실시하는 윤작을 하거나 멀리서 씨앗을 가져오기도 하고 수확이 임박한 작물을 지키느라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농경은 그 자체로 노동 지옥을 만들기도 하고, 그나마도 하루아침에 전염병으로 애써 기른 것들을 잃을 위험까지 있는 활동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전염병이 돌아 인간이 애써 쳐둔 울타리에서의 활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울타리 밖으로 나와 물고기 잡고 도토리를 주워 조달했다. 울타리는 끊임없이 재배, 사육, 보호가 필요한 공간이었고 바로 이 울타리 때문에 발생한 집중화와 단일성 때문에 사회는 붕괴의 위험성에 노출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염병에도 불구하고 인구 병목 구간을 지나 어떻게 인구가 증가하게 되었을까. 초반에 어려움을 겪더라도 역시 농경은 우수한 것이었을까. 아니다. 스콧은 인구 증가의 원인으로 정착생활 그 자체를 든다. 이동하지 않고 정착하면서 번식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착생활 때문에 전염병으로 죽는 인구는 많았지만 바로 그 정착생활 때문에 번식력이 높아져서 인구가 결국에는 증가했다는 것이다.

 

울타리에서 잃어버린 것들

국가를 자연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강력한 힘을 보유한 것으로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착, 중심지로의 밀집으로 인해 전염병, 전쟁과 무역으로 인한 전염병의 확산,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산림의 황폐화, 홍수 등으로 나타나는 산림의 역습이 이어졌다. 어째 쎄게 때리고 자기 힘에 대한 반동으로 상대에게 더 쎄게 얻어 맞는 느낌이다. 자연에 인위적인 울타리(성벽)를 치느라 힘든 노동을 하고, 울타리가 없다면 안해도 될 또 다른 노동을 하느라 지옥을 만들고 있기도 하다. 국가는 구조적인 취약함을 만회하고자 탈주하는 사람들을 고립시키거나 회유함으로써 끊임없이 울타리로 유인하고, 도둑질로 위협하는 자들에게는 꼼짝없이 무역, 선물의 이름으로 화해, 조정 모드를 이어간다. 국가는 동시에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은 탈주하지 않을 만큼 점점 더 쥐어짜는 강도를 늘여간다. 국가는 울타리를 만들고 관리하느라 오늘도 바쁘다. 울타리에 유지, 보수에 소요되는 비용이 이래저래 너무 많다.

농경 사회에서는 울타리를 친 사람이 자기가 친 울타리에 갇혔다. 울타리를 쳐서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고, 자신의 통제 안에 다른 동식물을 두려고 할 때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울타리에 갇힌 자는 울타리가 없었을 때의 능력, 감각도 함께 잃어버리게 된다. 울타리와 그 울타리에 갇힌 것들에 의존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한편 다른 이들, 국가가 쳐놓은 울타리에 갇혀 자신도 그들의 가축 신세가 되기도 한다.

농경은 농경에 대한 의존과 그에 따른 무능력이라는 부메랑으로 인간에게 돌아왔다. 신석기 농업 혁명은 산업 혁명에 이어 오늘날 과학 혁명까지 이어졌다. 인간은 더 넓고 튼튼하게 울타리를 만드는 동안 농업, 산업, 과학에 더 의존하고, 어느 한편으로 더 무능력해졌다. 이 시점에서 다시 질문하게 된다. 누가 누구의 종인가. 네비게이션, 차량을 편리하게 이용했지만, 이제 네비게이션, 차량 없이는 꼼짝도 못한다. 차량만 해도 후방 카메라가 생긴 뒤로는 사이드 미러로는 주차도 못하더니, 서라운드 뷰가 나오고 나서는 공간 감각이 더 빠르게 없어져 차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높아져간다. 방위도 자기 위치도 모르면서 자동차를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일종의 무능력이다. 주먹도끼를 깎는 마음으로, 임진왜란 고문서에서 처음 보는 단어를 알아내고 싶은 마음으로, 다른 무엇에 의존하지 않고 나의 두 발로 뛰며 생각해볼 일이다



   

제임스 C. 스콧(James C. Scott, 1936~2024년)

전체 2

  • 2024-09-28 16:53

    <농경의 배신> 책 한권을 단숨에 읽은 기분이 듭니다. 파노라마같은 이야기 전개가 넘 재밌어요. 맛깔나는 글에 감탄^^!


  • 2024-09-29 21:43

    허남린 샘은 구석기의 철학자셨어!! @.@ 놀라운 발견!! 석장리의 생각하는 사람도, 존경하는 우리의 허남린 선생님도 미모와 지성으로 모두를 압도하심. 역사학의 자료도, 자기 삶의 자료도 두 손과 두 발로 얻을 때 참으로 값지다는 것을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