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9] 약자의 자유 공간, 거짓말

작성자
오켜니
작성일
2024-07-29 17:54
조회
103

약자의 자유 공간, 거짓말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많은 격렬한 감정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아 밖에서 사랑한다고 믿으면서 고통을 감수했지만, 이 사랑은 우리의 슬픔에서 왔으며, 어쩌면 우리의 사랑은 이 슬픔일 뿐이며, 검은 머리 소녀라는 대상은 거기서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갇힌 여인1, p149)’ 마르셀은 평온할 때는 알베르틴을 사랑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는 불안과 질투를 통해, 자신의 슬픔 속에서 자신이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가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타인을 사랑한다는 명목하에 타인이 일으킨 자신의 감정과 싸우는 중일까? 자신의 불안과 슬픔과 질투와의 사투를 우리는 사랑이라 명명하는 것일까?

  마르셀은 사랑의 대상이 육체 안에 갇혀 우리 눈앞에 누워 있는 존재일 거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알베르틴은 과거에 차지했던, 또 앞으로 차지할 공간과 시간 속의 모든 지점으로 확대한다. 사랑의 독점욕에 활활 불타는 마르셀은 이 모든 것을 알 수 없음에 괴로워한다. 그녀의 과거 행적을 알 수 없고, 그녀가 오늘 어디로 움직일지조차 알 수 없다. 그는 그녀의 과거 행적을 그저 더듬는다. 그리고 그녀가 과거에 어떤 쾌락을 영유했는지, 자신과 함께 파리에 있는 지금 그녀의 쾌락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마르셀은 늘 불안하고 고통스럽다.

  프루스트는 게르망트 공작부인 같은 경우는 많은 분량으로 묘사하지만, 알베르틴에 대해서는 알베르틴에 대한 묘사라기보다, 알베르틴이 불러일으킨 질투 감정에 화자가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초점이 가 있다. 화자가 알베르틴을 잘 모르는 것처럼 독자인 우리들도 알베르틴을 잘 알 수 없다.

  알베르틴이 마르셀과 관계에서 약자임은 분명하다. 발베크에서 알베르틴은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 놓였다면 파리에서 알베르틴은 모든 관계가 끊기고 화자와의 관계 속에만 있다. 파리에서 알베르틴은 마르셀의 부양에 의존해서 살기 때문에 그녀는 약자의 위치를 스스로 원했다고 할 것이다. 발베크 해안의 알베르틴이 스포츠를 좋아하는 열성적인 소녀였다면, 파리에서의 알베르틴은 마르셀이 제공하는 옷과 보석과 주거에 의존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며 마르셀의 기호에 자신을 맞추는 연약한 자가 되었다. 이제 알베르틴은 마르셀과 함께 할 시간보다 마르셀이 없는 시간을 꿈꾼다. 그 시간을 통해 마르셀의 기호에 맞춰진 자신이 아닌, 다른 자신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늘 이런 소극적인 반항을 마르셀은 알베르틴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 거짓말을 너무 그럴싸하게 한다 등으로 말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 읽고 나면 파리에서의 알베르틴이 그 고모라적 취향을 충족하기 위해 마르셀에게 거짓말을 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거짓말을 한 것은 알베르틴뿐일까? 알베르틴만이 약자일까? 마르셀은 알베르틴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하며 알베르틴을 자신의 거주지에 묶어두지만 알베르틴의 욕망까지 소유할 수가 없다. 마르셀은 알베르틴의 욕망까지 소유하고 싶다. 그는 알베르틴의 하루 일정을 감시하며 알베르틴 친구인 앙드레와 운전기사 에메와 모의하여 알베르틴을 감시한다. 알베르틴을 감시할 거짓말의 공간을 만든다. 명목상으로는 알베르틴의 편의를 위해 친구와 운전기사까지 대동시킨 것이지만 이것은 알베르틴을 속이는 거짓말의 장이다. 마르셀 또한 거짓말쟁이이며 알베르틴과 관계에서 약자이다. 알베르틴과 마르셀은 모두 자신의 자유 공간을 만들고자 거짓말을 택했다.

  프루스트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알베르틴이 거짓말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는 두 가지로 증명된다. 하나는 감각의 증거요, 하나는 일련의 추론 과정이다. 마르셀이 알베르틴이 거짓말을 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이 감각의 증거요, 마르셀이 신뢰하는 사람들의 말을 잘 구성하여 거짓 여부를 따지는 것이 추론 과정이다. 그러나 감각의 증거 역시 우리 신념이 자명성을 만들어 내는 정신 작용이다. 우리 감각이란 것이 매우 제한적임을 생각하면 감각의 증거 역시 믿을 것은 못 된다. 프루스트 자신도 소설을 통해 이야기를 축소하고 생략하면서 이미 거짓말쟁이(p315)가 되어 있다. 각자의 거짓말 속에서, 감각의 증거 속에서, 일련의 추론 과정 속에서, ‘하나의 우주가 아닌 수백만의 우주가, 인간의 눈동자와 지성이 존재하는 수만큼의 많은 우주가 매일 아침마다 깨어난다.’(갇힌 여인1, p316) 

249

위험은 우리가 이미 물리친 적이 있을 때에만 피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그런 경험이 없는 나는 위험을 피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고 그래서 그 위험이 더욱 끔찍해 보였다.

지금의 격렬한 고통이 어떻게 보면 그 증거인 듯했다.

그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여신처럼 내게 통증을 유발했다. 수많은 추측을 하면서 나는 고뇌를 피하려 했고, 그렇게 하면서 정작 내 사랑은 실감하지 못했다.

250

그녀는 부정행위를 하다 들킨 아이처럼, 금방 전략을 수정하여 매번 나의 잔인한 공격을 무력하게 만들고는 원래대로 복원시켰다. 그 잔인한 공격이 이제 내 쪽을 향했다.

251

불행하게도 애인이 하는 거짓말의 기원은 우리의 사랑이나 소명의 기원과도 같다. 그 기원이 형성되기 시작하고 형체를 이루어도 우리 자신의 주의를 끌지 못한 채로 그냥 스쳐 간다.

297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존재, 아니 거의 모든 존재에게는 어느 정도 야누스 같은 면이 있어서, 그 존재가 우리 곁을 떠나려고 할 때는 상쾌한 얼굴을, 그 존재가 영구히 우리 소유 아래 있음을 알 때는 침울한 얼굴을 보여 준다. 그녀와 지속적으로 보내는 공동의 삶

298

자신의 삶에 타인의 삶이 폭탄처럼 엮어 있고, 이 폭탄을 놓아 버리면 곧 죄가 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사실처럼 보이는 것이 나중에는 틀리리라는 점을 알면서도 그 일에 관해 설명조차 할 수 없는 두려움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나는 샤를뤼스 씨가 모렐과 함께 사는 것을 동정했다.

298 모렐의 해결책

알베르틴의 사슬을 보다 가볍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 자신이 그 사슬을 부수려 한다고 믿게 하는 것이었다. 결별의 협박으로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대신, 우리의 지속적인 동거 생활에 대한 꿈을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었다.

312

그녀가 아주 자연스럽게 거짓말하는 멋진 기술을 가진 것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렇게 해서 자신의 삶 사이사이에 다른 삶에서 빌린 일화를 심어 넣었고, 그래서 나는 그 이야기가 허위라는 사실을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

312

우주는 우리 모두에게 진실이지만, 각각의 사람에게는 다르다. 내 감각의 증거는, 내가 만약 그 순간 밖에 있었다면 그 부인이 알베르틴과 함께 몇 걸음을 걸었다고, 어쩌면 가르쳐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만약 정반대의 사실을 알았다면, 그것은 감각의 증거가 아닌, 일련의 추론 과정을 통해서였다. 우리가 신뢰하는 사람들의 말이 단단한 고리를 형성하는 과정.

감각의 증거 역시, 우리 신념이 자명성을 만들어 내는 그런 정신 작용이다.

315

별의 세계보다 더 알기 힘든 것이 인간의 실제 행동으로, 특히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은 자신을 보호할 목적에서 지어낸 이야기들을 가지고 우리 의혹에 더욱 굳세게 맞서기 때문이다.

나는 이야기를 축소하고 거짓말쟁이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의 우주가 아닌 수백만의 우주가, 인간의 눈동자와 지성이 존재하는 수만큼의 많은 우주가 매일 아침마다 깨어난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