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
유덕한 사람은 자유롭다
[죽음을 최소한으로 생각하라] 미움이라는 쓰나미
115쪽 자유인은 “어느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다.” 이성적으로 유덕한 인간은 의도적으로 타인의 삶을 악화시키는 행동을 절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언제나 타인의 삶을 개선시키고자 애쓴다. 이는 이타적 정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고려한 행동이다.
122쪽 자유인은 자연과 자연 속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잘 이해하기 때문에, 특히 자기 능력의 한계와 모든 사물을 관장하는 필연성을 잘 알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물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겨도 이를 침착하게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이번 시간, 우리는 ‘미움’이라는 정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미움이 올라올 때, 내 안에서 일어나는 미움의 원인을 파악하기 보다는 미움의 대상에게서 그 답을 찾곤 한다. 가만히 미움의 발생에 대해 추척해보았다. 내 경우에 미움은 낯선 상황(또는 장소)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익숙하고 타성에 젖은 것처럼 굳어진 상황에서 일어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나는 어떤 것도 바꿀 마음이 없을 때, 나를 고집하고, 내 생각에 가둘 때 일어난다. 이 미움이라는 쓰나미는 분노와 질투까지 나를 데리고 간다. (미움과 질투의 선후 관계가 궁금하다)
더 많은 미움의 차원이 있을 것 같아서 초등생 딸들에게 리서치를 해보았다. 아이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교실마다 한 명즘은 다수에게 미움의 대상이 되는 아이가 있는 것 같다. 아이들과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아도 원인은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미움을 주고 받는 두 대상이 이익이 되는 일이 하나 없음에도 자연스럽게 그런 분위기가 생겨나는 것 같다. 풀잎 선생님께서 ‘위치’가 미움을 만들기도 한다는 말씀에 문득 ‘때리는 시어머니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라는 속담이 생각났다. 결혼 전 만나본 적 없는 시누이에게 자동 방어 태세가 되었던 것은 그분의 위치에 대한 편견이 반감을 일으킨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미움은 가볍게 ‘그 사람은 아마 그럴거야’라고 치부하며 일어나는 위험한 정념이기도 하다.
자유인은 미움보다는 타인의 삶을 개선시키고자 애쓴다. 그것은 타인을 위한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한 일이다. 그렇다면 미움의 정념이 나를 덮칠 때 미움이 어떤 이유로 일어났는지 가만히 들여다보자. 지금 여기서 나에게 더 좋은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