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
유덕한 사람은 자유롭다
[죽음은 최소한으로 생각하라]관념의 정서적 힘
우리는 이성과 욕망이 충돌하고 갈등하는 일을 자주 경험한다. 분명히 옳지 않은 일인 줄 앎에도 정념에 이끌려 나중에 후회할 선택을 한다. 우리는 이런 경우 보통 의지가 약해서, 자제력이 부족해서 그러한 결정을 했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내적 갈등을 그리스 철학자들은 아크라시아(akrasia)라고 불렀다.
이에 대해 스피노자는 어떻게 볼까? ‘스피노자는 인간의 정신을 기능으로 구분하면서 하나의 기능이 다른 기능과 상충할 수 있다는 주장을 거부한다’.(『죽음은 최소한으로 생각하라』, 스티븐 내들러 지음, 연아람 옮김, 민음사, 144쪽) ‘인간의 정신은 인간의 신체인 연장의 양태에 상응하는 사유의 양태로서 그 자체가 다른 관념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관념일 뿐이다’.(같은 책, 144쪽)
스피노자에게 정신은 기능에 따라 구분되지 않는다. 정신의 모든 관념, 즉 이성과 감성은 모두 정서를 발생시킨다. 사실인 이성의 적합한 관념과 거짓의 감각과 표상의 부적합한 관념 모두 ‘정신의 코나투스의 변이들로서 정서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145쪽). 그렇기에 이 정신의 관념들 사이의 갈등은 그 관념들이 지닌 정서적 힘의 차이로 인해 발생한다. 즉 스피노자에게 ‘아크라시아’는 이성적 관념의 정서적 힘이 약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에 대한 스피노자의 생각은 『에티카』 4부 정리 14에서 볼 수 있다.
“4부 정리 14. 좋음과 나쁨에 대한 참된 인식은, 참된 것인 한에서는 어떠한 정서도 억제할 수 없으며, 오직 정서로 간주하는 한에서만 억제할 수 있다.”(『에티카』, 스피노자, 진태원 옮김, 157쪽)
우리가 흔히 내 몸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할 때, 어떤 일의 잘못을 추궁할 때 그 일의 결과를 있게 한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릴 때, 이는 의지 박약의 문제도 절제력 부족의 문제도 아니다. 부적합한 관념이 일으키는 정서의 힘이 이성의 적합한 관념이 일으키는 정서의 힘보다 강하기 때문에 우리는 옳지 않다고 알고 있음에도 그릇된 일을 행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