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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유덕한 사람은 자유롭다

 

[죽음은 최소한으로 생각하라] 아는 데 왜 행하지 않는가?

작성자
5dalnim
작성일
2024-08-11 22:44
조회
36

아는 데 왜 행하지 않는가?


스피노자에 따르면, 이는 모르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아는 데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결정 변수로서의 의지개념을 거절한다. 스피노자는 의지를 코나투스와 관련시키며 정신에게만 관련될 때를 의지라고 한다(3부 정리9의 주석). 의지는 정신과 신체에 동시에 관련될 때에는 욕구라 부를 수 있다. 욕구와 의지는 같은 것이다. 행위에 있어 의지를 결정변수로 두었던 메데이아는 정신(의지)와 충동(스피노자라면 욕구라고 했을; 신체) 사이를 대립 관계로 보았다. 그러나 스피노자에게는 같은 것이다. 정신의 코나투스적 표현은 의지나 욕구나 신체 변용인 정서를 파생시킨다. 따라서 아는 데 왜 행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은 스피노자에게는 성립하지 않는다.


스피노자를 응용하자면 알게 되면 행하게 된다. 여기서도 인과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고, 평행론에 따라 앎이 곧 행함이다. 내가 행하는 것이 내가 아는 것을 말해준다. 스피노자는 우리 행위 능력이 증가할 때의 정서를 기쁨이라고 하며 반대를 슬픔이라고 한다. 기쁨으로 촉발되어가는 신체와 정신은 더욱 기쁨을 욕망하게 된다. 최고의 기쁨을 중단없이 일으키는 관념은 적합한 관념이다. 따라서 적합한 관념을 풍부하게 생산하는 신체적 배치는 기쁨 속에서 특정 정서에 압도되지 않으며 계속 적합한 관념이 이끄는 행위 속에 놓인다.

 

자유인에게는 정념을 무력화하고 정념의 힘에 저항하는 데 바로 쓸 수 있는 전략적 무기가 있다.

우선, 모든 인간의 정신에는 다양한 적합한 관념이 존재하는데 이것들은 본질적으로 힘이 강하고 파생 관념을 풍부하게 만들어 낸다. 이런 관념들은 정신이 본질적으로 갖는 것이다. 앞서 보았던 것처럼 정신은 연장 속성의 특정 양태(곧 신체)에 해당하는 사유 속성 안에서의 관념 또는 상관물이다. 정신의 형상적 본질, 말하자면 본질적 핵심은 연장의 양태인 신체의 형상적 본질에 대한 인식 또는 족합한 관념이다. 신체에 대한 이런 적합한 관념은 필연적으로 연장 또는 신체 그 자체에 대한 인식은 물론 이 인식에서 도출되는 모든 것을 수반한다.

[중략]

스피노자는 이런 본질적 관념을 공통 개념이라고 부른다. 정신에 항상 존재하는 이 공통 개념은 정신의 인지적 내용이 지닌 영속적인 특징이다. 공통 개념이 언제나 정신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험 속 어디에나 나타나는 특성 때문에 특히 의식적인 관념이 되기 쉽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공통 개념은 다른 관념에 비해 특별한 힘을 갖는다. 유덕하고 오성을 추구하는 인간은 이런 본질적으로 적합한 관념들과 그것들이 자신이 누구이며 자연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에 관해 전달하는 정보를 더 많이 의식한다. 게다가 모든 신체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을 제시하는 신체에 관한 정신의 적합한 관념은 언제나 신체의 감각적 경험에 의해 확증되기 때문에 그 힘은 지속적으로 강화된다.”(스티븐 내들러,죽음은 최소한으로 생각하라, 160~161)

아는 데 왜 행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는 또 다른 함정도 있다. 그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 알아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스피노자는 적합한 관념, 공통 관념, 신 관념을 알라고 한다. 그것만이 우리를 기쁘고 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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