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
유덕한 사람은 자유롭다
[죽음은 최소한으로 생각하라] 6. 3종 인식
스피노자가 생각하는 자유인의 길
스티븐 네들러의 정리에 따르면 여기에도 다 순서가 있다. 이 순서를 따라가다보면 신에 대한 지적 사랑에 이르는데, 이 지점이 지복이 된다. 자유를 향한 길이란 복되고 또 복되다.
첫 번째에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하나는, 적합한 관념을 획득하기이다. “수동적으로 획득한 부적합한 관념을 적합한 관념으로 바꾸거나 적어도 그 힘을 약화시키는 기능도 한다.”[스티븐 네들러, 162쪽] 다른 하나는 정념의 절대적 필연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정서에 대한 인과적 책임을 넓게 분산시켜 그것의 힘을 현저하게 약화시키거나 완전히 제거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특정한 개인에게 주목하는 대신 길게 이어지는 필연적 원인들에 집중할수록 정서의 강도는 약해진다.”[스티븐 내들러, 164쪽]
이 두 가지의 방법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시도하면 어떤 결과가 따라온다. 신에 대한 사랑이 수반된다.
“이러한 인식은 정신의 능력의 엄청난 향상을 의미하므로 즐거운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신에 대한 관념을 최고 영역의 인식이자 기쁨으로 보므로 자신의 정신과 신체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각각의 정서들에는 필연적으로 신에 대한 사랑이 수반된다. “자신과 자신의 정서를 명석판명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신을 사랑하며, 자신과 자신의 정서를 더 잘 이해할수록 신을 더욱 사랑한다.”(에티카 5부)”
내들러는 스피노자가 이렇게 정념으로부터 인식으로의 이행이라는 단계를 순차적으로 밟아 신에 대한 사랑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한편으로, 또다른 에스컬레이터식 방법을 제시한다고 한다. 그것이 ‘신에 대한 지적 사랑’이다. 스피노자는 ‘신에 대한 사랑’과 ‘신에 대한 지적 사랑’을 구분한다.
‘신에 대한 지적 사랑’이란 “사유 속성의 양태로서 자신이 본질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한 정신의 고유하고 적합한 인식은 정신과 신 또는 자연의 참되고 영원한 인과적 관계를 드러낸다.”[스티븐 내들러, 165쪽] 신에 대한 지적 사랑은 “신의 특정 속성의 형상적 본질에 대한 적합한 관념에서 사물의 형상적 본질에 대한 적합한 관념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정신은, 개미의 정신이든 인간의 정신이든 신 안에 존재하고 신에서 비롯되는 존재이기에, 자신에 대한 직관적 인식을 지닌다. 신에 대한 사랑에 이르는 길과 신에 대한 지적 사랑에서의 길은 표면적으로는 동일한 것이지만, 후자의 경우 정신을 따로 가리지 않으므로 어떤 미약한 존재도, 어리석은 상태에서도 곧바로 적합한 인식이 가능하다. 우리 각자는 최고의 덕, 최고의 완전성에서 바로 시작할 수 있다.
신에 대한 지적 인식은 3종 인식이다. 1종 인식에서 2종 인식으로의 이행이 ‘공통 관념’ 곧 ‘적합한 관념’을 얻을 수 있는 길이기에 우리는 부단히 공부하고 또 명상해야 한다. 하지만 3종 인식에는 어떤 선결적 조건도 없다. 그렇다면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어도 되지 않을까? 놀랍게도 스피노자는 신에 대한 ‘지적 사랑’이라고 했다. 이 역시도 이성의 인도에 따르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이성의 인도에 따르고 있는 노력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노력 속에 있어야 3종 인식의 갑작스런 개시도 가능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