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
유덕한 사람은 자유롭다
[죽음은 최소한으로 생각하라] 스피노자는 왜 연민을 악으로 보았나?
스피노자에게 연민은 무익하고 나쁜 것이다. 이는 스피노자가 막연히 연민 자체를 나쁘게 보았기 때문은 아니다. 스피노자는 슬픔의 정서로부터 시작되는 행동을 경계한다. 타인을 불행으로부터 꺼내주고 싶은 마음은 즉각적인 것인데, 이때 우리는 타인을 둘러싼 그 불행이 과연 불행인지부터 천천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스피노자는 거듭, 이성의 인도에 따르라고 한다. 신 즉 자연의 평면에서는 필연에 따라 모든 것이 일어난다. 자연에는 선악이 없다. 행과 불행은 단지 개체적 관점에서의 일이다. 이성의 인도에 따름은 신 즉 자연의 차원, 즉 영원의 지평에서 생각한다는 것이고 그럴진대 행과 불행은 완전히 다르게 전개된다.
울고 있는 자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그가 운다는 사실만으로 그가 불행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인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따지는 행과 불행은 1종인식에서 비롯된다. 이미지이거나 편견에 불과하다. 더 넓게 생각해보자.
○ 4부 정리 50) 이성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에게 연민은 그 자체로 나쁘며 무익한 것이다.
증명) 왜냐하면 연민은 (정서들에 대한 18번째 정의에 의해) 슬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4부 정리 41에 의해) 그 자체로 나쁜 것이다. 연민에 따라 나오는 좋은 것, 곧 우리는 그 불쌍한 처지로 인해 우리가 연민을 느끼게 되는 사람을 구해주려고 노력한다는 것(3부 정리 27의 따름정리에 의해)의 경우, 우리는 이성의 명령만으로도 이것을 하려고 욕망하게 되며(4부 정리 37에 의해), 우리는 오직 이성의 명령에 의해서만, 우리가 좋은 것이라고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을 할 수 있다(4부 정리 27에 의해). 이에 따라 이성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에게 연민은 그 자체로 나쁘며 무익한 것이다.
따름정리) 이로부터 이성의 명령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그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연민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이 따라 나온다.
주석) 신의 본성의 필연성으로부터 따라 나오고 자연의 영원한 법칙들 및 규칙들에 따라 이루어지는 모든 것을 올바르게 알고 있는 사람은 미움, 웃음 또는 무시를 받을 만한 일을 전혀 찾아내지 않을 것이며 누구에 대해서도 연민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적 미덕이 미치는 한에서, 사람들이 말하듯, 좋은 일을 하고 기쁘게 지내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에 더하여, 쉽게 연민의 정서에 영향을 받고 다른 사람의 불행이나 눈물에 동요되는 사람은 쉽게 곧바로 그가 후회하게 될 행동을 하곤 한다는 점을 덧붙여두겠다. 이는 우리가 정서를 통해서는 우리가 확실하게 좋은 것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한 거짓 눈물이 우리를 쉽게 속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서 나는 명시적으로 이성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성에 의해서도 연민에 의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려고 움직여지지 않는 사람은 올바르게 비인간적이라고 불리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3부 정리 27에 의해) 그는 인간과 닮은 점이 없는 것으로 보이기 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