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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유덕한 사람은 자유롭다

 

[죽음을 최소한으로 생각하라] 자유인과 죽음

작성자
기헌
작성일
2024-09-22 22:00
조회
41

 247 자유인이 자신의 이성적 덕을 보존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고려할 때, 그의 정신을 차지하는 것은 실제로 목전에 닥친 죽음이나 세속에서의 존재가 끝난다는 생각이 아니다. 사실 그는 죽음에 대해 가능한 한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 대신 자신의 형상적 본질을 이루는 뛰어난 코나투스와 자신의 덕을 이루는 이성적 인식에 주목한다. 이성적 만족감(acquiescentia)을 향유하며 자유인이 사유하는 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능력이다.


『에티카』

4부 정리18

주석  .. 이성이 자연에 반대되는 것을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이성은 각자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도록 요구하고, 자신에게 유익한 것, 그 자신에게 진정으로 유익한 것을 찾고, 인간을 진정으로 더 커다란 완전성으로 인도하는 모든 것을 추구할appetat것을 요구하며, 절대적으로는, 각자가 자기 자신 안에 있는 한에서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려고 노력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실로 전체가 그 부분보다 더 크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필연적으로 참된 것이다.(3부 정리 4를 보라). 그 다음, 덕(실력, virtus)은 (4부 정의 8에 의해) 자신의 고유한 본성의 법칙들에 따라 행위하는 것과 다르지 않고, 누구도 (3부 정리 7에 의해) 자신의 고유한 본성의 법칙들에 따르지 않고서는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이로부터 첫째, 덕의 토대는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려는 노력(코나투스, conatus) 자체이며, 행복은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보존할 수 있다는 데서 성립한다는 점이 따라 나온다. 둘째, 덕을 그 자체로 추구해야 하며, 덕보다 더 가치 있거나 또는 우리에게 더 유익해서 우리가 그것을 그 자체로 추구해야 마땅한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따라 나온다. 마지막으로 셋째, 자살하는 사람들은 약한 마음을 지니고 있으며, 그들의 본성에 반대되는 외부 원인들에 의해 완전히 제압된 것이라는 점이 따라 나온다. 더욱이 2부 요청 4로부터 우리는 우리가 우리 존재를 보존하기 위해 우리 외부에 있는 것을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게끔 할 수는 없으며, 또한 우리 바깥에 있는 실재들과 아무런 교류 없이 살아 갈 수 없다는 점이 따라 나온다. 그리고 우리의 정신을 고려해본다면, 우리의 지성은, 정신이 홀로 있고 자기 자신 이외의 어떤 것도 이해하지 못할 때 더 불완전하다는 점이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 바깥에는 우리에게 유익하고, 이로 인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이것들 중에서 우리의 본성과 완전히 합치하는 것들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우리는 생객해낼 수 없다. 왜냐하면 가령 정확히 같은 본성을 가진 두 명의 개인이 서로 결합한다면, 그들은 개인 혼자보다 두 배나 더 강한 개체를 합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인가보다 더 유익한 것은 없다. 말하거니와 인간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보존하기 위해 그 이상 바랄 게 없는 것은, 모두가 모든 점에서 합치하여 모든 정신과 신체가 마치 하나의 정신과 하나의 신체를 합성하듯 결합함으로써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한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모두 함께 자신들에게 공동으로 유익한 것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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