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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학 실험실

하늘과 바람, 땅에게 배우다

[나무 이야기] 호랑가시나무_생명의 색

작성자
최수정
작성일
2025-02-28 22:33
조회
31

며칠 집을 비운 사이 베란다에 내 놓았던 화분 몇개가 죽어 있었다. 그중 빨간 열매를 달고 있던 호랑가시나무도 있었다. 잎이 황갈색으로 말려 들며 빨간 열매를 힘 없이 떨어뜨리고 있어서 가위로 가지를 모조리 잘라내며 마음이 좋지 않았었는데, 며칠 후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든 책 속에 그 이름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어 호랑가시나무 이야기를 여기에 옮겨 본다.


생명의 색


붉은색과 초록색은 고대 이래로 신비로운 색깔이었다. 두 색깔은 글이 생기기 오래전부터 인류에게 상징이었다. 붉은색과 초록색은 켈트전사의 색깔이었다. 그들이 벌거벗은 채 유럽을 누비며 전투를 벌이는 동안 아일랜드 본토에서는 드루이드교 사제들이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올리며 전사들에게 성스러운 이미지를 입혔다. 

색깔은 이름과 같아서 마음속에 간직된다. 시각적으로 단순하기에 기억 깊은 곳에 남는다. 붉은색과 초록색은 즉각적으로 정서를 단기하므로 문명의 흐름이 올라탄다.

의미와 상징을 고스란히 엮어 현대 기술 시대가 광고용 미끼로 던져진다. 

세계 정원에는 아주 잘 알려진 나무가 있다. 유럽, 아프리카, 중국에 서식하는 늘푸른나무인 호랑가시나무 Ilex aquifolium다. 

북아메리카에는 갈잎나무(낙엽수)의 사촌인 미국 낙상홍 I. verticillata과 늘푸른나무의 사촌인 미국호랑가시나무 I.opaca가 있다. 모두 중요한 약용 나무로, 고열을 다스리는 데 쓰인다. 드루이드교는 오래전부터 빛과 어둠의 토속축제에서 호랑가시나무를 썼는데, 이 축제는 오늘날 성탄절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진다.

호랑가시나무는 성탄절 기간에 전 세계로 운반된다. 옛 이름이 ‘성스러운 식물’이어서 아기 예수의 탄생에 잘 어울린다.

이 종은 잎이 황록색이고 선홍색 베리가 조랑조랑 달린다. 성탄 축일에 집을 장식하는 데 쓰인다. 크리스마스 푸딩 꼭대기에도 새빨간 호랑가시나무 열매를 얹는다. 모두가 이교도 시절의 메아리다. 

호랑가시나무는 초록색과 붉은색이 어우러진 신비로운 식물이다. 이 진한 색깔은 고대 원시림의 초록과 그 숲이 지닌 모든 비밀스러운 힘을 나타냈다. 그곳은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에게 성스러운 장소다. 호랑가시나무의 황록색 잎은 시각적 속임수다. 잎의 윗면에 매끈한 막이 있어서 색깔을 진하게 하고 시각적 깊이를 더한다.

드루이드교는 호랑가시나무 열매의 색깔을 희생 제물이 흘리는 신선한 선홍색 피의 색깔로 여긴다. 그 제물은 물론 인간이다.

이에 더해 켈트인들에게 붉은색과 초록색은 우리 삶의 양면을 상징했다. 그것은 그때에도 참이었고 지금도 참이다. 황록색은 우리에게 유익하고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식물을 상징한다. 붉은색은 자아, 순환, 그리고 우리 몸속을 흐르는 피에 대한 깊은 변연계적 지식이다. 인간과 숲이라는 두 체계는 서로에게 기대고 있다. 붉은색과 초록색의 상징, 더 나아가 신비주의는 분자 수준으로 거슬러 들어간다. 피는 붉은 색소로, 기름과 같은 역할을 한다. 주로 말랑말랑하고 유동적인 혈색소 분자로 이루어졌으며 적혈구 세포라는 도넛 모양 주머니에 들어 있다. 피는 기발하게 설계되었는데, 식물의 초록색 지용성 색소인 엽록체와 놀랍도록 비슷하다. 엽록체도 주머니여서 안에 말랑말랑하고 유동적인 엽록소 분자가 들어 있다. 두 자매 분자인 혈색소와 엽록소, 붉은색과 초록색은 생명의 패턴을 조율한다. 혈색소와 엽록소가 없으면 우리는 종으 로서도 행성으 로서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분자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혈색소와 엽록소 둘 다 분자 기계다. 마치 서로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는데, 넓은 의미에서는 실제로도 연관성이 있다. 그 바탕은 질소를 함유한 네 개의 방향족 고리라는 공통의 설계다. 고리의 한가운데에는 외알 다이아몬드 반지처럼 금속 원자가 박혀있다. 이 금속을 다이아몬드 호위하듯 둘러싼 것은 네 개의 고리에 함유된 네 개의 질소다. 혈색소 분자에서 질소가 붙들고 있는 것은 철원자이며 엽록소 분자에서 질소가 붙들고 있는 것은 마그네슘 원자다.

철과 마그네슘은 세상의 두 면을 나타낸다. 두 면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똑딱거리는 양자 시계처럼 작동한다. 한 양자 상태에서는 두 금속 다 유입되는 전자 에너지로 채워진다. 그러면 똑 하고 첫 번째 원자가로 바뀐다. 다른 양자 상태에서는 전자 에너지를 내보내어 딱 하고 두 번째 원자가로 바뀐다. 두 금속은 질소에 붙들려 있는 동안 평생 양자상태에서 똑딱거린다.

도넛 주머니에 들어 있는 혈색소 분자에 산소가 전달되는 것은 이 원리다. 생명의 입맞춤으로 인체의 모든 조직에 산소가 전달되는 것도 같은 원리다. 모든 식물과 나무의 잎살에 들어 있는 엽록체 주머니에서 산소가 운반되는 것 또한 같은 원리다. 잎살은 잎의 기공(또는 숨문)을 여닫는다. 잎살 조직은 엽록체 주머니를 감싼 말랑말랑한 가방으로 통기 간극으로 둘러싸였다. 통기 간극은 기체 교환을 위해 대기와 통해 있다. 산소가 대기로, 또한 호기성 생명체를 위해 전 세계 바다와 토양으로 운반되는 것도 같은 원리다. 마치 신이 계획한 것처럼 이 두 쌍둥이 자매 분자는 양자 보금자리에서 손을 맞잡고서 지구 전체를 위해 생명을 빛어낸다. 그렇기에 옛것은 새것이다. 붉은색과 초록색은 고대 이래로 신비로운 색깔이었다.

새것은 두 색깔이 인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하지만 옛것과 마찬가지로 그 중요성은 인간 언어와 글을 넘어서서 지혜 자체의 의미를 묻는 신비주의적 켈트 수수께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출처 : 다이아나 배리스퍼드-크로거, 『세계 숲  』, 노승영 옮김, 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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