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학 실험실
하늘과 바람, 땅에게 배우다
[김동광 선생님과 함께 틀.깨.과학] 후기_모르니까 알아보자. 다양하고 풍부한 세계를
김동광 선생님과 함께하는 <틀.깨 과학> 세 번째 시즌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번 시즌 주제는 ‘전쟁과 냉전이 빚어낸 과학’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시즌 목적에 휘둘리며 거대해지고 흉포해지는 과학의 변모가 괴이하게 느껴졌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배움을 통해 과학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기에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김동광 선생님께서는 강의 시간에 종종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곤 하셨는데요.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선생님을 포함한 다수의 반 친구들은 ‘과학자’를 꿈꿀 만큼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근원을 찾아가는 과학을 동경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번 시간에 본 탐욕의 결정판 전쟁에서 과학의 진짜 모습은 어둡고, 차갑다 못해 공포에 가까웠습니다. 혁신을 선물하는 화려한 겉모습과 다르게, 힘을 차지하기 위한 야망에 의해 작동되기 때문이었지요. 인간 개인 차원은 아예 소거해버린 듯 거대해진 과학은 ‘최적’이라는 명분 아래 해법 구하기에 몰두합니다. 사람들은 과학으로 어떤 문제든 가장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믿게 됩니다. 인간에게 합리성은 과연 무엇일까요? 분명히 맞아 떨어지는 정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조화와 균형, 화합과 타협을 모색하지 않고 오로지 타자를 밟고 올라서는 곳에서 모두를 위한 합리성은 존재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과학의 역사를 돌아보며 결국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은 인간이라는 것도, 익숙해진 기술에 무능력해진 것 같은 지금 우리의 모습도 생각할수록 씁쓸한 마음이 올라오는 가운데, 세 번째 강의에서 만난 ‘레이첼 카슨’에게서 그 합리성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평생 부분과 전체에 대한 고민을 놓치지 않습니다. 만물은 관계적 존재이고 그 관계없이 우리는 살 수 없다고 그녀는 말합니다. 균이든 벌레든 씨를 말리면 환한 세상을 가져올 것 같은 ‘박멸 이데올로기’는 전쟁관과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존재는 순환의 고리에 엮여서 살아가기에, 단절적으로 한 부분을 깔끔하게 파괴, 제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카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자연의 큰 네트워크를 알지 못하고, 잡초라고 부르는 식물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잘 모르고 있다’고요. 눈에 보이는 단적인 상황을 조합해서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카슨의 말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연 앞에서 겸손이라는 단어조차도 감히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앞 시간에 권력 욕망에 휩싸여 전쟁을 초래하는 사람을 비난했는데 이 부분에서 자칫 나도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로 집중된 삶이 조화와 균형을 패스한다는 맥락에서 말이지요. 짧은 앎을 가진 제가 자연의 합리성을 파악하기란 어려운 문제이지만 적어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자각과 알기 위한 노력은 세계에 대한 의무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두 행위는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지식이 아닌 슬기로운 지성을 어떻게 도모할지 저에게 숙제로 남았습니다.
두 차례 세계 대전 이후 과학의 위상이 추락할 때, 세계 곳곳에서 과학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려는 ‘급진 과학 운동Radical Science Movement’이 일어납니다. 새로운 과학을 모색하는 사람들은 소외된 다른 국가에 다가가고, 인간의 다양성을 침해하는 우생학을 격렬히 비판합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도 이 운동(민중을 위한 과학)에 참여하였는데요. 굴드는 인간의 행동과 사회의 복잡성을 생물학적 요인으로 환원시키는 생물학적 환원주의를 비판합니다. 굴드의 마음은 알 것 같지만 저는 종종 IQ, 유전자라는 용어를 쓰며 타고난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곤합니다. 두 간극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그리고 오늘날 생물학적 환원주의가 인기있는 듯 보이는 이유에 대해 김동광 선생님께 질문을 드렸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생물학적 환원주의가 대두된 원인에 대해서는 기성세대의 정당화, 설명되는 힘에 대한 과도한 갈망(ex.의사 처방)등을 이유로 말씀하시면서 반대로 우리 삶에 풍부함이나 복잡성이 얼마나 많냐고 하셨습니다. 물론 유전자가 후대에 전해지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말씀대로 제가 보지 못하는 세계의 복잡성은 얼마나 클지 저는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고났다는 말로 뭉뚱그리기에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큽니다. 저는 그 부분을 더 보고 싶어졌기에 명확하고 빠른 답을 얻고자 하는 욕망에서 한발 물러나 천천히 세계를 음미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생물학적 환원주의는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더라고요. 『사회생물학 대논쟁 (생물학 vs 사회과학)』은 두 학문의 대표들이 만나서 하루 종일 토론한 내용이라고 합니다. 사회과학의 대표로 김동광 선생님께서 참여하셨다고 하니 이번 방학에는 이 책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김동광 선생님께서는 시즌 내내 관련된 영화, 책, 음악을 함께 소개해주셨습니다. ‘과학’, ‘사회’, ‘생물학’ 등 용어에서 오는 딱딱함은 생각할 겨를 없이 재미있게 여행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 또 배울 날이 얼른 오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과학이 추구하는 ‘합리성’이라는 것이 어쩌면 ‘어떤 인간’이라는 ‘특정인’혹은 그룹의 합리성일 수 있겠네요.
레이첼 카슨의 ‘만물은 관계적 존재이고, 우리는 관계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을 자주 놓치고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 답사를 사전 준비로 읽고 있는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도 계속 ‘그건 니 생각이고’라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인간 중심, 내 중심을 생각해봅니다.
이번에는 아쉽게 김동광 샘의 꿀같은 강의를 놓쳤는데요.
다행히 조만간 김동광 샘의 강의가 열린다는 소식이 있어서,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않으리.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니까요.
후기 잘 읽었습니다.